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확대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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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노동개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민주당이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11월 12일 전체회의에서 관련 법안들을 본격 다루기 시작한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노동자들의 사업장 점거를 금지하고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늘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이다.
이번 국회에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고용보험 적용에 관한 정부 입법안도 상정됐다. 상당수 노동자들을 또다시 보험 혜택에서 누락시킨 누더기 법안이다.
정부는 2년여간 공들여 온 노동개악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거듭 표명했다. 최근 민주당 정책위원장 한정애는 특히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의 11월 국회 통과를 자신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측과도 의견 일치를 봤다는 얘기이다.
둘 사이에 쟁점이 있다면,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연장까지 추가로 개악할 것이냐 하는 점뿐이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기업주들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서는 한통속이다.
주 52시간제 무력화
문재인 정부가 탄력근로제 확대에 나선 직접적 이유는 주 52시간제에 따른 사용자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대 국회가 여야 간 정쟁으로 마비돼 있는 동안에도 ‘계도 기간’을 둬서 주 52시간제 시행을 거듭 연기시켰다. 또 특별연장근로를 대폭 늘리는 등 행정조치를 취해 사용자들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제 올해 말이면 그 ‘계도 기간’이 종료된다. 내년 1월부터 300인 미만 사업장(50인 이상)에도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는 것이다. 이에 다급해진 기업주들의 “보완책 마련” 요구가 더 강해졌고, 정부도 개악안 입법화를 서두르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법에 정해진 단위 기간 동안의 평균 노동시간만 주 52시간으로 맞추면, 그 내에서는 사용자들 마음대로 노동시간의 길이, 배치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러니 사용자들은 일감이 몰리는 기간에 노동자들을 장시간 부려 먹을 수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전과 달리 연장근로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도 덜 수 있다.
단위 기간이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되면, 사용자들은 더 용이하게 제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가령, 계절에 영향을 받는 빙과류·냉난방장비 등의 업종이나 일정 주기로 일이 몰리는 여행상품 판매업 등에서는 성수기 3개월 동안 최대 주당 64시간까지 바짝 장시간 일을 시킬 수 있다.
게다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연속해서 활용하면 장시간 노동이 허용되는 기간이 두 배로 더 길어질 수도 있다. 6개월 이상 최대 주당 64시간 노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 한 사업장의 노동자 전체에게 동일하게 적용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일정 사업 부문·부서·직종별로, 심지어 대상 노동자를 특정해 도입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단지 계절적 업종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업장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노동자들을 유연하게 돌려 쓰면서 장시간 근무체계를 유지하거나, 재고 물량의 변동에 따라 탄력적으로 인력을 투입하고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노동시간 특례업종으로 지정돼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다가 주 52시간제의 적용을 받게 된 버스업, 정보통신업 등에서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등 각종 유연근무제가 활성화 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들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대되면서 경기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유연근무제 도입 사업장이 대폭 확대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케아 노동자들, “유연근무는 ‘워라벨’ 파괴”
사실 유연근무제는 박근혜 정부도 추진해 온 정책으로, 문재인 정부도 주 52시간제 도입 이전부터 확대하려고 애써 왔다.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먼저 시행에 착수해 민간부문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일찌감치 제시한 바 있는데, 실제로 문재인 정부 들어 공기업·공공기관에서 활용도가 크게 늘었다.(아래 표)
정부는 유연근무제가 노동자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일·생활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라고 홍보했지만, 그것은 허울좋은 말일 뿐 진실은 정반대다. 오히려 진정한 목적은 제한된 인력·비용으로 기업의 생산성·효율성을 제고하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추가 연장근로, 휴일특근까지 더하는 장시간-저임금 노동체제는 경기가 잘 나갈 때 확실히 기업주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 줬다. 그런데 이제 경제 위기가 깊어지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와 사용자들은 추가 비용 없이 탄력적으로 노동시간과 인력을 배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결합시키고자 한다.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뜻하는 바는 노동조건 악화, 임금 삭감, 압축된 장시간 노동과 생활 리듬의 파괴 등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건설연맹 산하 건설기업노조는 지난해 한 토론회에서 3개월 단위 탄력근로제 도입으로 11주 연속 주당 64시간씩 일하면서 골병 드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폭로했다. 지난해부터 300인 이상 기업에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해당 건설업체들은 거의 100퍼센트 탄력근로제를 전면 도입했다.
● 주당 7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온 버스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노동시간 단축을 열망해 왔다. 이제 버스업종이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주 52시간제를 적용받게 됐는데, 노동자들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노동시간이 줄었다는 이유로 임금이 삭감된 데다 탄력근로제 도입 이후 연장근무를 할 때도 수당을 못 받기 때문이다. 월 평균 임금이 3분의 1가량이나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 이케아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불규칙한 근무스케줄 등에 맞서 최근 생애 첫 항의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 기업은 문재인 정부가 2018년에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의 하나로 선정한 곳인데, 노동자들은 극도의 불안정한 저질 일자리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노동자들은 주당 16~40시간까지 노동시간의 총량을 선택할 수 있지만, 1일 노동시간의 길이와 출근시간은 정할 수 없다. 매일같이 변하는 근무스케줄 때문에 노동자들은 워라벨은커녕 “인간관계[를] 끊어야 할 판”이라고 말한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고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선택권”과 “일·생활의 균형”을 보장할 리 만무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의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은 노동자들을 더한층 고통으로 내몰 것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노동운동이 대체로 정부의 노동개악 시도를 규탄하면서도 노동자들 전반의 조건을 하락시킬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탄력근로제 확대에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