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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영국 총선:
급진적 경제·환경 공약을 내건 제러미 코빈

영국에서 12월 12일 총선을 치른다. 제러미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의 집권 여부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권력의 균형을 노동자들 쪽으로 기울이는 … 진정한 변화”을 공약하는 제러미 코빈 ⓒ출처 제러미 코빈

현재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은 보수당보다 10퍼센트포인트 정도 뒤지고 있다. 그러나 코빈의 노동당은 2017년에도 심각한 패배를 예상하던 여론조사를 완전히 뒤집고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래 최대 약진”을 거둔 바 있다. 기권율이 높을 것이라 예상됐던 청년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몰려 간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조짐이 있다.

〈인디펜던트〉는 이번 총선 유권자 등록 수가 2017년 같은 기간(조기총선 실시 발표 직후부터 등록 마감일까지)에 견줘 38퍼센트 늘었다고 보도하며, 증가분 중 다수는 35세 이하 청년들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에서는 해마다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올해 있었던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등록하지 않았던 청년들이 이번 총선에는 투표하려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번 영국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치러진다. 전통적 자본가 정당 보수당의 지도부는 대자본가들의 뜻을 거슬러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맹렬히 추진하고 있다. 반년 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노동당과 보수당이 각각 3위·5위로 밀려난 반면 인종차별적 극우 정당 ‘브렉시트당’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이번 총선에서 코빈의 노동당이 “은행가들·억만장자들·기득권층”에 맞서 “권력의 균형을 노동자들 쪽으로 기울이는 … 진정한 변화”를 약속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코빈의 노동당은 철도·우편·상하수도·에너지 공급망 국유화, 최저임금 인상, 대학 등록금 폐지 등을 공약한다. 주4일 노동 도입, 월세 상한제 등의 공약도 눈에 띤다. 첫 TV 토론회에서 코빈은 “우리는 긴축 정책을 끝낼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분명하다” 하고 말해 대중의 불만을 대변했다.

노동당은 2030년대 안으로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공약한다. 해상 풍력 발전기 설치 등으로 녹색 일자리를 100만 개 만들고, 오염물 배출 직종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조건이 나빠지지 않으면서 노조가 보장되는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도 한다.

현지 주류 언론들은 노동당의 이런 공약이 “영국 경제를 수렁에 빠뜨릴 것”이라느니, 코빈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을 비판한 것을 들어 유대인 증오를 부추긴다느니 하는 비방에 나섰다.

보수당 지도부는 브렉시트를 전면에 내세워 기성 정치 질서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반감을 표로 끌어온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 역겨운 수작이다. 보수당 총리 보리스 존슨이 최근 유럽연합과 타결한 브렉시트 합의안이야말로 노동자 권리를 악화시키고 환경·안전 규제 완화를 허용해 서민들을 더 고통에 빠뜨릴 내용이니 말이다.

우려

그런데 노동당의 선거 공약은 ‘우리가 보수당보다 브렉시트 문제를 더 잘 다룰 수 있다’고 자본가들에게 호소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그래서 이주민과 국경 단속 문제 등에서 후퇴했다. 코빈이 핵무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에서 후퇴한 것이나 동료 노동당 의원이 이스라엘 비판을 이유로 공천 거부됐을 때 사실상 이를 묵인한 것도 아쉽다.

이런 후퇴와 양보에도 불구하고 코빈의 노동당이 선거에서 이기면 세계의 주요 지배자들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특히 코빈이 맹비난하는 긴축은 세계 곳곳에서의 반란에 불을 당긴 뇌관이고, 거기다 영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 국가 중 하나인 만큼 새 노동당 정부가 긴축에 맞선다면 국제적 파급력이 대단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크게 고무할 것이다.

그런 만큼 좌파들은 영국 노동당의 총선 승리를 바라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총선에서 노동당이 이기거나 선전하더라도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자동적으로 많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선거로 좌파 정부를 세울 수 있다’며 교훈의 반만 흡수하려는 것은 진정으로 진보·좌파 정치가 전진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집권만으로 일이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코빈이 집권하면 기대도 커질 것이므로 ‘사회 변화를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 더 실천적으로 제기될 것이다. 혁명가들은 좌파 정부 집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투쟁 수위를 높이는 것에 사회를 바꿀 진정한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1974년 영국, 2015년 그리스:
개혁주의 정부의 실패와 교훈

영국 노동당은 1974년에 지금보다 더 급진적인 공약으로 당선한 바 있다. 노동자 수백만 명이 파업에 나선 1970~1974년 계급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집권한 노동당 정부 아래서 이전까지 연평균 2퍼센트 인상되던 임금이 매년 2퍼센트 삭감하는 것으로 후퇴했다.

의회 다수당이 돼 내각을 이뤘지만, 사회를 진짜로 바꿀 진정한 권력은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를 휩쓸던 경제 위기는 노동당 정부의 통제 밖에 있었다. 결국 자본가들이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자 노동당 정부는 영국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대대적 긴축을 추진하고 나섰다.

지금 노동당을 이끄는 제러미 코빈은 더 물을 것도 없이 좌파다. 하지만 경제 위기 때문에 그리고 경제 권력과 국가의 강제력을 의도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코빈도 집권하면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오히려 1970년대 초중반보다 영국의 계급투쟁 수위가 한참 낮다는 점에서 코빈의 어려움은 더 클 수도 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당을 지지하면서도 “투표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코빈 열풍을 이용해 아래로부터 투쟁을 함께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70년대 영국 노동당과 유사한 최근 사례로는 2015년 그리스에서 집권한 좌파 개혁주의 시리자 정부를 들 수 있다. 시리자는 유럽연합이 빚을 갚으라며 그리스인들에게 강요한 긴축을 거부하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했다. 하지만 유럽 지배자들은 그리스 은행 전역에서 현금인출기 가동까지 중단시킬 정도로 무자비하게 돈줄을 옥죄었다.

결국 시리자 정부는 긴축을 거부하는 국민투표 결과를 정면으로 거슬러 긴축 정책을 추진했다. 시리자는 올해 7월 총선에서 우파 정당에 정권을 빼앗겼다.(관련 기사: 본지 293호 ‘그리스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에게서 듣는다: 시리자 정부의 몰락과 그리스 총선의 교훈’)

코빈 같은 좌파 개혁주의 정치인들이 기존 질서에 대한 노동자·서민층의 반감을 대변하며 급진적인 공약을 내거는 것은 혁명가들이 마땅히 지지하고 환영할 일이다. 수많은 보통 사람들과 함께 코빈의 집권을 바란다. 그러나 선거에서 코빈이 이기든 그러지 못하든 진정한 싸움은 아래로부터 저항을 건설하는 데 있다는 점을 함께 강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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