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2심 유죄 판결:
이용수 할머니의 정치적 비판이 형사범죄로 뒤틀리다
〈노동자 연대〉 구독
9월 20일 윤미향 의원(무소속)이 위안부 피해자 지원 민간 단체인 정대협·정의연*의 기부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핵심적으로 다룬 항소심 재판에서 부당하게도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1심 재판부가 윤미향 의원에게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한 것에서 형량이 대폭 늘어났다.(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공동 피고인 김동희 씨(정대협의 실무 책임자)에게는 벌금 2000만 원 형이 내려졌다.)
윤미향 의원은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상고를 예고했다.
여당은 재판 결과를 이용해 윤미향 의원을 “역사의 아픔과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팔아먹은 파렴치범”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9월 21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은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윤 의원에 대해 ‘30년 동안 할머니들을 이용만 해 먹었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그 순간 윤 의원은 의원직 자격을 상실한 것은 물론 인간으로서도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고통을 자아낸 걸로 따지자면, 국힘과 〈조선일보〉는 올해 3월 한일 강제동원 합의로 피해자들을 짓밟은 윤석열 정부를 비판해야 정직할 것이다.
판결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검찰이 제기한 6개 혐의 중 여론을 크게 자극했던 3개 혐의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이 났다. 그것은 길원옥 할머니의 치매를 이용해 기부금을 뜯어냈다는 혐의, 위안부 피해자 쉼터를 일부러 비싸게 매입했다는 혐의(누군가에게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암시), 그 쉼터를 일반 펜션으로 사용해 임대 사업을 했다는 혐의였다.
검찰과 우파 언론은 선정적으로 이 혐의들을 공개하고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중의 외면을 부추겼다.
유죄 판단 부분도 살펴보자. 첫째, 1심 재판부와 달리 2심 재판부는 여성가족부에 보조금을 허위로 신청했다는 혐의(보조금법 위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이랬다. 이미 정의연으로부터 급여를 받고 있던 직원이 인건비 명목의 여가부 보조금을 추가로 받게 되자 그만큼의 돈을 정의연에 반납했다. 2심 재판부는 이것이 “국가를 속인 범죄 행위”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무슨 명목으로 받았든 간에 활동가가 일단 받은 돈은 그의 소유인 거고 그가 그 돈을 어디에 쓰든 아무도 참견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그 돈을 자기 단체에 주어 단체가 위안부 운동을 하는 데에 쓴다면 그것은 그 활동가가 칭찬받을 일을 한 것이다. 법원이 뭐라 불평하든 간에 말이다.
둘째, 최대 쟁점이었던 횡령 혐의의 경우, 2심 재판부는 8000만 원 상당의 지출을 횡령으로 봤다. 이는 10년에 걸쳐 증빙 자료가 없거나 부족한 200여 건의 지출을 합한 것으로 대부분은 수만~십수만 원대 소액이다. 대여섯 건 정도는 200만~700만 원대 지출이지만 그 총액을 10년으로 나누면 1년에 250만 원도 안 된다. 정의연의 한 해 예산 규모가 2019년 기준 14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무것도 아닌 금액인 것이다. 그런 액수는 정의연 같은 비교적 대규모 시민단체 리더가 다른 운동가들과 만나서 협의하고 조직하는 데 사용하는 비용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게다가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유죄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는 기본 원칙도 어기고 윤 의원에게 입증 책임을 전가했다.
검사 측은 윤 의원의 체크카드 사용 내역을 뒤져 공식 일정상 지출이 아닌 것들에 대해 무차별로 혐의를 제기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윤 의원이 소명한 정황을 고려해 대부분 무죄로 판단했었고, 윤 의원 측은 2심에서 1심보다 더 많은 소명을 했다. 그런데도 2심 재판부는 거의 모든 건에서 검사의 손을 들어 줬다.
결국 횡령 인정액 8000만 원은 횡령이 입증된 금액이 아니라 ‘횡령 아님’을 입증하지 못한 금액일 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유죄 판결은 완전히 부당하다.
마지막으로, 2심 재판부는 윤미향·정의연이 고 김복동 할머니의 조의금으로 모금한 돈을 기부금품법에 따라 신고·등록하지 않고 명목에 맞지 않게 지출했다는 혐의(기부금품법 위반)를 유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무죄로 봤던 부분이다.
실제는 이랬다. 2019년 1월 정의연과 윤미향 당시 이사장은 고 김복동 할머니의 조의금을 모금해 사용하고 남은 돈 1억여 원을 “여성·인권·평화·노동·통일” 운동 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들을 대상으로 ‘김복동 장학금’으로 썼다. 이 장학금 사업은 2023년 현재까지 5회 진행됐고, 매회 10명씩을 선정해 1인당 200만 원을 지급했다.
모금의 명목과 성격을 고려할 때, 남은 조의금은 고인의 유지와 모금에 참가한 사람들의 뜻을 고려해 위안부 피해자 지원이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적으로 쓰여야 하고, 그 다음으로 위안부 문제와 연관된 운동의 활동가를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범위를 넘어 활동가의 자녀에게까지 쓰는 것은 대의명분도 없고 차별받는 대중 속에서 용인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형사 처벌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운동 내에서 토론해 해결할 문제다.
