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피 묻은 손 맞잡은 한국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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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서방이 인종 학살 국가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이 이스라엘과 맺는 관계는 그보다 훨씬 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현장에 HD현대건설기계의 중장비가 동원됐다거나(HD현대건설기계는 판매 사실을 부인했다), 부산·대구 등지에서 열린 기업 행사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자국 기업들과 참가했다는 소식 정도가 보도된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 당시 민주당 대표 신분으로 주한 이스라엘 대사를 만나 “서로 협력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자”고 말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본지 535호 ‘선 넘는 ‘우클릭’: 인종학살 이스라엘 대사를 만나 덕담 나눈 이재명’)
그런데 이런 교류는 일회적 사건들이 아니다. 한국 기업들은 이스라엘의 피 묻은 손을 잡는 데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미국이 주선한 관계, 미중 갈등 심화 속에 강화되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최초 수교는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1970년대 후반 양국은 대사관을 철수시켰다. 양국을 다시 이어 준 것은 미국의 주선이었다.
냉전 종식 직후 미국은 친미 동맹국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와중에 양국의 관계 재개를 주선했다. 그로부터 2년 후 한국은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다시 열었다.
이후 한국은 이스라엘이 ‘실전’(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감시·탄압·살해를 뜻한다)에서 검증한 기술들을 한국군 전력에 조금씩 도입해 왔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군이 개발한 초음속기 T-50과 경전투기 FA-50에는 이스라엘 군수기업 엘타시스템의 레이더가 탑재됐다. 한국군 주력 전차 ‘K’ 시리즈 개량 사업에도 이스라엘군의 실전 데이터가 거듭 반영됐다.
2001년 김대중 정부의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스라엘의 혁신청과 한-이스라엘 산업연구개발재단(KORIL-RDF)을 공동 설립했다. 이런 기구를 설립한 사례는 지금까지도 동아시아에서 유일하다.
미중 갈등
2018년 미중 갈등이 크게 고조되자 한국은 이스라엘의 첨단 무기를 훨씬 더 탐내기 시작했다.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은 이렇게 지적했다. “인접국 간 적대가 심화하며 … 한국의 국방 정책 입안자들은 이스라엘의 최첨단 군사 산업에 매력을 느끼고 방공 시스템, 레이더, 미사일 등 이스라엘제 군사 플랫폼을 대거 수입했다.
“한국은 2018년 말에 엘타시스템의 그린파인 레이더 시스템 2기, 2019~2020년에 EL/M-2032 레이더, 스파이크 NLOS 지대지미사일과 발사 차량 ‘샌드캣’, 스파이크 NLOS 공대지미사일, EL/M-2032 MF-STAR 다기능레이더, 무인기 ‘헤론’ 등을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모두 문재인 정부의 방위사업청이 결정한 것이다.
그중 그린파인 레이더는 한국에 배치된 사드(THAAD)와 연동돼 부산 해운대와 전남 보성에 배치됐다. 스파이크 지대지미사일은 연평도와 백령도에 배치됐다.
KAI·한화: 이스라엘과 무기 공동 개발
한국의 대표적 군수 기업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피 묻은 손을 잡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이스라엘에 항공기 부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기업 중 하나로, 2020년대 들어 한국이 대(對)이스라엘 항공기 부품 수출국 세계 2위(글로벌 트레이드 아틀라스)로 오르는 데에 앞장선 기업이다.
동시에 KAI는 인종 학살로 ‘실전 테스트’를 거친 이스라엘 군사 기술을 도입하려 애쓰는 기업이기도 하다.
2021년 KAI는 이스라엘의 3대 군수 기업의 하나인 엘빗시스템스와 차세대 무인항공기 업무 협약(MOU)을 맺었다. 이 협약은 정찰, 표적 식별, 감시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내용으로, 이스라엘이 무인기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하는 데 이용되는 기술이다. 같은 해 KAI는 이스라엘 국영 군수기업인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과도 기술 공동 개발 협정을 맺었다.
2024년에 KAI는 한화시스템스와 엘빗과 배타적 3자 MOU를 맺었다. 이 협약에는 한국 육군·공군 특수작전용 헬리콥터 성능 개량에 필요한 기술을 공동 개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편, 한화는 이스라엘의 3대 군수 기업 IAI·엘빗·라파엘과 모두 거래하고 있다. 2021년에 한화는 엘빗과 AESA(능동위상배열) 레이더 시스템 개발 파트너십을, 라파엘과 미사일 방어 시스템 개발 파트너십을 맺었다.
한화의 군수 부문 자회사 한화시스템스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군 주력 미사일 ‘현무’ 시리즈의 생산을 담당하는 두 기업 중 하나다(다른 하나는 LIG넥스원). 한화와 이스라엘 군수 기업들의 기술 교류가 한국군의 군사력 증강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정황이다.
한화의 또 다른 군수 부문 자회사 한화디펜스는 엘빗과 협력해 육군 전차 AS-21 레드백을 개발해 호주에 수출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한화는 이 전차를 폴란드·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에 수출하려 했다.
LIG: 이스라엘 군사 기술 수입
범LG계에서 군수 부문을 담당하는 LIG는 이스라엘과 군사 교류를 한 전적이 화려하다. LIG는 LG화재해상보험을 모태로 하는, LG 창업주 구인회의 동생 구철회와 그 자녀들이 소유·운영하는 기업이다.
