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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이슬람주의(정치적 이슬람)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 기사는 1월 17일에 같은 제목으로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와 발제자의 토론 정리다.

지금은 많은 아랍인들에게 매우 힘든 시기입니다.

가자지구에서 계속되는 인종 학살은 두 가지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첫째, 많은 사람들의 분노에 불을 댕기고 있습니다. 둘째, 무기력과 무력감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최근 이 둘은 매우 폭발적으로 결합되고 있죠.

그리고 제 생각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시작된 후] 102일 사이에 드러난 한 가지 변화는, 이슬람주의 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슬람주의 단체인 하마스는 현재 팔레스타인들의 저항 운동을 이끌고 있고 큰 지지를 받고 있다 ⓒ출처 Palestine Chronicle

지난 30년간 통용되던 관념이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랍권과 나머지 세계 사이의 갈등은 종교의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서방의 이데올로기인 이른바 유대-기독교 전통이 본질상 진보적인 반면, 이슬람 이데올로기는 그보다 훨씬 후진적이다’ 하는 것들 말입니다.

이런 관념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담론에도 깔려 있습니다. 바로 하마스를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이하 아이시스), 이란 정권 또는 서방의 동맹인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 유사한 세력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이슬람교에 내재한 특정 관념 때문에 폭력적인 운동이라는 것이죠.

이런 담론이 서방의 프로파간다라는 것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랍 사회주의자들에게 이는 매우 첨예한 쟁점입니다. 이슬람교와 이슬람주의 운동의 본질, 그리고 그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저항 운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슬람주의에 매우 반동적인 관념이 몇몇 있긴 합니다. 그런 것이 없는 양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여성의 사회적 구실, 섹슈얼리티 등이 그 사례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고, 아랍 좌파들은 이를 두고 매우 치열하게 논쟁합니다.

한편,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아랍의 많은 좌파가 이슬람주의를 파시즘의 한 형태로 취급합니다. 이런 ‘이슬람-파시즘론’은 이란 혁명으로 호메이니의 이슬람주의 운동이 부상한 이후 널리 퍼졌는데, 이 때문에 어떤 좌파는 이슬람주의 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민족주의 정권과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특정 사상을 이해하려면 그 사회적 배경을 봐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특정 사상을 이해하려 할 때 그 사상의 사회적 배경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관념을 역사의 추동력으로 여기는 관념론자들과는 매우 다른 접근법입니다.

관념론자들은 이슬람교 경전인 꾸란이나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책]의 구절을 인용해 이슬람주의가 본질적으로 반동적인 이데올로기임을 증명하려 하고, 기독교 경전(성경)의 구절을 인용해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진보적임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핵심 과제는, 이슬람교를 비롯한 일체의 종교적 관념에 맞서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 투쟁으로 종교적 관념이 허물어지면 모종의 인간 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헛소리입니다.

성경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성경에 역겹고 반동적인 내용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인터넷이 없을 때라, 성경을 뒤져 가장 역겹고 반동적인 구절을 찾아내는 것이 일종의 놀이였습니다. 여성 노예를 강간하는 내용, 특정 부족을 인종 학살하는 내용, 서로 다른 재질의 옷을 같이 입었다는 이유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는 내용 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유념할 것은, 성경이든 다른 어떤 종교 경전이든 그 내용이 매우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그 모호함 덕에 읽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중요한 것은 경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아니라 종교적 관념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어떤 식으로 조응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예로 들겠습니다. 억압자인 노예 소유주들의 기독교와, 마틴 루서 킹 목사나 흑인 교회들의 기독교는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두 기독교가 모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종교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계급 기반

그래서 특정 이슬람주의 운동을 이해하려면 그 운동의 계급 기반이 무엇인지를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마스의 계급 기반은 무엇인가?’ ‘헤즈볼라의 계급 기반은 무엇인가?’ ‘사우드 왕가의 와하비즘의 계급 기반은 무엇인가?’ ‘무슬림형제단의 계급 기반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 보면, 이들이 서로 매우 다른 운동이고 대변하는 바도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은 이슬람주의의 부상을 예고한 세계적 사건이었다 ⓒWikicommons

예컨대 아랍에미리트(UAE)는 여성의 행실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규칙이 매우 엄격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랍에미리트 대학교에서 천체물리학·고등수학 등 가장 어려운 전공을 공부하는 학생 중 약 70퍼센트가 여성입니다. 미국보다 훨씬 높은 비율입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이슬람이 여성의 교육에 대해 더 진보적이라는 증거일까요? 혹은 더 반동적이라는 증거일까요?

