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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연금 개악 반대 운동 100일:
마크롱에 맞선 거대한 운동이 보여 준 잠재력과 과제

냄비를 두드리며 마크롱의 연금 개악에 반대하는 파리 시위대 ⓒ출처 Photothèque Rouge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연금 개악에 반대하며 시작된 운동이 4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마크롱의 연금 개악안은 한국의 헌법재판소 격인 프랑스 헌법위원회가 4월 14일에 승인하며 제도적 절차를 모두 마쳤다. 그러나 운동이 수그러들 것이라는 주류 언론의 예측과 달리, 연금 개악 반대 운동은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기해 열린 제13차 전국 행동의 날엔 전국적으로 300여 개의 시위에 230만 명이 모여 행진했다. 운동의 저변과 분노가 여전히 광범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런 분노와 행동이 어떻게 수개월째 지속되고 있을까? 그리고 마크롱의 공격을 좌절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전략은 무엇인가?

연금 공격에 맞서 시작된 운동

이 운동은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지난 수십 년 이래 프랑스에서 가장 거대한 저항으로 성장했다. 그만큼 분노가 거대하다는 뜻이다.

마크롱은 연금 수령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고, 연금 납부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려 한다. 전형적인 “더 내고 덜 받는”식의 신자유주의 공격이다.

프랑스 자본가들은 유럽의 다른 경쟁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프랑스 노동자들의 연금을 눈엣가시처럼 여겨 왔다. 게다가 세계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프랑스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74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한국 국민연금의 경우는 40퍼센트이다. 또, 영국와 독일 등 이웃 국가들의 연금 수령 연령이 66세 가량인 것에 비해 프랑스는 62세로 상대적으로 낫다.

그래서 연금 공격은 프랑스 지배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1995년 알랭 쥐페 정부가 연금 개악을 시도하다가 좌절했고, 마크롱은 2019년에도 연금 개악을 밀어붙이려 했다. 현재 연금 수령 연령은 2010년 사르코지 정부가 당시 60세였던 것을 개악한 것이다.

그동안 프랑스 노동자들은 만만찮게 싸워 왔다. 1995년에는 알렝 쥐페 정부가 연금 개악을 시도하다 공공부문의 총파업에 밀려 개악 시도 뿐 아니라 정부 자체가 완전히 박살났다. 프랑스 자본가들은 이런 노동계급의 전투성을 약화시키려 한다.

현재 거대한 저항에도 마크롱 정부가 개악을 포기하지 않는 배경에는 노동계급 운동의 이런 투지를 꺾으려는 프랑스 지배자들의 정치적 의도도 있다.

현재 연금 개악 반대 운동은 프랑스 노동자들의 일반화된 분노와 투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주요 노동조합 연맹이 공동으로 소명한 전국 행동의 날에는 전국적으로 수백 곳에서 시위가 벌어진다. 일부 지방 소도시에서는 전체 인구의 절반이 시위에 참여할 정도다.

파리 교통공사 노조, 폐기물 수거 노조, 정유 노조, 전력 노조 등 일부 노동조합들은 무기한 파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전력 노조는 무상으로 저소득층 지역이나 병원·학교 등에 전기를 공급하는 ‘로빈후드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여러 지역에서 파업 노동자와 파업 지지자들, 활동가, 중고등학교 학생 등이 참여해 행동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총회’가 열렸다. 이런 총회를 통해 파업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는 피켓라인 시위나 중고등학생들의 교문 봉쇄 시위를 지원하는 활동이 결정, 집행됐다.

연금 문제로 시작된 이 운동은 거대한 저항으로 성장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까지 포괄했다.

기후 운동과 인종차별 운동도 고무했다. 특히, 이주민과 무슬림을 공격해 온 파시스트 마린 르펜과, 이에 편승하며 인종차별을 부추겨 온 마크롱에 맞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연금 개악 반대 운동과 만났다.

마크롱이 연금 개악안을 밀어붙이려고 반민주적 헌법 조항으로 의회를 건너뛰고 경찰력으로 시위대를 폭력 진압하면서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적 문제 제기도 커졌다.

이렇듯 이 운동은 친부자 반민주 마크롱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반감을 대변하고 있다. 그런 만큼 연금 개악 저지 운동이 승리하면 다른 요구들도 승리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가다서다

하지만 주요 집회를 소명해 온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계급이 파업으로 자기 고유의 힘을 한껏 이용하게 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요구들이 연금 개악 반대 운동 속에서 제기되며 노동자들의 투지가 고무되는 것을 경계해 왔다. 운동이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노조 지도자들은 장뤽 멜랑숑의 뉘프(NUPES)와 같은 좌파 정당들과의 협력을 통해 국가 기구의 공식 절차에 매달려서 마크롱의 개악을 막으려 하고 있다.

많은 노조들이 띄엄띄엄, 하루 이틀씩 파업을 벌이는 가운데 3~4월 정유와 철도 등 일부 부문에서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을 때, 노조 지도자들은 이를 확대·강화하긴커녕 헌법위원회의 판결과 국민투표에 더 기대를 걸었다.

전국 행동의 날도 의회 절차에 맞춰 띄엄띄엄 잡히고 있다. 5월 1일 이후 다음 집중 시위는 한 달 넘게 지난 시점인 6월 6일로 정해졌다. 좌파 정당들이 연금 개악을 무력화할 법안을 제출할 6월 8일에 맞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마크롱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에 부응하지도, 마크롱에 별로 압박을 가하지 못한다. 마크롱으로서는 사람들의 분노가 들끓는 거리보다, 지배계급 성원들의 토론장인 의회가 훨씬 더 유리한 전장이다. 마크롱의 공격을 좌절시키려면 여전히 투지와 분노가 있는 운동을 고무하고 연결시키며,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려먼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투쟁을 질식시키는 것을 막고 승리할 수 있는 투쟁 방법을 조직할 수 있는 기층 노동자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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