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
철도 안전 시스템 구축 않고 기관사 처벌만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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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공사와 철도사법경찰대(이하 철사경)가 시스템적 결함 때문에 경미한 사고를 일으킨 기관사에게 과도한 형사 처분을 시도하고 있어 기관사 노동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8월 15일 수색역 구내에서 단행 열차(차량 맨 앞에서 여객차를 끄는 기관차)가 차막이(철길 끝에서 철도 선로가 끝남을 알려 줘, 차량이 선로 구간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장치)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관차에는 기관사만 있었고, 인명 피해나 열차 지연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차량 손실도 경미했다.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지부에 따르면, 이번 추돌사고는 차막이가 수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고, 새로운 속도 제어 장치가 기존 장비와 호환되지 않아 작동하지 않았던 것 등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철도공사와 철사경은 사고가 일어난 조건은 무시한 채, 기관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형사 처분을 밀어붙이려 한다.
형사 처분의 근거는 2020년에 개악된 철도안전법 78조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사람이 탑승 중인 열차의 탈선·충돌·시설 파괴 등의 업무상 과실이 발생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그런데 철사경은 기관사 1인도 ‘탑승 중인 사람’(승객)이라며 철도안전법 78조를 적용하겠다고 한다. 억지 춘향식 꿰어 맞추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기관사 노동자들은 이번 사건이 선례가 돼 개별 노동자에게 ‘묻지 마’식 책임 전가가 강화되는 것 아니냐며 불만과 우려를 표출하고 있다.
이승용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지부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국토부는 철도 사고만 생기면 기관사 개인의 정신 상태가 문제라며 기강을 잡겠다고 난리입니다. 물론 기관사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고, 사고가 날 수도 있죠. 그러나 사고를 줄이려면 기관사만 때려잡을 게 아니라 안전 시스템을 먼저 제대로 구축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윤 논리에 안전은 뒷전
국토부와 철도공사는 “근무 기강 해이”가 사고의 주요 원인이라며 지난 몇 년 동안 기관사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해 왔다.
기관사 개인의 실수를 적발하겠다며 운전실 내 CCTV를 설치하고, 징계 수위를 높여 왔다. 이제는 형사 처분도 남발하려 한다.
그러나 철도 사고는 기관사 개인의 업무 과실보다 구조적인 문제(차량과 시설 노후 등으로 말미암은 시스템 결함, 인력 부족 등)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훨씬 크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2020년 4월에 발표한 ‘철도사고 조사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0년 4월까지 발생한 철도 사고 66건 중 32건이 기계 결함에서 비롯됐다. 가령, 2018년 강릉KTX 탈선 사고는 선로 전환기 시공 오류가 원인이었다.
기관사의 업무 과실도 단순 부주의보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노동환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지부 부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기관사들은 근무 시간이 매우 불규칙해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무엇보다 인력이 너무 부족해요. 1인 승무와 과도한 업무량 등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요. 만약 1인 승무 기관사가 갑자기 쓰러지면 어떻게 될까요? 정말 아찔합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으면서 기관사만 족치고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으니 기가 막히죠.”
기관사들은 과도한 처벌 강화는 사고의 원인을 노동자에게 덮어씌우며 공포감과 위축감을 부추겨 사고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게 만드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해서는 안전 사고를 예방할 수도 없다.
정작 경비를 절감하려고 인력 부족을 방치하고 1인 승무를 늘리며 사고 위험을 키워 온 것은 국토부와 철도공사였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내년 철도 예산을 삭감했다. 또한 이윤과 수익성 논리를 앞세워 철도 민영화도 추진하려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민영화는 대형 사고의 지름길이었는데도 말이다.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지부는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나 예방책엔 관심 없고, 기관사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려는 국토부와 철사경, 공사를 상대로 항의에 나섰다.
9월 14일 철사경 건물 앞에서 서울기관차지부를 비롯 운전 조합원 200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고, 해당 기관사의 철사경 조사 출석일인 26일에도 항의 시위를 진행했다. 전국의 승무직 노동자 1만여 명이 항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밝히며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수색역 사고 관련 기관사에 대한 과도한 징계와 처벌 시도 중단하고, 인력과 안전 시설에 투자를 대폭 확충해 철도 승객과 노동자 모두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