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국회에서 통과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개정안은 수요 대비 쌀 생산량이 3~5퍼센트를 초과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퍼센트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 매입하는 것이다. 쌀 재배 농민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이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쌀값이 그 전년 대비 24퍼센트나 떨어지면서 공론화됐다.
쌀 재배 농민들에게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던 것이 문재인 정부 때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합의로 정부가 쌀을 사들여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제도로 바뀌었다.
그런데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재정 긴축을 이유로 쌀 매입을 하지 않은 것이다.
윤석열은 4월 4일 거부권 행사를 공표한 국무회의에서 이 개정안을 인기영합주의로 재정을 낭비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난했다. 윤석열은 대선 후보 시절에는 쌀 매입을 지지했었다.
복지 삭감을 정당화하는 재정 건전화 논리가 농민들의 생계 보장 요구를 외면하는 데 이용된 것이다.
기업주들과 정부는 서민들의 생계 지원에 쓰는 재정을 아껴 기업 지원과 국방비 등에 더 쓰기를 원한다.
그러나 윤석열이 이 법을 거부한 것은 단순히 재정 문제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6일 채널A는 윤석열이 “[민주당이] 의석수로 밀어붙인 법안은 100퍼센트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발언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노란봉투법 등에도 거부권 행사를 예고한 것이다. 좌파 진영과 노동계가 민주당을 압박해 개혁 입법을 시도하는 것을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우파층에게 단호한 리더로 보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양곡법 개정안이 농민과 정부를 분열시키려고 내놓은 책략이자, 개혁을 빙자한 이재명 방탄 법안이라고 비난해 왔다.
반면, 대장동 수사 등 공세 속에서 민주당 이재명 지도부는 대중 단체들이 요구해 온 몇몇 개혁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었다.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을 국회에서 다시 통과시키려면 국회의원 200명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의원이 100명이 넘으니 재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석열의 협박으로 개혁 입법 시도는 시작부터 내용 삭감 압력을 받아 왔다. 노란봉투법 개정안이 민주당 발의안 수준에도 못 미친 것도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이 없는 수준의 법안이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번 양곡법도 농민 단체들의 애초 요구보다 후퇴했다. 개혁 입법을 위해서 개혁 내용을 삭감해야 한다는 본말전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그런 양보한 법안들조차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이렇게 보수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민주당과의 공조와 의회 내 협상이 주된 투쟁 방법이 되면 노동자 등 서민층의 조건은 개선되기가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