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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극우 대통령 밀레이에 맞선 아르헨티나 대중 저항

아르헨티나에서 극우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에 맞선 대중 저항이 성장하고 있다. 필자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레온 트로츠키를 주제로 열린 한 대회에 참여하고자 지난주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 특히 대학교와 병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반(反)정부 항쟁에 참가할 완벽한 기회였다.

밀레이는 커다란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며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56퍼센트 가까이 득표해 당선했다. 밀레이는 치솟는 물가와, 당시 집권당이자 지난 20년 동안 아르헨티나 정치를 지배해 온 중도좌파 민족주의 세력인 페론주의자들의 몰염치한 부패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이용했다.

10월 2일 밀레이의 대학 재정 삭감에 반대하며 시내를 가득 메운 시위대 ⓒ출처 CONADU

밀레이는 국가에 “전기톱”을 들이대겠다고 공약한 극단적인 경제적 자유주의자이다. 이 점에서 그는 페론주의자들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페론주의자들은 경제를 관리하기 위해 국가 개입을 이용했으며, 정부 지출과 국가 부채를 줄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압박에 저항했다.

밀레이는 그를 뒷받침하는 거대 정당이 없다. 그래서 그는 반대파를 흔들고 분열시키기 위한 공세에 매우 신속하게 나섰다.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페소화(貨)의 가치를 54퍼센트 낮췄다. 그 때문에 물가가 치솟아, 올해 1월부터 9월 사이에 물가가 209퍼센트 올랐다. 밀레이는 금융 안정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위해 고정 환율 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는 공공 부문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있다.

밀레이의 주요 공격 대상 하나는 대학이다. 아르헨티나의 공립대학 체계는 등록금이 무상이고 대학이 국가 재정으로 운영된다. 밀레이는, 대학 재정 확충과 교직원 임금 인상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대학 노동자들은 임금이 대폭 삭감되거나, 정리해고를 당하거나, 부서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을 겪고 있다.

밀레이는 우파 성향의 전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의 지지를 받아 거부권을 관철할 수 있었다. 마크리의 정당 덕분에 국회의원 3분의 1의 표를 모아, 밀레이의 거부권 행사를 의회가 재의결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처럼 밀레이도 의회 내 소수의 지지만으로 신자유주의적·인종차별적 정책들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밀레이의 공격은 대규모 대중 항의를 촉발했다. 여론조사에서 밀레이 지지율은 40퍼센트로 떨어졌다. 물가 급등과 소비재 보조금 삭감 때문에 생계비가 급격히 치솟았다. 공립대학 유지에 대한 지지도 강력한데, 공립대학이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고등교육 받을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파업, 시위, 학생 점거 물결이 일었다. 4월에 정부의 대학 공격에 항의하는 100만 시위가 벌어졌고, 지난달에도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필자를 초청한 아르헨티나 극좌파 정당 노동자당(PO) 동지들은 자신들이 도심에서 선동을 할 때 밀레이에 대한 강렬한 분노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당의 구호 “밀레이 퇴진!”이 점차 인기를 끌고 있다고도 한다.

지난주 화요일과 수요일 대학교 교직원들의 파업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 대형 병원 두 곳의 파업이 함께 있었다. 필자는 아르헨티나에서 여러 시위와 투쟁의 현장으로 유명한 ‘마요(5월) 광장’을 방문했다.

필자의 일행은 수브테 지하철역을 나와 카사 로사다(대통령궁) 앞을 지나쳤다. 그때 마침 밀레이와 내각 성원들이 대통령궁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궁 발코니도 명소인데, 페론주의의 창시자인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이 1940~1950년대에 지지 군중의 환호를 받던 곳이었다.

이번에 밀레이를 맞은 사람들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밀레이는 자기 생일을 축하하러 발코니에 나온 것이었다. 그러자 광장에서 대안 수업에 참가하던 대학생들과 대학교 교직원들이 밀레이를 규탄하러 몰려갔다. 시위대는 이런 구호를 외쳤다. “대학은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다! 마음에 안 들면 꺼져라!” 대통령궁 발코니가 삽시간에 비었다.

같은 날 오후 병원 노동자 수천 명이 의회에서 ‘5월 광장’으로 행진했다. 이 행진에는 전투적인 연금 수급자들도 대열을 이뤄 참가했다. 이들은 매주 시위를 벌이고 있고 시위 진압 경찰들의 혹심한 공격도 받아 왔다. 나중에 시위 참가자 중 한 명은 내게 그녀가 경찰의 위협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저는 ‘코르도바조’(1969년 5월 코르도바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생·노동자 반란) 때 열일곱 살이었고, 1976~1984년 군부 독재 치하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저치들이 두려울 까닭이 있겠습니까.”

이런 투지가 어디서나 팽배해 있다. 필자가 참석한 트로츠키 대회의 폐막 행사는 점거가 진행 중인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 사회과학부 건물에서 열렸다. 그곳은 학생 투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 학생들, 노동자들, 실업자들의 ‘피케테로스’ 운동은 아르헨티나 항쟁의 역사의 새 장을 쓰고 있다.

출처: Alex Callinicos, ‘New waves of struggle hit far right Milei’ (202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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