사회적 맥락과 떼어 놓고 경전의 문구만 봐서는 이를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항상 우리가 사는 현실의 물질적 조건에 비춰 살펴봐야 합니다.

특정 사상을 이해하려면, 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서 어떤 조건에 처해 있는지를 봐야 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란, 무슬림형제단, 헤즈볼라, 하마스 … 다양한 이슬람주의 운동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하마스가 이슬람주의 운동이 아니었더라도 식민 지배에 맞선 저항에 동참했을까?’ 답은 ‘당연히 그렇다’입니다.

저는 60살인데요. 제가 자라던 1960~1970년대에 팔레스타인에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팔레스타인해방민중전선(PFLP),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DFLP), 팔레스타인해방군(PLA) 등 다양한 좌파가 활동했습니다. PLO는 아랍 민족주의 단체였고, PFLP는 마오주의 단체였고, DFLP는 체게바라주의를 자처하는 단체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에는 매우 많은 세력이 있었지만, 이슬람주의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슬람주의 운동은 75~80년 동안 이어져 온 저항 운동에서 새롭게 등장한 형태이자 표현 방식입니다.

분명 오늘날 운동에서 이슬람주의 색채가 강력합니다. 그리고 이 운동과 팔레스타인의 세속 좌파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둘은 서로 다른 사상이고, 그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 운동들이 겪은 질곡뿐 아니라 식민 지배를 겪었던 아랍 국가들이 세계 자본주의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기존 방식과 계급 구조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 이슬람주의 운동이 저마다 다른 사회적 부문과 염원을 대변하면서 시작됐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란의 호메이니식 이슬람주의 운동은 이란 혁명 후에 서로 다른 두 계급을 기반으로 부상했습니다.

첫째 기반은 자본주의가 이란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몰락한 전통적 상인 중간계급 ‘바자리’입니다. 둘째 기반이 매우 중요한데, 바로 신생 기술 관료 등으로 이뤄진 신중간계급입니다. 이 두 계급이 이란 혁명 와중에 서로 융합하면서 호메이니식 이슬람주의 운동과, 뒤이어 집권한 이슬람 정권의 계급적 토대를 이뤘습니다.

즉, 한편에는 자본주의가 침투해 들어오는 것에 저항하는 옛 사회 계급이, 다른 한편에는 토착 자본주의 발전에 씌워진 제약에 저항하는 신진 사회 계급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란에 관해서는 옛 중간계급과 신중간계급이 이란 정권의 계급 기반을 이뤘다고 봐야 합니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한편으로는 이집트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다른 한편으로는 이집트 지배계급 내 매우 중요한 일부를 대변합니다. 그래서 무슬림형제단은 2011년에 타흐리르 광장 점거 운동이 분출했을 때 굉장히 겁에 질렸고, 상당히 뒤늦게야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그럼에도 무슬림형제단이 이 운동의 주된 수혜를 입었죠.

2012년 선거로 집권한 후 무슬림형제단의 전략은 세속적인 아랍 민족주의 지배계급을 몰아내고 이를 이슬람주의적 부자·권력자로 대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전략 때문에 무슬림형제단은 둘로 쪼개졌습니다. 혁명을 지속·심화시키기를 바랐던 빈민층 쪽과 혁명을 멈추고자 했던 지배층 쪽으로 말이죠.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 강점을 종식시키고 환대받는 헤즈볼라. 2000년 5월 ⓒ출처 khamenei.ir

레바논 헤즈볼라의 경우는 어떨까요? 헤즈볼라는 무슬림형제단과 비슷한 집단일까요? 혹은 이란 이슬람주의자들이나 하마스와 비슷한 집단일까요?

