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보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
농민 생계 보장 법안에 거부권 행사한 한덕수에 분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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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서울 경복궁 앞과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즉각 파면과 구속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던 시각, 서울과 경기 경계선인 남태령 고개에서는 농민들의 트랙터 상경 행진이 경찰의 봉쇄로 가로막혀 있었다.
최근 농민들은 쌀값 하락, 기후 위기로 인한 작황 불안 등 농업 재난 상황에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소득 보장 대책을 요구해 왔다.
그중 일부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었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매입해 농민들의 비용을 일정하게 보전하는 법안이다.
직무정지 전까지 소소한 개혁 입법들에 거부권을 무려 24번이나 행사한 윤석열의 거부권 1호 법안이 바로 양곡관리법이었다.
농민들은 자본주의가 낳은 기후 위기, 무질서한 시장 경쟁이 낳는 가격 불안정, 윤석열의 신자유주의적 긴축과 반개혁 노선의 피해자다.
그래서 농민들은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농업 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이 법들은 농산물의 시장 경쟁 노출 일부 제한, 갈수록 기후 위기 피해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재해 지원 등을 담고 있고, 대단한 재정이 투입되는 방안도 아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봉준투쟁단은 12월 16일 전남 무안군과 경남 진주시에서 트랙터 상경 행진을 시작했다. 농업 4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는 투쟁이었다.
최소한의 생계 요구를 두 번이나 거부한 윤석열 정권
그런데 12월 19일 한덕수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의 반민중적 긴축 노선의 충실한 하수인이었던 한덕수가 윤석열 없는 윤석열 정권의 실체를 만천하에 실토한 것이다.
12월 21일에는 트랙터 행렬이 서울로 들어오는 것조차 원천 봉쇄했다. 서울경찰청은 전농에 집회 제한 통고를 하고 경기와 서울 사이 경계선인 남태령 고개에서 차벽을 쳐서 행진을 막았다.
트랙터 50대가 차선과 교통 신호 다 지켜서 이동하는데, 교통 체증 유발이 웬 말인가? 남태령 고개 전 차선에 차벽을 치고 막은 경찰이야말로 교통 마비 유발자 아닌가? 게다가 트랙터 행진은 전남과 경남에서부터 지금껏 문제없이 서울까지 올라왔다.
길을 막은 것도 모자라 경찰은 이에 항의하는 전농 간부들을 폭행하고, 트랙터 운전자들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이날 현장 뿐만 아니라 서울 등 각 도시에서 집회를 위해 모이고 있던 많은 이들이 실시간 소식과 영상을 공유하며 분노했다. 많은 이들이 한목소리로 바로 남태령에 위치한 수도방위사령부에서 12월 3일 계엄군이 출동할 때는 경찰이 뭘 했냐고 따져 물었다.(경찰 차벽 때문에 사람들이 집회를 한 장소는 공교롭게도 수방사 정문 앞이었다.)
서울 등지에서 집회를 마친 사람들 일부가 남태령으로 향했다. 장년부터 청년까지 수천 명이 밤새 농민들의 생계비 저항을 지지하고, 쿠데타에 동원됐던 경찰이 평화로운 트랙터 행진을 가로막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맹추위 때문에 저체온증 증세가 나타난 응급 환자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남태령역에서 간간이 휴식을 취하면서 밤새 버텼다. 간밤의 시위 소식이 알려진 오전부터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침까지 이어진 자유 발언에는 주로 20대 청년들이 많이 나섰다. 발언 대기줄이 수십 미터에 이르렀다. 밤에 상경했다는 청소년, 전세 사기 피해자,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청년들이 발언했다. 많은 시민들이 음식, 따뜻한 음료, 핫팩, 핸드폰 보조 배터리 등을 밤새 현장으로 보냈다. 심지어 제육볶음 같은 메뉴도 있었다.
트랙터 10대, 윤석열 관저 앞까지 행진: 일정하게 돌파하다
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등은 긴급하게 오후 2시 집회 계획을 발표하고, 참가를 호소했다. 이날 오전부터 집회 중까지 남태령역 출구에선 간밤 농성 집회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사람들이 계속해서 집회장으로 올라왔다.
2시 집회에선 이갑성 전봉준투쟁단 단장,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외에는 모두 생생한 자유 발언들로 채워졌다. 새벽과 아침에 받은 자유 발언 신청이 아직도 한참 남았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왔다. 이른 아침에 신청해 5시간 기다렸다가 발언한 청년도 있었다.
농민들의 생계비 저항을 지지하고, 연대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윤석열과 한덕수 모두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또한 경찰이 집회를 금지 통고하는 것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비판도 있었다.
민주당 등 국회의원들까지 나선 끝에 서울경찰청은 트랙터 10대에 한해서 한남동 윤석열 관저 앞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환호 속에 많은 사람들이 남태령역에서 사당역까지 트랙터를 앞세우고 행진했다. 장관이었다.
그 뒤 트랙터와 소수의 인원만 동작대교-이태원을 거치는 차도 행진을 하고, 집회 참가자들은 지하철을 이용해 관저 앞으로 이동했다.
약속한 오후 6시를 넘겨 1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체포·구속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트랙터가 참가자들 옆으로 행진해 들어올 때는 모두 일어서서 환호를 질렀다.
윤석열 퇴진 운동 참가자들이 모여 완강하게 버틴 끝에 경찰을 얼마간 물러서게 한 것이다. 아마 한덕수의 거부권 행사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효과가 클 것이다.
경찰은 완강한 항의 앞에서 다소 물러섰지만, 트랙터 행진이 토요일에 윤석열 관저를 거쳐 광화문 집회장에 당도해 수십만 명의 열광적 환호를 받을 기회는 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