윤석열 정부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시민단체나 모금으로 집회 비용을 마련하는 운동 단체에 “카르텔” 운운하며 감사·수사 등으로 압박하고 있다.(관련 기사: ‘시민단체 국가 보조금, 촛불행동 모금 부정 의혹 제기: 윤석열의 반대 세력 치졸한 흠집내기’, 본지 6월 30일자) 2심 재판부는 이런 공세에 손을 들어 준 셈이다.
비리나 법률 문제로 치환하지 말아야
중요한 점은 사법적 쟁점이 2020년 윤미향·정의연 논란의 본질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논란은 2020년 5월 7일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의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에서 시작됐다.
당시 비판의 핵심은 돈 문제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 미해결 상황과 관련된 정치적 책임성의 문제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윤미향 당시 비례 국회의원 당선인이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 내용을 외교부로부터 미리 듣고도 피해자에게 알리지 않았고, 위안부 문제가 다 해결되기 전에 국회로 진출했다고 비판했다.
5월 25일 2차 기자회견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투쟁한 지 30년이 되도록 양국[한·일] 정부의 무성의와 이리저리 얽힌 국제 관계 속에서 그 결실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일본의 사죄와 배상 및 진상 공개”라는 원칙을 다시 분명히 하라고 윤 의원과 정의연 측에 촉구했다.
이용수 할머니의 이러한 비판과 분노는 그 배경을 알면 좀 더 명확히 이해된다. 당시 임기 3년 차였던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를 배신했다. 박근혜와 아베의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파기할 것처럼 약속해 놓고는 집권 후에는 공식 합의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의연과 윤미향 당시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비판을 삼갔다. 그리고 2020년 3월 말 윤미향 당시 이사장은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더불어시민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훼손하며 민주당이 급조한 위성 정당이었다.)
물론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의원의 정치를 비판하면서, “학생들이 한 푼 두 푼 내서 모은 수요집회 성금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한 것은 사실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첫 번째 공개 비판 이후 정치권과 언론의 초점이 회계 미숙 및 횡령 의혹으로 비틀리자, 할머니는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굴 원망하고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제가 처음 기자회견 할 때 말했는데, [이후에] 많이 생각지 못한 것이 나왔어요. 그런 내용들은 검찰에서 조사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용수 할머니는 횡령 의혹을 알게 돼 수사 필요성을 제기하긴 했지만, 이는 할머니의 윤미향 비판의 핵심 쟁점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파들은 오직 횡령 혐의만이 문제의 전부인 양 쟁점을 뒤틀어 버렸다.
그럼으로써 우파들은 윤미향 의원을 파렴치범으로 몰아 국회의원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우파들의 이러한 흙탕물 치기는 이용수 할머니의 비판과 위안부 운동을 놓고 정치적 토론이 이뤄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방해해 온 자기들의 원죄를 물타기하는 동시에, 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일으키려 한 것이다.
개혁주의 정치 문제
우파들의 주장과 달리, 윤미향 의원이 위안부 피해자와 갈등을 빚게 된 것은 윤미향 의원이 처음부터 주도면밀하게 위안부 피해자들을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으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다. 30여 년간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해방 운동을 해 온 그의 삶의 궤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진정한 문제는 윤미향·정의연이 이끈 위안부 운동의 전략이라고 봐야 한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제국주의 미일동맹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협력 때문에 문제의 해결이 거듭 희생돼 왔기 때문이다.
역대 우파 정부는 물론이고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민주당 정부들도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바라는 피해자들의 바람보다 일본·미국과의 경제·안보적 협력을 더 중시했다. 민주당 정부는 우파 정부보다 좀 더 눈치를 보다가 결국 수줍게 그렇게 했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정대협·정의연은 제국주의 강대국들(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등 국제기구와 민주당 정부를 활용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 내고자 했다.
게다가 정대협의 간부들(윤미향 외에도 지은희·신미숙 씨 등)은 민주당을 통해 정계로 나아갔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비서관이나 여성부장관 같은 공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 회피와 외면을 막지 못했다.
위안부 운동의 지도자들이 제국주의 및 자본주의와 협상하는 전략을 취할수록 위안부 피해자는 “희망고문”을 당하는 셈이 되고, 그런 전략이 실패를 거듭할수록 좌절감과 심지어 절망감에 빠졌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질에 눈을 감았던 정대협·정의연은 정부 보조금과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과 심지어 명성교회(세습 논란의 핵심이 된)의 후원을 크게 받았고, 이에 대해 비판적 문제 의식이 별로 없었던 걸로 보인다. 이 또한 개혁주의 전략과 관계 있다. 때로 어느 정도의 불가피성은 이해할 수 있지만, 기업과 정부와 보수 목회자에 대한 재정적 의존이 커지거나 장기화되면 분명 정치적 의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본지의 윤미향·정의연 비판은 이러한 개혁주의적 전략의 한계와 모순을 좌파적 관점에서 지적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우리는 우파가 위안부 운동에 대해 티끌만큼도 훈계할 자격이 없다고 단호하게 비난했다.
지금 우파들은 윤미향 의원이 파렴치한 횡령 범죄자일 뿐 아니라, ‘일본에 가서 핵 폐수 방류를 반대하고 조총련 주최 관동대지진 학살 희생자 추모식에 참석해 국가 망신을 시켰다’며 윤 의원의 별문제 없는 행보도 싸잡아 비난한다.
위안부 피해자를 위하는 척하면서 실은 윤석열 정부의 일본 정부(그리고 진정한 배후인 미국)에 대한 친제국주의적 협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