헤즈볼라의 정치를 이해하려면 레바논 사회 내 시아파 ─ 시아파는 이슬람의 한 종파입니다 ─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아랍 민족주의 좌파들이 패배한 후 부상했습니다. 그리고 시아파는 레바논에서 숫자가 가장 많지만 가장 가난하고, 종단과 종파에 따라 나뉜 레바논 사회의 정치 권력 일체에서 가장 철저히 배제돼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헤즈볼라는 종단과 종파에 따라 분열된 체제에 반대하면서가 아니라, 그 체제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하면서 부상했습니다.

군사적으로 보면 헤즈볼라는 시아파가 압도 다수인 레바논 남부를 이스라엘이 20년간 점령한 것 때문에 부상했습니다. 이 지역 인구의 압도 다수가 시아파였기 때문에, 점령에 맞선 저항도 시아파에 기반을 두고 시작됐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선 군사적 저항을 대체로 시아파가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요컨대 헤즈볼라는 두 가지를 대변합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 점령에 맞선 군사적 저항. 둘째, 레바논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집단인 시아파의 권익 증진. 그래서 헤즈볼라의 사상과 그 성장을 이해하려면 시아파의 교리를 들여다보기만 해서는 안 되고, 레바논 사회에서 가장 주변적 처지에 있으면서 이스라엘의 군사적 점령하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중적 성격 때문에 헤즈볼라는, 4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신진 계층인 시아파 중간계급을 점점 더 대변하게 됐습니다. 오늘날 시아파 중간계급은 더욱 성장해, 종단과 종파에 따라 나뉜 레바논 사회에서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하기를 바랍니다.

하마스는 헤즈볼라와는 또 다릅니다. 각자가 처한 사회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식민 점령과 인종 학살에 맞선 처절한 투쟁의 산물입니다.

하마스가 어떻게 부상할 수 있었을까요? 1990년대에 팔레스타인에 강요된 ‘두 국가 방안’, PLO 등 아랍 민족주의자들이 수용한 이 방안이 기만에 불과하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재앙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종교적 관념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정치적 판단이 하마스의 부상을 훨씬 더 잘 설명해 줍니다.

하마스가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국가 방안’이 재앙이라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습격으로 살해당한 이들의 장례식 ⓒ출처 Wahaj Bani Moufleh / Activestills

어떤 이들은 하마스가 수니파이고 하마스의 이데올로기가 매우 보수적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하마스와 마찬가지로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 지배계급의 와하비즘과 하마스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둘은 역사적 뿌리와 계급 기반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민족 해방 운동입니다.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들을 민족 해방 운동으로 규정하고 그 다음 그들의 사상을 논합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는 결코 민족 해방 세력이 아닙니다. 이들의 와하비즘은 기반이 매우 협소하고 억압적인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자 사우디아라비아 대중을 억압하는 도구입니다.

하마스·헤즈볼라, 민족 해방 운동으로 이해해야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민족 해방 운동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들이 취하는 전략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유용합니다. 즉, 한편으로는 피억압자들을 대변하고 식민 점령과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맞서는 세력들과 타협하려 드는 문제 말입니다. 이런 문제는 이슬람주의 사상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위치에서 비롯합니다.

예컨대 헤즈볼라를 봅시다. 애초에 헤즈볼라는 레바논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주변화된 사람들을 대변하며 부상했지만, 오늘날 헤즈볼라는 시아파 중간계급을 위해 더 많은 정치 권력을 얻어 내려고 레바논 사회 시스템과 타협합니다.

그런 타협이 얼마나 멀리 나아갔는지 보여 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2019년 10월 레바논에서 종단과 종파에 따라 나뉜 사회 체제에 맞선 항쟁이 벌어졌을 때, 헤즈볼라는 반동적 구실을 했습니다. 레바논 정부를 도와 대중 운동을 진압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죠.

