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후변화, 핵전쟁 위기…:
“항구적 재난”이 된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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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위기는 체제의 이례적 현상이 아니라 상시적 위기의 한 모습이라고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주장한다.

위 내용은
빌의 글은 경고로 끝난다.
이제 우리는 전보다 더 잘 알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읽었듯이, 마이크 데이비스나 롭 월러스 같은 선구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하에서의 환경 파괴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창궐할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고 오랫동안 경고해 왔다. 코로나19를 예측하기는 어려웠을지 몰라도, 5000만~1억 명이 숨졌던 1918~1919년의 끔찍했던 인플루엔자 유행
세계사학자 윌리엄 H 맥닐은 고전 《역병과 사람들》
재난은 더는 예외적이지 않고 정상적인 일이 됐다. 주류 정책 입안자들도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국 민주당에 지적 영향력을 강력하게 행사하는 브루킹스연구소는 차기 바이든 정부에 코로나19 위원회를 꾸려서 케네디 암살, 9
코로나19 위원회를 제안한 일레인 케이마크는 이 위원회가 도널드 트럼프의 책임을 조사할 뿐 아니라
이런 일은 각국 지배계급에게 지적
다시 말해,

하지만 1945년 이후 미국의 관장 아래 선진 자본주의는 서유럽과 일본에서 재건됐고, 세계 경제는 역사상 최대 호황을 구가했다. 부유한 선진국에서 노동계급이 투쟁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사반세기 동안 완전 고용이 실현됐고 복지국가가 확대됐다. 서구에서는 재난이 잦아들었다. 1950년대 초 한반도, 1960년대 중엽 인도네시아, 1970년대 말까지 인도차이나 반도의 현실은 여전히 끔찍했지만 말이다.
1970년대에는 오랫동안 계속될 경제 위기가 시작됐다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은 갈수록 금융 거품으로 소비와 투자를 진작시키는 데에 주로 기대게 됐다. 국가는 이런 거품 조장에 늘 일조해 왔다. 하지만 2007~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경제 성장은 중앙은행이 금융권에 돈을 새로 주입하는 데 의존하게 됐다. 그 돈 덕에 자산 시장은 호황을 구가했고, 부동산
전제 조건
1938년에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장기적인 경제적 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은 각종 조짐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정책 결정 과정을 지배하지만, 성배마냥 떠받들어지지 않은 지 오래됐다. 그보다는 일종의 자동 조종 장치처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같은 관료들이나 중앙은행이 관장하고 금융시장의 강제력으로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그 결과, 세계 금융 위기와 끝도 없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중이라고 하면 과장일 것이다. 그보다는 체제가 갈수록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파괴적인 결과를 양산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1945년 이래로 수십 년 동안 재난은 마치 갈수록 길게 드리우는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냉전기
이런 파괴 행위 중 가장 위험한 것은 기후 변화다.

과학자와 활동가들은 이런 과정의 필연적 결과인 무질서한 기후 변화를 오래전부터 예견해 왔는데, 갈수록 늘고 있는 생태적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그 일부였다. 이제 그 예상이 현실이 됐다. 2019년 3월 동아프리카에서 광범한 홍수와 인명 피해를 낳은 사이클론 이다이를 예로 들어 보자. 나는 어릴 적 짐바브웨
예외적인 일들이 갈수록 보통이 되고 있다. 2019년 아마존 화재는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 뒤로도 오스트레일리아에 산불과 홍수가 닥쳤고 미국 서해안에 산불이 크게 일어
코로나19는 역병과 기아가 계급 사회만큼이나 오랫동안 지닌 특징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바로 가난한 이들이 재난에 훨씬 더 취약하다는 것이다. 가난하면 대응 자원도 부족하고 위험이 닥쳤을 때 벗어날 수단을 마련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망률은 인종과 계급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림 반대편의 모습은 예컨대 호화 요트 수요가 늘고 있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부자들은 감염 중심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그런 요트에서 계속 사업을 벌이며 더 많은 부를 쌓고 있다.
이런 격차뿐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에게 목숨을 걸고 일상 생활에 나서도록 끊임없이 강요하는 압력을 보면, 아르헨티나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나탈리아 로메가 말한
재난을 가장 체계적으로 다룬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는 테오도어 아도르노다. 독일계 유대인 아도르노는 나치의 권력 장악 뒤 유럽을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의 친구이자 스승인 베냐민은
언제나 그렇듯 관건은
하지만 자본주의가 재난이라면, 우리 자신과 후손들의 안전을 보장할 유일한 방법은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제러미 코빈의 몰락은, 자본이 얼마나 거세게 저항할지를 보여 준다. 강력한 좌파를 재건하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그 핵심에 자리잡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