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아무것도 아닌 자” 전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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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가 국민의힘(국힘) 당권을 접수함으로써 극우의 힘을 보여 줬다. 극우 당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반탄파 극우가 지도부의 다수를 차지한 것이다. 국힘은 보수층의 56퍼센트가 지지하는 정당이다(한국갤럽의 8월 29일 발표). 대표적인 보수 정당의 지도권이 극우에게 넘어간 것이다.
국힘의 극우화에 고무돼 극우 단체들의 기세도 한층 등등해지고 있다. 8월 28일 서부지법 폭동 가담자 변론에 나섰던 변호사들이 서부자유변호사협회를 창립했다. 황교안, 고성국 등 극우가 참석하고 김용현이 옥중편지를 보내 격려했다. 참석자들은 (터무니없게도) 서부지법 폭동을 “혁명,” “항거”로 추켜세웠다.
대다수 자유주의자들은 (극우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국힘에서 극우의 입지를 축소시켜 극우 세력을 정치적으로 주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
평범한
이런 사태 전개의 한복판에 ‘전한길 현상’이 있다. 내세울 만한 정치적 업적을 쌓은 경력도 없는 전한길이 어떻게 떠오를 수 있었을까?
전한길은 평범하고 우스꽝스러운 인물이었다. 전광훈은 3월 초에 전한길을 두고 “공무원 문제 풀이 네 개 중 하나 찍는 것 하던 강사”라고 직격했다. 그런 점에서 전한길은 “아무것도 아닌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건희와는 다른 “아무것도 아닌 자”다. 김건희는 남편의 권력을 등에 업고 남편의 인적 연계와 대통령실의 자원을 이용해 부패를 저지른 “아무것도 아닌 자”이다.
반면 전한길은 대중 선동을 통해 극우 운동을 건설하고 있다. 그는 불과 몇 달 만에 고출력의 극우 스피커가 됐다. 전한길은 제도적 권위를 이용해 인기를 얻은 게 아니다. 그의 인기 기반은 국힘 지도자라는 지위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전한길이 끌고 장동혁이 따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 점에서 전한길을 단순히 “아무것도 아닌 자”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전한길이 자체의 독특한 강령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순한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 찬탄파를 향해 “배신자”라고 외치고, 반탄파를 “의리 있는 사람들”이라고 찬양한다. 이런 단순하고 극단적인 주장이 극우 지지자들에게 큰 만족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전한길의 하찮은 메시지가 극우들 사이에서 먹히는 것은 깊은 사회·정치·경제 위기와 관련 있다. 극우는 윤석열이 군사 쿠데타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바, 즉 민주적 권리를 파괴하고 권위주의 정체로 회귀하는 것이 이런 위기의 해결책이라고 본다.
극우는 “윤 어게인”을 외치는 전한길에게서 자신들의 소망을 이룰 지도자와 자신들 사이를 잇는 중재자 구실을 발견하고 있다. 전한길의 지원을 받아 최고위원이 된 김민수는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석방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기존 정치 질서가 위기에 빠졌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시나리오의 하나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등장한다고 주장했다.(다른 해결책으로는 지배 연합의 재편, 수동 혁명, 혁명적 전환 등을 꼽았다.)
윤석열이 그 배역을 자임했다가 좌절했다. 윤석열의 카리스마가 “멋있다”고 추앙하던 전한길이 이제는 자신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역사적 임무를 수행할 중재자를 자임하고 있다. “전한길 품는 자가 향후 국회의원 공천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전한길을 품는 자가 다음에 대통령까지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배역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권위주의적이고 극도로 억압적인 전술을 점점 더 많이 채택하고 있다. 워싱턴 D.C.에 이어 시카고에 주방위군을 투입하려 하고, 워싱턴 D.C.에 사형 제도를 부활시키고 싶어 한다. 또, ‘프라우드 보이스’ 같은 파시스트 그룹과 교류하며 그들에게 수십 년 만에 가장 대담한 행동을 할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트럼프의 이런 행동은 한국 극우를 고무하고 있다.
따라서 12.3 쿠데타와 그 뒤 부상한 극우 운동을 이 시대에 일어나리라 상상조차 못했던 일로 여기는 것은, 단선적인 역사 진보 관념이자 위험한 정치적 태만이다. 현재의 첨예한 상황 전개를 그저 하찮은 광인들의 소극으로 치부한다면, 지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모르는 그 존재들이 언젠가 정말 승리의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
자유주의자들의 전략은 그럴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이 다수당인 만큼 야당[국민의힘]을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고 말했다. 중도·보수층(우파 논객 조갑제나 정규재로 표상되는)을 끌어안아 반극우 동맹을 유지하겠다는 구상 속에서 나온 말이다. 또, 그는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 지배 전략에 어긋나지 않는 외교·안보 정책을 펴 우파의 환심을 사려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런 전략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대중을 실망시켜, 극우의 정치적 토양이 될 대중의 정치 환멸을 불러올 수 있다.
반면 민주당에 기대지 않고 극우에 맞선 대중 투쟁을 건설한다는 전략을 채택하면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중 투쟁 없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