하마스는 어떨까요?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안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지키는 투쟁에서는 매우 전투적입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바깥에서 아랍 정권들에 맞서는 데에는 매우 소극적입니다.

이런 태도는 하마스가 민족 해방 운동이라는 데서 기인합니다. 다른 나라를 굳이 흔들지 않고 그 나라 정권과 잘 지내겠다는 것이죠. 이것은 옛날에 PLO가 취했던 전략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가 보기에 아랍 좌파들 사이에서 요즘만큼 하마스 지지 여부가 쟁점이 되지 않는 때도 없었던 듯합니다. 하마스 지지 여부는 그들에게 언제나 첨예한 쟁점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하마스 지지를 이슬람주의와 관련된 문제라고 여기지도 않고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하는 문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발제를 정리하겠습니다.

이슬람주의를 이해할 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사상 그 자체에 관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 사상이 존재하는 사회 조건이 어떤지, 그 사상이 대변하는 계급이 누구고, 그 계급이 품은 열망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단일한 이슬람주의 사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광범한 의미의 이슬람 이데올로기는 있지만, 저마다 다른 사회 계급이 저마다 다른 사회적 조건하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슬람교를 이용합니다.

물론 사상에는 사회적 힘이 있습니다. 이 점을 부정해서는 안 되겠죠. 사상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지점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상이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대변하는지이고, 그 사상이 해방 투쟁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입니다.

발제자의 토론 정리

먼저, 매우 중요한 쟁점인 여성 차별에 관한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우리는 여성해방을 지지합니다. 텍사스에서든 테헤란에서든, 세계 어디서든 말이죠.

우리가 하마스나 헤즈볼라를 여성·섹슈얼리티에 대한 그들의 입장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의 땅을 빼앗으려 하는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고 있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슬람은 여성을 천대하지 않느냐’ 하는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충격받았습니다.

1960~1970년대에 기독교계 아랍인 가정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저는 기독교계 공동체에서도 여성의 처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있었던 일이 생생히 기억나는데요. 한 번은 제 누나가 어떤 남자애와 대화하다가 걸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온 동네 사람들이 제 아버지에게 딸을 매질하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교가 아니라 여성 천대가 문제임을 아주 어릴 적부터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성을 천대하는 일체의 관념에 단호히 반대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이 여성에게 무엇을 입을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이란이든 프랑스든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보기에 여성해방은 어떤 문화권에서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과제이고, 사회 운동으로 이를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후진적이라는 레바논에서는 여성이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을 수도 있고 베일을 쓸 수도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렇지 않잖아요.[프랑스 국가는 여성의 히잡 착용을 법으로 금지한다.]

민족 해방 운동을 지지하는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바로 그 운동이 억압받는 사람들의 운동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지지 위에서, 그들의 정치 중 동의하지 않는 지점에 대해 논쟁할 태세가 돼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분노스러운 것은, 서구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 대개 백인입니다 ─ 이슬람의 여성 차별적 성격 운운하며 가자시티에 대한 융단 폭격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여성해방이란 말입니까?

이슬람주의 운동의 부상

두 번째로 다룰 쟁점은 이슬람주의 운동의 부상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아랍 민족주의 좌파의 실패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후 레바논에서 좌파가 궤멸된 것은 이들이 모종의 정치적 논쟁에서 패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사브라·샤틸라 난민촌 학살과 그 여파로 좌파들은 물리적으로 제거됐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아랍 민족주의 세력인 PLO가 제국주의와 타협하고 이스라엘의 ‘두 국가 방안’과 팔레스타인 점령을 집행하는 보안 부대 노릇을 하게 됐고, 그래서 몰락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지금 헤즈볼라 내에서 계급에 따른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타협을 추구하는 쪽과, 더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쪽으로 말입니다. 특히 2019년 10월 항쟁 때 헤즈볼라 내의 이런 계급적 차이는 정치적 차이로도 드러났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하마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하마스를 분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글쎄요, 이스라엘은 전혀 그렇게 나누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모든 학교·병원이 하마스 소굴이고 팔레스타인인 남녀노소가 모두 하마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을 구분해야 하지요? 적들은 그러지 않는데 말이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이유로 살해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하마스 단원이냐 아니냐는 이스라엘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 운동에는 하마스만 참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DFLP, PFLP, 세속 좌파, 공산당 등 팔레스타인 내 모든 단체가 참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두 국가 방안을 지지했던 아랍 민족주의자들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 저항이 인종 학살에 맞선 저항이기 때문에, 이슬람주의자든 아니든, 좌파든 우파든, 남녀노소 모두 저항에 참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 모두의 저항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문제는 이스라엘이지 저항 운동 내 한 부문이 가진 사상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공동전선

