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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안전사고: 인력·투자 부족이 원인이다:
기관사들에게 책임 전가 말라

철도 기관사 노동자들이 공사 측의 처벌 강화 시도에 항의하며 투쟁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사고 예방과 안전 대책이라는 미명하에 사고를 낸 기관사에 대한 징계 수준을 높여 왔다.

고의나 중과실에 따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도 ‘휴먼 에러’(인간이 일으키는 조작 실수)에 대한 법적 처벌은 강화돼 왔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기관사에게 수천만 원의 벌금과 징역 등의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철도안전법을 개정했다.

개정된 철도안전법은 처벌 기준이 모호해 과잉 처벌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격으로 형사 처분이 남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승무직종대표자회의가 10월 11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관사에 대한 억압적 철도안전법 개정을 위한 투쟁을 선포하고 있다 ⓒ김지은

아니나 다를까, 지난 8월 15일 수색역 구내에서 단행 열차(여객차를 끄는 차량 맨 앞 기관차)와 차막이(철도 선로 끝을 알려 주고 철도 선로 이탈을 방지하는 장치)가 살짝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철도공사는 해당 기관사에게 철도안전법에 따른 형사처벌을 예고했다.

과도한 형사 처벌

그러나 이는 가당치 않다. 기관차에는 기관사만 있었다. 인명 피해, 열차 지연, 심각한 시설 파괴 등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장 CCTV와 충돌 사고 영상을 살펴본 노조 측은 여름철 내내 자란 수풀이 선로와 차막이를 가리고 있었던 것이 결정적 문제라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은 수색역 사고 발생 전부터 사고 위험 요소인 수풀을 자주 제거해 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그러나 철도공사 측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이를 외면해 왔다.

그런데도 철도공사 측은 사고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해당 기관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편파적인 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철도공사의 뻔뻔한 행태에 기가 찰 노릇이다.

기관사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철도안전법을 적용한 형사처벌이 점차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잠깐의 실수로 전과자까지 돼야 하냐”며 분노가 커지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승무직종대표자회의 주최 기자회견에서 김종배 철도노조 운전국장은 이렇게 성토했다.

“이런 처벌 강화주의로 철도 현장이 더욱 안전해졌습니까? 오히려 이중, 삼중의 처벌로 기관사의 심리적 부담이 가중되면서 운전 환경이 악화됐습니다. 철도 안전 시스템 개선은 요원해졌고, 사고를 은폐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 예방적 안전 시스템은 더욱 부실해졌습니다.”

이승용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지부장도 징벌주의 정책을 강하게 규탄했다.

“[철도공사는] 사고 때마다 기관사에게만 책임을 전가해 왔습니다. 이미 우리는 불규칙한 교번 근무로 심리적·육체적 불안정 상태에서 일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한 징계와 감시로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발상은 완전한 착각입니다.”

빗장 풀린 안전 시스템

국토부와 철도공사는 사고 때마다 기관사들의 “기강 해이”를 문제 삼아 왔다. 사고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겨 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안전”이나 “기강”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국토부와 철도공사는 정작 사고 예방을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할 안전 시설과 인력에 대한 투자에 매우 소극적이다.

사고와 운행 장애는 많은 경우 차량과 시설(선로 전환기, 신호 장치, 레일 등)의 결함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차량 정비와 시설 점검 주기를 늘리고 1인 승무를 확대하는 등 위험을 키워 왔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위험을 더한층 키울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통해 민영화, 구조조정, 임금 억제 방향을 제시했다.

철도공사는 이런 정부 정책에 조응해 차량정비 외주화 등 민영화를 추진하고, 자회사를 포함해 1000여 명의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같은 민영화, 구조조정은 안전을 위한 소통·협력 체계를 약화시키고 안전사고 예방과 신속한 대응을 더 어렵게 만든다.

현재 기관사들은 시간외 근무나 휴일 근무까지 감내하며 힘겹게 버티고 있다. 기관사들의 휴식 부족과 피로 누적은 열차와 승객의 안전에 악영향을 주지만, 철도공사는 연차마저 제약하고 있다.

안전 시스템에 투자하라는 기관사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진정으로 필요한 안전 대책은 외면하면서 기관사에게만 책임을 덮어 씌우기 위한 형사처벌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

철도노조는 10월 18일 국토부 앞에서 기관사 조합원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11월 1일부터는 같은 문제에 직면한 철도·지하철 노조 기관사들이 다 함께 처벌 중단과 철도안전법 개정을 요구하며 안전운행(열차 시간과 간격 등을 규정대로 운행하는) 투쟁에 돌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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