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운운하더니:
한덕수 내각에게 힘 실어 준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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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6일 미국 관영 매체 ‘미국의 소리’(VOA)는 미국 국무부가 “한국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와 일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혔다고 보도했다.
한덕수 탄핵안 표결 하루 전날 다시금 한덕수 내각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한덕수 탄핵을 추진하는 민주당에는 정국 안정 압박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블룸버그, AP통신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한덕수 탄핵안 발의가 “고위급 외교를 중단시키고 금융 시장 혼란과 정치 마비를 심화”시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를 압박”할 것이라는 부정적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19일에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 커트 캠벨이 한덕수에 대한 “전적인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커트 캠벨은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견제 전략을 설계, 주도해 온 인물이다.
23일 커트 캠벨은 한국 외교부 제1차관 김홍균을 만나, 쿠데타 이후 연기된 한미핵협의그룹(NCG) 회의도 곧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NCG는 한반도에 미국 핵무기를 들여놓으려는 제국주의 회의다.
커트 캠벨과 김홍균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사상자 발생, 북·러 군사 협력 저지 방안에 관해서도 논의했다(연합뉴스 12월 24일 자).
커트 캠벨은 한덕수를 가리켜 “우리[미국]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말했다. 한덕수가 주미대사였던 시절 그와 잘 지냈다는 뜻인 이 말은 또한 미국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윤석열의 쿠데타 미수로 불거진 정치 불안정이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한덕수는 뼛속 깊이 친미이자 신자유주의자인 경제 관료로서 미국 정재계와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그는 2003년 국책은행을 미국계 사모펀드에 헐값 매각한 의혹(‘론스타 게이트’)에도 연루됐었다.
한미동맹
미국 권력자들의 “민주주의” 운운은 위선이다. 미국 권력자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미국 제국주의의 이익이다.
즉, 미국이 원하는 바를 윤석열만큼 잘 따라 줄 차기 지도자가 중국 인접 동맹국인 한국에 세워지고, 한미동맹 정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는지만이 관심사이다.(관련 기사: ‘미국 정부는 윤석열 퇴진 운동 편이 아니다’, 본지 529호, 김영익)
그간 미국 정부는 이를 기준으로 득실만 재면서 윤석열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취하지 않아 왔다. 가령 윤석열이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 미국은 “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고만 했다. 그러다 그 기도가 실패하고 계엄이 해제되자 그제야 “깊은 우려” 운운했다.
윤석열 탄핵안이 국회에서 1차 부결되자 미국 정부는 “우리의 대화 상대는 여전히 윤석열”이라고 은근히 편들어 줬다. 그럼에도 탄핵안이 최종 가결되자 그제야 “민주주의 회복력을 보여 준 한국 국민들을 미국이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했다.
미국 정부는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에 관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우려한 게 아니다. 어떤 격변이 자신의 통제 밖에서 벌어지는 것을 꺼렸을 뿐이고, 만약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미국은 기꺼이 윤석열을 용인했을 수 있다.
미국의 군사 쿠데타 지지 역사
미국 지배자들의 역사에는 다른 나라의 쿠데타를 자기 이익에 따라 용인하거나 환영하고 심지어 비열한 공작과 지원으로 사주해 온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란,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수십 년 동안 그래 왔다.
멀리 갈 필요 없이 한국 역사를 보자. 미국은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처음에는 미심쩍어했지만 박정희가 “반공”을 전면에 내세우자 적극 승인해 줬다. 전두환의 12·12 쿠데타에 대해서도 미국은 초반에 안정을 중시하며 관망했지만 쿠데타가 성공하자 곧바로 신군부와 협력 관계를 공고히 했다. 각 시기마다 미국은 4월혁명, 부마항쟁, 광주항쟁 등을 어떻게든 잠재우고 싶어 했고, 민주주의가 아니라 친미 독재자들을 지지했다.
이번 미국의 한덕수 지지 입장도 윤석열과 한덕수 내각에 맞서 계속되고 있는 한국의 대중 운동을 거스르는 행태이다.
미국 지배자들은 민주주의의 편도, 대중 운동 편도 아님을 뼛속 깊이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