LIG의 자회사 LIG넥스원은 이스라엘 군수 기업 엘타에게서 레이더 체계 EL/M-2032의 기술을 이전받아 한국군 전투기와 수출용 무기에 적용했다. LIG는 특히 정밀유도 무기, 전자전, 무인화 시스템 등의 부문에서 이스라엘의 첨단 군사 기술을 수입해 적용하는 데서 선두 주자로 알려져 있다.
한편, LIG는 ‘로봇 군견’을 개발한 이스라엘-미국 합작 기업 ‘고스트 로보틱스’를 지난해에 인수했는데, 이 기업의 제품 V-60은 이번 인종 학살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저항 전사를 탐지·사살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삼성: ‘민간 기술 교류’의 이면
삼성은 2015년에 군수 부문 자회사 삼성테크원과 삼성탈레스를 한화에 매각한 이래 군사 부문에서 손을 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2024년에는 “현지 사정의 불안정”을 이유로 이스라엘에서 투자 법인 지사를 철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은 이스라엘과의 본격적 교류에 가장 먼저, 또 가장 깊이 뛰어든 한국 기업의 하나다.
삼성은 2007년 이스라엘 기업 트랜스칩을 인수해 이스라엘에 연구 법인(SRIL)을 세웠다. 이는 삼성이 13년 만에 처음 추진한 대규모 해외 인수 합병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기술에도 인종 학살 국가의 피가 짙게 배어 있다. 트랜스칩은 이스라엘 산업통상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은 ‘벤처’ 기업으로, 이스라엘군과 민간 기업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이중 용도 기술’을 개발하는 산학협력에 밀접하게 관여한 것으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삼성은 트랜스칩 인수를 통해 이스라엘 기업들과 연계를 확대했다. 삼성은 70여 개의 이스라엘 ‘벤처’ 기업들에 투자했고, SRIL은 이스라엘 기업 단체인 첨단산업협회의 연례 회의에도 참가했다.
2018년에 삼성은 벤처 기업 인수 합병에 할당한 예산의 4분의 1을 이스라엘에 썼고, 이듬해인 2019년에 카메라 기술 기업 코어포토닉스를 인수했다. 코어포토닉스는 네타냐후 정부의 과학기술부 수석 과학자 출신으로 산학협력의 설계자인 다비드 멘들로빅이 세운 기업으로, 군사·민간 ‘이중 용도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삼성은 이렇게 사들인 기술을 반도체·스마트폰 개선에 썼다.
삼성은 사장급 인사가 SRIL을 매년 방문하며 긴밀히 관리한다. 가자 전쟁 한 달 전인 2023년 9월에도 이재용이 직접 텔아비브에 있는 SRIL을 방문했다. 2024년 삼성이 투자 법인 지사를 철수할 때도 SRIL은 계속 남았고, 아직 운영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얻는 것 ─ 단지 판매 대금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양국 관계에서 이스라엘은 무엇을 얻어 갈까? 그저 판매 대금은 아니다.
가자 전쟁 발발 직후인 2023년 10월 12일, 이스라엘의 관변 연구소 예루살렘안보전략연구소는 이렇게 지적했다. “한국과의 파트너십은 이스라엘이 인도·일본·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서방의 중동 경비견인 이스라엘이, 한국처럼 친서방 국가이지만 아시아에 있고 제국주의 강대국은 아닌 국가와 관계가 돈독해지면 이스라엘의 외교에 득이 된다는 것이다.
2021년 한-이스라엘 FTA가 그 사례다. 그 협정은 양국 상품 95퍼센트를 무관세 무역하는 포괄적 FTA였는데, 이는 이듬해 이스라엘이 그전까지 외교적으로 외면받던 동남아시아에서 포괄적 FTA를 맺는 계기가 됐다(베트남-이스라엘 FTA).
《디플로맷》은 2022년에 이렇게 지적했다. “수십 년 동안 서방 국가들과 파트너십을 유지해 온 이스라엘은 이제 아시아 국가들과의 정치적·경제적 참여 확대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 한국과의 파트너십은 그 큰 흐름의 서곡이다.
“그 계획이 결실을 맺으면 이스라엘에게는 더 넓은 국제 무대의 문이 열릴 것이다.”
요컨대, 한국 기업과 정부가 이윤과 군사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대(對)이스라엘 교역은, 인종 학살 국가의 정당성을 제고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피 묻은 기술로 강화된 한국의 군사력은 동아시아의 불안정 심화에도 한몫할 것이다.
인종 학살과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은 한국 기업과 정부가 이스라엘의 피 묻은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미 영국 등 유럽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그런 요구를 제기하고 있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이 계급적 힘을 발휘한다면 이런 요구를 더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지난달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항만 노동자들은 이스라엘을 향하는 무기가 그들이 일하는 항만에서 실리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그보다 전에는, 미국 구글 노동자들이 구글과 이스라엘이 인공지능 클라우드 계약을 맺은 데에 항의해 직장 이탈 투쟁을 벌였고 이 투쟁은 영국 구글 딥마인드 연구원들의 투쟁으로 확대됐다.
친서방 국가인 한국에서도 그런 투쟁이 벌어진다면,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한국 정부와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더 고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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