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개입은 중동의 민중 운동을 좌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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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등은 거셈 솔레이마니 암살이 이란·이라크 대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폼페이오는 암살 몇 시간 후 자기 트위터에 출처 불명의 동영상을 게시하며 이런 설명을 붙였다. “이라크인들이 자유에 환호하며 거리에서 춤춘다.”
물론 솔레이마니는 사회혁명가가 아니었다. 최근에 솔레이마니는 유가 인상으로 촉발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그리고 이란 혁명수비대 수장이었던 솔레이마니는 시리아 혁명에 대한 군사 개입을 주도해 아사드 독재 정권을 위기에서 구출해 줬다. 또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공화국’(ISIS, 이하 아이시스)에 맞선 군사 작전을 지휘하며 이라크 내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골몰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솔레이마니가 잔혹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중동 패권을 지키려고솔레이마니를 죽였다.
미국은 이란과 중동의 민주주의와 해방, 평등에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 미국은 이란인들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반세기 넘게 방해했다. 1953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모사데크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했다. 이후 들어선 친미 샤 왕조가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타도되자, 미국은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지원해 8년간 이란과 전쟁을 벌이게 했다(이란·이라크 전쟁). 그때 이란인 30만 명이 죽었다.
21세기 들어서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 중동을 피로 물들였고, 점령을 유지하기 위해 종파 갈등을 조장하고, 중동 대중의 저항을 방해했다.
뒤틀기
지난해 말,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다시금 중동 정치의 주요 변수가 됐다. 미국의 개입은 여기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대규모 항쟁이 이라크와 이란을 뒤흔들었다. 이라크에서는 친이란계 정치인들의 부패가 대중 저항을 촉발했다. 이라크 민중은 미국이 조장해 온 종파 갈등을 뛰어넘어 단결해 총리 아델 압둘 마흐디를 끌어내렸고, 그후에도 부패한 정권에 맞서 계속 저항했다. 결국 대통령 바흐람 살리흐도 솔레이마니 암살 직전,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란에서는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휘발유 가격 인상 조처를 발표하자 분노한 민중이 대중 항쟁을 벌였다. 특히, 트럼프가 부활시킨 제재 때문에 빈곤과 불평등이 가중된 상황이었다. 이란 정부는 인터넷을 차단하고 1000명 이상을 살해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섰다. 그래도 소요는 멈추지 않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솔레이마니를 살해하고, “막대한 응징”을 을러대며 전쟁 위협을 가하는 것은 그러한 대중 저항에 해로운 영향을 줄 것이다. 미국에 맞서 알리 하메네이 정부를 우선 방어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메네이 정부가 솔레이마니를 반제국주의 투사로 부각시키는 데에는 ‘미국에 맞서 온 국민이 단결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대중 저항을 진압·무마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제국주의 개입은 대중의 진정한 염원을 엉뚱한 방향으로 뒤튼다. 이라크 항쟁 조직자 한 명은 〈가디언〉에 이렇게 전했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암살은 여러모로 최악이었습니다. 이란 정부 지지자들은 ‘이란 정부에 반대하면 미국의 꼭두각시’라며 저희를 공격합니다. 지배자들이 전쟁을 이용해 우리 운동을 분쇄할까 두렵습니다.”
가장 큰 피해는 반정부 항쟁에 참가했던 평범한 이란인·이라크인들이 입을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는 중동 대중의 삶과 항쟁 모두에 비극과 절망만을 낳았고 앞으로도 낳을 것이다.
진정한 해방은 제국주의와 현지 자본주의 모두에 반대하는 이란과 중동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인 행동으로만 가능하다. 2011년 아랍 혁명 당시 강력한 대중 항쟁은 진정한 해방의 가능성을 힐끗 보여 줬다. 그러나 그때도 제국주의의 리비아·시리아 간섭은 대중 운동의 염원을 뒤틀고 좌절시켰다.
트럼프의 전쟁과 자국 사용자들의 착취, 모두에 저항할 노동자 운동이 필요하다. 그런 저항이야말로 중동 민중을 해방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