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촉구는:
부역자 PA(팔레스타인 당국)에게 가자를 맡기라는 촉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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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유엔 총회를 앞두고 이재명 정부가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참여연대가 이스라엘과의 군사 협력 중단 등과 함께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8월 25일 자 성명) 정의당도 권영국 대표 명의로 국가 인정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국가 인정이 지금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뜻하는 바는, 최근 프랑스 등의 두 국가 방안 재점화에 힘을 싣는 것이다. 지난 7월 말에 프랑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해 두 국가 방안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의를 열었고, 유엔 총회는 그 회의를 오는 9월 22일에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7월 말 열린 그 고위급 회의는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및 두 국가 방안 실현을 위한 계획을 담은 ‘뉴욕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선언문에 담긴 계획은, 팔레스타인의 “온전한 자결권을 보장”(6·11항)한다면서도 실제로는 그 자결권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내용이다. 선언문에는 이미 그런 결과를 입증한 1990년대 ‘평화 프로세스’의 요소들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

선언문이 인정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는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 전체가 아니라 동예루살렘·서안지구·가자지구로 한정된다(19항). 그러니 선언문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귀환할 권리 재확인”(39항)은 공문구에 불과한 것이다.
영토·국민과 함께 국가의 3요소를 이루는 주권도 제약받기는 마찬가지다. 그 국가는 자기 영토를 방위할 군대를 가져서도 안 된다(20항). 또한 그 국가를 이끌 팔레스타인 당국은 ‘국제 사회,’ 특히 유럽연합과 아랍연맹이 “신뢰할 수 있는 개혁”을 펴야 하고(21항), 선거도 국제 사회와 유럽연합의 감시하에 치러야 한다(22항).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선언문은 이스라엘이 ‘평화 프로세스’ 당시 협정에 의거해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걷어간 세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하지만(27항), 그렇다고 팔레스타인 국가에 조세권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이 선언문이 상정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이끄는 것은 1990년대 ‘평화 프로세스’로 이스라엘의 점령 부역자 구실을 한 팔레스타인 당국(PA)이다.
선언문은 팔레스타인 땅을 통치할 권한이 오직 PA에게만 있다고 강조하며(11·13·21·26항) 하마스의 무장 저항을 규탄하고 가자지구 통치권과 무장을 PA에 넘기라고 요구한다(4·8·11항).
PA는 선언문 작성 논의에 참여해 군사적 개입을 촉구했고, 선언문은 그 “호소에 따라” 군사 개입을 촉구했다(15·16항). 하지만 본지가 거듭 지적했듯, 그런 개입은 실현 가능성도 낮을 뿐더러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억누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의 필요와 충돌한다.
부역자
사실 PA는 과거 오슬로 협정을 통해 정확히 같은 약속을 받고 세워진 기구로서 점령 부역자가 됐다. 이런 역사는 이스라엘과 “평화 공존”하고 “이스라엘의 자결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이 낳을 문제를 밝히 보여 줬다.
PA는 ‘평화 프로세스’하에서 누리는 “소(小)국가” 지위에 혈안이 돼 협상 중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완전 장악 시도를 은폐하는 구실을 해 줬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을 대신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탄압했다.
PA하에서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정착촌 건설은 가속됐고, 팔레스타인 경제는 저가 노동력 공급처로서 이스라엘 경제에 결속됐다. 이로 인한 대다수 팔레스타인인들의 고난을 대가로 극소수 PA 사람들은 특권을 누렸다.
PA는 거대한 보안 기구들을 발전시켰고, 이 기구들은 이스라엘의 폭력에 맞서기는커녕 이스라엘과 협조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탄압하는 구실을 해 왔다.
그런 구실을 가장 뚜렷이 보여 준 사건은 PA가 하마스를 상대로 2006년에 기도한 쿠데타였다. 당시 총선에서 그 전까지 PA를 주도한 파타당이 참패하고, 무장 저항을 포기하지 않던 하마스가 압승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집트는 이를 용납할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쿠데타를 사주했다. 이에 파타가 장악하고 있던 PA의 보안 기구들은 하마스 정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가 실패하고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통치권을 확립하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했고 파타가 장악한 서안지구 PA는 이스라엘과 공모해 가자지구로 가는 전기를 끊었다.
이번에 PA가 가자지구에 대한 다국적군 개입을 호소한 것은 그간 서안지구에서 누리던 “소(小)국가”의 ‘통치권’을 가자지구에서도 보장받기 위한 것으로, 자신이 실패한 하마스 제거를 대신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역사와 PA의 귀결은, 지금 제기되는 ‘국가 인정’ 논의가 팔레스타인 연대자들이 지지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관련 기사 본지 555호 ‘다시 떠오른 ‘두 국가 해법’ —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진전인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는 1년 안에 이스라엘의 점령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요구에 꿈쩍도 않았고, 이에 각국 정부들은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제재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이라는 환상으로 시선을 돌리려 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트럼프와 이스라엘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어 진전이 요원하다. ‘국제 사회’에 기대를 거는 일이 얼마나 무망한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느 재한 팔레스타인인의 지적처럼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그런 방안에 환상을 품을 여유가 없다.”
각국 지도자들이 그 환상이나마 다시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팔레스타인인들 자신의 저항과 그에 호응한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이스라엘과 그 후원자들을 극심한 정당성 위기에 빠뜨렸기 때문이었다.(관련 기사 본지 553호 ‘서방 지도자들의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약속은 사기다’)
팔레스타인 연대자들은 외교라는 신기루가 아니라 그 저항들을 건설하고 그것이 여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아랍 지역 노동계급의 반란이 분출해 이스라엘과 그 지역 동맹들을 떠받치는 기성 질서 자체에 도전하기를 바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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