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제 논란:
조건 후퇴 없이 노동시간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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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위기와 워라밸(일과 가정의 균형) 요구 속에서 주 4일제 논의가 떠오르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근로기준법을 폐지하고 전 국민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10월 말에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가세하면서 탄력이 붙었다. 물론, 그는 “국민적 공감대가 우선”(홍남기)이라는 정부와 당내 주류의 눈치를 보고 있다. “지금 공약해 시행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뒷걸음질친 것이다.
반면, 재계와 사용자 언론들은 ‘나라 경제를 파탄 낼 셈이냐’며 결사 반대한다. 국민의힘 윤석열도 “정부가 일률적으로 노동시간 규제에 관여하는 것에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 [시키자]”고 했던 자이니, 놀랄 일도 아니다!(주 120시간이면 주5일은 24시간 일해야 함)
한국은 여전히 세계 최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2019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67시간으로 세계 2위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일감이 줄었다는 지난해에도 무려 1908시간이나 된다. 한국 노동자들은 OECD 평균(1687시간)보다 연간 221시간을 더 일한다.(하루 8시간 기준으로 1년에 한 달을 거의 쉬는 날 없이 더 일하는 셈)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열망은 광범하다. 지난 8월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3.6퍼센트가 주 4일제를 원한다고 답했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1987년 이래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에 직면해 생산성 증대를 대가로 노동시간을 줄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떨어지는 이윤율을 회복하는 데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서 정부와 사용자들은 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하려고 애써 왔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 공약을 내팽개치고, 탄력근로제 확대,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와 기간 확대, 임금 삭감 등으로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한 것이 보여 주는 바다.
자본주의는 등장 때부터 노동시간을 둘러싼 싸움으로 특징지어졌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가들에게 “1분 1초가 수익의 요소”다. 즉 “시간이 돈”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은 노동자 투쟁에 의해 결정되는 “도덕적·역사적” 요소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광범하게 단결해 투쟁해 정부와 사용자들을 압박할 때 노동시간 단축을 진정으로 쟁취할 수 있다.
생산력·기술 발전에도 노동시간 단축 운동이 중요한 이유
재계와 우파 언론은 주 4일제 도입이 시기 상조라고 핏대를 올린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력은 이미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도 모두가 먹고살기에 충분할 만큼 발전해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전 사회보다 비할 데 없이 막대한 재화와 부를 만들어 냈다.
물론, 눈부신 생산력 발전이 자연스럽게 사회 진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주 4일제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말은 그럴싸하게 보일지 몰라도 진실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과학기술과 생산력의 발전을 통제하고 있으며, 누구를 위해 그것이 사용되고 있는지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가들이 이윤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좌우된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는 기술 발전이 인간의 고된 노동을 수월하게 만들어 주기보다는 오히려 더 쉴 틈 없이 일하게 만들거나 인력을 줄이는 데 쓰인다. 한쪽에서는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는 모순이 벌어지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싸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까닭이다.
“비정형 노동 증가”로 노동시간 규제는 무의미해졌나?
일부 사람들은 오늘날 “비정형 노동”의 증가로 주 4일제 도입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가령,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은 “근무시간의 경계가 형해화”돼 있어 “노동시장과의 정합성이 낮다”(이승윤 중앙대 교수)는 것이다. 이제 “길이를 단축하는 형태의 시간 투쟁은 낡은 것”(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 도입에 따른 변화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여러 연구를 봐도 노동자의 압도 다수는 여전히 전통적 고용관계 속에 있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라고 해서 노동의 성격(본질)이 변한 것도 아니다. 이 노동자들도 사용자의 관리·감독 하에서 노동시간을 통제받으며 일한다.
무엇보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쓸모없는 “낡은 투쟁”이기는커녕, 노동조건과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절실한 요구다.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은 마음대로 앱을 끄거나 오래 접속하지 않으면 일감 배정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장시간 일하게 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사에 내몰려 온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 인력 투입을 요구하며 파업해 성과를 낸 것도 대표적 사례다. 배달 서비스 노동자들도 같은 이유로 투쟁하고 있다.
노동시간 규제가 강화되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에게도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하며 투쟁할 자신감을 줄 수 있다.
‘어차피 노동유연화로 뒤틀린다’는 관조적 태도를 피해야
어떤 활동가들은 노동시간을 단축해도 결국 노동유연화로 뒤틀릴 뿐이라고 주장한다.
주 40시간제, 주 52시간제를 도입해 봤지만, 탄력근로제 도입 등으로 실제 단축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는 “선의로 추진한 급진적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노동 양극화를 부추길 수 있다”(사회진보연대)며 반대하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물론, 노동시간이 단축될 때마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물타기를 시도했다. 노동강도를 높이고 노동유연화를 강화해 손실을 만회하려 했고, 때로는 법마저 무시하고 실노동시간을 늘리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으로 예정된 결과는 아니다.
“현실의 노동시장은 말 그대로 ‘시장’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측면이 상당”하다는 주장은 일면적인 진술이다. 자본주의 노동시장에는 노동자 투쟁도 영향을 미친다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을 놓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 작동 때문에 노동력의 가치를 둘러싼 투쟁은 어차피 무의미하다고 냉소하는 관조적 유물론을 비판했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쟁취할 수 있다. 좌파는 운동에 뒷짐 지지 말고 적극 뛰어들어 투쟁이 전진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임금 등 조건 후퇴가 없어야 한다
주 4일제 도입 제안은 일자리 위기가 심각해진 오늘날 어느 때보다 호소력이 있다.
코로나19 충격과 경기 침체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청년 실업률도 사상 최고치다. 반면, 택배, 배달, 병원, 요양서비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그만큼 일자리를 대폭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임금이 삭감되거나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등의 조건 악화가 없어야 한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취약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를 보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시하면서도, “대중소기업 노사의 상생 노력, 노동 내부의 연대, 중층적 사회적 대타협” 등의 표현으로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양보 가능성을 열어 둔다.(노골적으로 양보의 필요를 주장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임금이 삭감되면 노동자들은 다시 줄어든 임금을 벌충하려고 연장근로나 ‘투잡’을 해야 할 수 있다. 노동자 삶의 질을 개선하기 어렵고, 일자리 창출도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 점에서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공약한 것은 올바르다.
노동강도가 더 늘어서도 안 된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들은 노동시간을 줄여도 신규채용 없이 기존 인력으로 공장이나 사무실을 돌리게 될 것이다.
결국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비용을 누가 치를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
임금 삭감,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 4일제가 시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