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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공백 책임 전가 반대, 생계비 보상:
보건의료노조 파업 정당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산하 61개 병원 노동자들이 오는 8월 29일부터 파업을 예고했다. 61개 병원에는 한양대학교병원 등 사립대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두루 포함된다.

8월 19~23일에 이뤄진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해당 병원 조합원 2만 9705명 중 2만 2101명이 찬성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생긴 병원 적자와 의료 공백의 부담을 병원 내 다른 노동자들에게 전가하지 말 것과 총액 대비 임금 6.4퍼센트 인상 등 생활임금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병원 사용자들은 전공의들이 하던 일을 다른 노동자들더러 대신하라고 떠넘기면서도 정작 필요한 법·제도 정비나 교육, 안전 조처는 취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환자가 줄었다며 무급 휴가와 무급 휴직, 희망 퇴직, 부서 이동을 강요하고 강제로 연차를 쓰게 하거나 출근 당일이나 전날 쉬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등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팬데믹 이전에도 악명이 높았지만 팬데믹 중에도,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인력 충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전공의 공백까지 메우라고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는 PA간호사는 지난 3월 1만 명 수준에서 7월에는 1만 6000여 명으로 60퍼센트나 늘었는데 신규 인력 채용이 아니라 기존 인력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노동자 개인이 환자·보호자의 불만은 물론이고 사고 책임까지도 온전히 뒤집어 쓰게 될 판이다. 정부 지침에 따랐다지만 실제로 문제가 될 경우 병원이나 정부가 책임질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윤석열은 지난해 PA간호사 업무를 합법화하는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더니 이번에는 전공의 공백을 메우겠다며 거의 같은 내용의 간호법을 재추진하는 등 일관성도 없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현재 간호법은 PA간호사 업무 범위를 두고 여야 사이에 이견이 있어 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한편, 전공의 사직 이후 대형병원들의 손실을 보상한다며 건강보험 재정 수조 원을 쏟아부은 정부와 그 지원을 받아 온 사용자들은 정작 임금 인상 요구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 친정부 언론은 노동자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임금 인상 요구는 비난한다.

그러나 물가 고공행진으로 인한 실질임금 감소와 노동강도 강화를 보상하라는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는 완전히 정당하다.

핀데믹에 이어 전공의 사직으로 생긴 의료 공백을 메워 온 노동자들에게 ‘헌신’ 운운하는 말장난이 아니라 실질적인 보상을 해야 한다.

응급실 대란 등 의료 위기의 책임은 정부와 사용자들에게 있다 ⓒ출처 보건의료노조

장기적으로 보면, 상시적 야간 근무와 긴급·응급 상황으로 인한 연장 근무가 불가피한 병원에서 제대로 된 보상 없이는 충분한 인력을 확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내버려둔 채 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하나마나한 소리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정작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필수 중의 필수 기능을 수행해 온 공공병원을 사실상 사멸해 가도록 방치하고 있다.

공공병원들은 팬데믹 시기에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기능하며 나머지 진료 업무가 대폭 축소됐는데, 이를 다시 회복하려면 단지 적자를 보전해 줄 뿐 아니라 의료진을 새로 고용하고 병원 장비와 시설 등도 대폭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후로도 수익성에 휘둘리지 않도록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약속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은 팬데믹 시기에 이들 공공병원에 지원되던 예산을 전액 삭감한 뒤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많은 공공병원들이 팬데믹 이전 수준의 진료를 회복하지 못하며 적자가 누적돼 임금 체불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공공병원 노동자들의 불만은 엄청나게 크다.

반년 넘게 이어진 전공의 공백으로 응급실 기능이 확연히 악화되고 있는 지금 다른 병원 노동자들까지 일손을 놓는다면 그 파급 효과는 상당히 클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로 27일 오전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간호사 등 처우 개선과 간호법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뒤늦게 노동자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지만 병원 노동자들에게도 “파업이 아닌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며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고 있다.

이는 운동에 대한 제어 능력이 민주당에 있음을 사용자들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다.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은 그 자체 효과 뿐만아니라, 더 많은 노동자들의 투지를 자극하는 효과도 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보나 현재 의료 위기의 책임은 명백히 정부와 병원 사용자들에게 있다. 의료 인력 확충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전임 정부와 민주당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병원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한 공감과 투쟁의 대의에 대한 지지도 비교적 광범하다. 윤석열 정부가 ‘의료대란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고압적으로 파업을 비난하지는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팬데믹 하에서 또, 윤석열이 강경한 태도로 노동자들을 공격하던 지난해에도 고려대병원, 한양대병원, 부산대병원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서 지지를 받고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

윤석열 정부 지지율이 최저 수준인 지금, 병원 노동자들이 자신감 있게 투쟁에 나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