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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과연 사회주의인가?

'악어의 눈물'에 안 속는다, 송환법 중단하고 퇴진하라! ⓒ이윤선

송환법과 그에 항의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를 들여다보면, 중국의 적나라한 현실이 드러난다.

중국 정부는 “(중국 특색의)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정작 노동 대중이 자기 대표를 자기 손으로 선출할 권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2014년 홍콩인들이 행정장관을 직선제로 뽑게 해 달라고 요구하며 시위(우산 운동)를 벌였는데, 중국 정부는 이를 강경하게 탄압했다.

중국은 우산 운동 탄압에 앞장선 자를 간접선거로 홍콩 행정장관에 임명했다. 그 자가 바로 지금의 행정장관 캐리 람(62, 여성)이다.

흔히들 홍콩 송환법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친중 대 반중’ 갈등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홍콩에서 중국 정부의 든든한 동맹 구실을 하는 자들은 바로 자본가 계급이다. 반면 홍콩 노동자들은 송환법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다.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투쟁이 분출하자 중국 정부는 그 소식이 중국 안에 전파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통제했다. 인터넷, 방송, 신문에서 중국 인민이 홍콩 시위 소식을 알 수 없도록 철저히 차단한 것이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정치적·시민적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권리와 민주주의가 없는 중국을 두고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

사회주의를 그저 관료적 지령 경제나 국유화 경제 따위로 생각한다면, 사회주의는 인간 해방과는 아무 관계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이래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사회주의를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으로 이해했다. 노동계급이 기존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고, 노동자 평의회 형태로 된 노동자 국가를 세워, 모든 의사결정이 노동자들의 참여에 의해 민주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장악했기 때문에, 드물지만 때로 국가기구를 직접 통제하지 않아도 지배계급일 수 있다. 반면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 국가를 세워 그 국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한,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마르크스)가 돼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시작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 국가 하에서 시민적·정치적 자유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보다 훨씬 신장돼야지 억압돼선 안 된다.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가짜다.

1949년에 건국된 중국은 처음부터 노동자들이 아니라 농민 게릴라 출신인 지식인들이 새로운 국가를 장악하고 통제했다.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 혁명은 도시 출신 지식인들이 지휘한 농민 군대가 친제국주의적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부패한 지주 중심의 옛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일본과 서방 제국주의 세력을 축출한 민족해방 혁명이었다. 그렇지만 이 혁명은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혁명은 아니었다. 혁명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아무런 구실도 하지 못했다. 중국공산당은 도시로 진격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제 자리를 지키며 일을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중국공산당은 경제적으로 낙후한 나라를 지배하게 됐다. 곧 그들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가하는 압력 속에서 살아남고 미국·대만 등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즉, 자본 축적)의 속도를 높여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1957년에 마오쩌둥은 “15년 또는 조금 더 많은 시간 안에 영국을 따라잡는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듬해에는 “7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더 높은 목표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당·국가 관료들은 빈약한 자원으로 공업 기반을 건설하기 위해 대중의 생활상의 필요를 자본 축적이라는 지상 과제에 체계적으로 종속시켰다. 서방과의 경쟁 압력 때문에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착취율을 극단적으로 높여야 했다. 그렇게 노동자와 농민을 착취하면서 지배 관료들은 노동자·농민과 근본적으로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갖게 됐다.

자본 축적과 대중의 필요 사이의 모순 때문에 중국은 처음부터 보안경찰에서 촌락의 하급 관리들에 이르는 강력한 국가 통제 체계를 확립해야 했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모두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중국 노동자들은 언론의 자유나,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조직을 결성할 권리를 조금치도 보장받지 못했다. 중국의 노동조합은 국가 통제 하에 생산 목표에 협력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아야 했다.

결국 중국 사회는 본질 면에서 서방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자본주의의 한 변형태인 사회일 뿐이다. 물론 형태 면에서는 서방의 시장 자본주의와는 다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이지만 말이다. 중국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은 오늘날 중국에서 사기업이 국유화 부문과 큰 적대 없이 공존하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제국주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제국주의 갈등으로 보지 않는다. 중국을 제국주의의 일부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19세기 중국은 영국을 비롯한 서방 열강의 대포 앞에서 굴복해야 했다. 중국은 엄청난 굴욕을 당하면서 홍콩을 영국에 내줘야 했다.

그러나 1949년 이후의 중국은 서방 열강에 일방적으로 침략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자본주의 강대국들과 경쟁하는 새로운 제국주의 국가로 비약했다. 국경을 넘어 자국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곳곳에 지정학적으로 개입하고 심지어 때때로 전쟁을 벌였다.

특히, 중국은 처음부터 소수민족을 혹독하게 억압하는 한족 제국주의 국가였다. 중국공산당은 소수민족에 대한 자치권 보장 약속을 뒤집고 티베트, 신장 같은 소수민족 지역을 강제로 중국 영토로 편입했다. 한족 관료들은 현지 정서를 무시하고 처음부터 식민지 총독부처럼 행동했다. 중국의 지배에 반발해 소수민족의 저항이 일었지만, 그동안 중국 당국은 이를 잔혹하게 탄압했다.

1980년대 이래 중국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오늘날 중국 제국주의의 위상은 과거 1950~1970년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높아졌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 1위 수출국이자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중국은 이제 “세계의 공장”을 넘어 주요 투자국으로도 떠올랐다. 중국의 자본 축적 과정이 진정으로 세계적 과정이 되면서, 중국 지배 관료들의 전략적 사고도 변했다.

중국 지배 관료들은 중국의 해외자산 보호, 에너지 안보 등을 위해 대양해군 육성 등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3년부터 중국 정부가 국방백서에 “해외 이익 수호”를 명시하기 시작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

또한 중국 관료들은 아프리카 정부들에 돈과 무기를 지원하고, 유엔평화유지군 깃발 아래 곳곳에 군대를 파견하며, 상하이협력기구 SCO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IIB 등을 주도한다. 이 모든 게 중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지키고자 한 데서 비롯한 변화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 서유럽 국가 등 기존 열강과의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면서 기존의 세계 제국주의 구도를 흔들고 있고 제국주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 1·2·3위의 경제 대국들(미국, 중국, 일본)이 바로 동아시아에서 고전적 형태의 영토 분쟁을 포함한 지정학적 경쟁과 무역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이걸 제국주의 경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제국주의라 할 수 있을까? (제국주의는 열강이 서로 경제적·군사적 각축전을 벌이는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19세기에 홍콩을 영국 제국에 내주던 중국은 20세기 초쯤에는 서구 열강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한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였다. 그러나 1997년 홍콩의 주권을 영국에게서 돌려받은 중국이 홍콩에 들인 군대는 의기양양한 점령군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중국 지배 관료들은 홍콩 자본가들과 손잡고 20년 동안 홍콩을 더욱더 시장 친화적인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시장 친화적 ‘개혁’ 속에 악화된 빈부격차, 그 시장 친화적 ‘개혁’ 과정을 후원한 언필칭 ‘사회주의’ 중국 국가를 보면서 많은 홍콩인들이 분노와 불만을 삭여 왔다. 홍콩 시민의 20퍼센트가 빈곤선 아래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지경이다.

따라서 오늘날 홍콩 대중이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이유를 알려면 ‘사회주의’라고 얼토당토않게 불리는 중국 사회의 진정한 성격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시장을 대폭 수용한 국가자본주의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터무니없이 부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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