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버틀러가 말하는 트랜스젠더 방어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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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영국 대법원은 여성의 법적 정의를 “생물학적 성별”으로 한정해 트랜스젠더를 공격하는 판결을 내렸다. 본지가 지적했듯이 이것은 세계적 극우 공세의 일부이고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주요 전장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에 미국의 저명한 젠더 이론가이자 국내에서도 《젠더 트러블》 등으로 잘 알려진 주디스 버틀러가 트랜스젠더를 방어해야 하는 이유에 관해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에 기고한 글을 소개한다.

〈소셜리스트 워커〉 이번 호 1면(“트랜스 여성은 여성이다”)을 보고 나는 힘이 났다. 트랜스 남성 또한 그들의 법적 지위와 보건권을 잃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자.

권리의 박탈을 구금, 추방과 연속선상에 있는 국가 탄압의 한 형태로 본다면, 아무런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태를 낳는 세 조처 모두 권위주의적 권력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런 일은, 자신의 부와 부의 격차를 극대화하려고 애쓰는 부유한 자들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다.
트랜스젠더는 범죄자 취급과 정신병동 수용으로 고통받고, 가족과의 의절로 상속권을 누리지 못하고, 직장에서 심각한 차별을 겪고, 일상에서 심각한 폭력에 노출된 채 경찰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오히려 경찰이 폭력을 자행하거나 권리 박탈에 관여할 때가 많다.
이것이 트렌스젠더로서 산다는 것이 물질적으로 뜻하는 바다. 이는 트랜스 여성과 트랜스 남성뿐 아니라 논바이너리의 처지에도 영향을 준다.
인간 섹슈얼리티의 복잡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연구와 정책은 자금 지원이 끊기게 될 것이다.
그러한 탐구는 관념적인 것도 ‘포스트모던’한 것도 아니다.
그러한 탐구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중심적 중요성을 갖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를 지탱하는 핵가족과는 사뭇 다른 친족 체계에서 삶을 살고 향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국가 폭력 피해자의 연대자가 되어 그들을 지지해야 한다.
취약함에도 용기 있는 소수자들은 지지와 연대를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와 국가주의에 밀접하게 얽혀 있는 국가 폭력을 해체한다는 정당한 염원을 위해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지지와 연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