영국에서 세속 좌파와 이슬람주의들의 관계가 어떤지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거리에서 함께하는 관계’입니다.

저희가 이슬람주의자들과 협력하는 경우는 대개 파시스트 깡패들이 아시아계 동네나 모스크나 무슬림 소유의 식당을 박살 내려 할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모두 하나로 단결해 거리로 나섭니다. 역사적으로 좌파는 유대인, 아일랜드인, 시크교도, 힌두교도 등 영국 내 모든 소수자 집단과 그렇게 관계를 맺었습니다.

관련해 늘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사람들이 서로 어깨 걸고 투쟁할 때 나타나는 두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 태도는 ‘당신과 이견이 있기 때문에 파시스트 깡패들에 맞서 당신과 함께 싸우지 않겠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파주의죠.

둘째 태도는 ‘우리가 파시스트에 맞서 함께 싸우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점에서 생각이 같다. 여성·성소수자 문제에 관한 당신의 견해에 도전하지 않겠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이런 두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필요할 때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지만, 그러면서도 필요할 때 그들과 치열하게 논쟁합니다. 이것이 더 큰 적에 맞선 공동전선 안에서 좌파가 독립성을 지키면서도 협력하는 방식입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가장 중요한 논점은, 지금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누가 가장 먼저 이 운동에 뛰어들었나요? [미국 연대체] ‘인종 학살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미국 뉴욕의 그랜드센트럴터미널을 점거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덕분에 미국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종교를 둘러싼 전쟁이 아님이, 핵심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인종 학살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정의를 지지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심이 된 것이죠.

그들 다음으로 중요한 행동을 벌인 것은 ‘시스터스 언컷’이라는 백인 주도의 영국 페미니스트 단체였습니다. 이들도 처음부터 매우 명확한 입장을 취했고, 미국에서 유대인들이 했던 것처럼 영국에서 기차역을 점거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행동을 벌이며 운동에 동참한 것은 흑인 단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서방에서 가장 먼저 인종 학살 규탄 행동을 벌인 것은 아랍계도 무슬림도 아닌 유대인·페미니스트·흑인들이었던 것입니다.

1·13 국제 행동의 날에 런던에서는 50만 명이 행진했는데요. 그 날 저와 같이 행진한 이집트 출신 동지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완전 백인 천지네요.’ 저는 이것이 매우 좋은 현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시위할 때마다 수억 명의 아랍인이 TV를 통해 그 장면을 보고 ‘저것 봐, 유대인들이, 백인 여성들이, 흑인들이 우리 편이야’ 하고 깨닫기 때문이죠.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로써 ‘이슬람주의에는 나머지 세계와 다른 특이한 점이 있고 세계가 그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관념을 허물어뜨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국제 연대가 저항의 정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서

마르크스의 유명한 구절 하나를 인용하면서 발언을 정리하겠습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오늘날에는 아편이 마약으로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아편이 진통제였습니다. 즉 마르크스의 말은 “종교는 인민의 진통제”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아프다고 울어선 안 돼’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겁니다. 고통 그 자체를 없애야 하는 것이죠. 저는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현재 이집트와 요르단은 항쟁의 분출을 목전에 둔 상황입니다. 전쟁을 퍼뜨리는 제국주의 전략과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 시도가 거대한 국제적 항의 운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항의 운동의 일부여야 하고, 언제나 피억압자의 편에 서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전략·정치·이데올로기에 대한 필요한 비판을 결코 삼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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