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네수엘라발 유조선 탈취는 중국을 겨냥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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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극우 지원하며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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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미국은 카리브해에서 대형 유조선을 나포하고 최대 200만 배럴의 베네수엘라산 석유를 탈취했다. 해적질이나 다름없는 이 공격은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NSS) 발표 이후 첫 번째 주요 군사 행동이었다.
미국 정부는 이 공격이 “마약 테러리스트의 자금을 차단하기 위한 적극적 제재 조처”였다며, 나포된 유조선이 나포 당시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을 끄고 항해 중이었음을 부각했다.
하지만 ‘마약과의 전쟁’은 빌미일 뿐 실제로 겨냥한 것은 중국이라는 정황이 여럿 있다.
일단, 그 유조선은 나포 당시 중국을 향하고 있었던 듯하다. BBC는 유조선 추적 기관 ‘탱커 트래커’ 등의 데이터를 집계해, 해당 선박이 8월 초 AIS를 끄고 남중국해를 출발해 11월 초순에 카리브해에 도착했고, 다시 베네수엘라산 석유를 싣고 돌아가다가 나포된 듯하다고 보도했다.
AIS를 끄고 유조선 이동 경로를 감추는 일명 ‘그림자 항해’는 중국이 미국의 제재 대상국에서 석유를 수입할 때 즐겨 쓰는 방식이다. 베네수엘라를 출발한 유조선이 AIS를 끈 채 말라카 해협으로 이동한 후 거기서 제3국 국적의 유조선에 석유를 옮겨 싣는 식이다. 그러면 해당 석유의 원산지는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제3국으로 표기되고 중국은 2차 제재 대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중국은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량의 약 80퍼센트를 수입해 왔다.
의미심장하게도, 미국의 이 공격은 중국이 ‘제3차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정책 문서’(이하 LAC)을 발표한 것과 같은 날 이뤄졌다.
이번 LAC는 트럼프의 NSS에 대한 중국의 맞대응으로, 카리브해·라틴아메리카에서 “패권주의와 힘의 정치에 반대”하고 재정·무역·에너지·인프라·제조업 등 부문에서 역내 각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모두 NSS가 “핵심 국익”이라고 밝힌 부문들이다.
이번 LAC가 이전 두 LAC(각각 2008, 2016년 발표)에 견줘 눈에 띄는 또 한 가지 점은 이번 문서가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군사적 교류·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보면서 이를 자국의 ‘글로벌 안보 구상’(GSI)과 연동시켰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유조선 탈취로 군사 행동 수위를 올린 배경이다.
그 전에도 트럼프 정부는 고율 관세와 전쟁 위협을 조합해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을 압박해 왔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을 밀어내고 미국의 지배력을 재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관련 기사 ‘트럼프는 왜 ‘뒷마당’ 라틴아메리카를 다시 중시하고 있는가?’).
이번 NSS/LAC 발표와 유조선 탈취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전쟁 위험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트럼프는 추가 군사 행동을 선언하며 카리브해에 특수작전 병력을 추가 투입했다. 이로 인한 갈등의 파장은 카리브해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극우 지원하며 개입
트럼프의 개입은 라틴아메리카 전체에서 친미·친트럼프 세력을 이롭게 하고 정치 지형을 우경화하는 힘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그간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부를 겁박하는 동시에 카리브해 연안국 온두라스의 대선에서 극우를 지지하며 개입했다. 트럼프는 현재 중도 좌파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콜롬비아·페루·브라질 등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유조선 탈취 며칠 후인 12월 14일에는 칠레 대선에서 친트럼프·극우 후보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가 승리했다.
카스트는 중도 좌파 보리치 정부가 기업주·우파와 타협하며 서민 생활고를 외면한 데서 반사이익을 얻었다.
보리치는 헌법 개정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들다 진보적 개혁과 극우 심판 모두 실패했고 극우는 되려 기회를 얻었다(관련 기사 본지 460호 ‘칠레 제헌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제1당이 되다’). 트럼프가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중도좌파 정부를 공격하고 극우를 띄워 준 것은 카스트의 전진에 더 도움이 됐다.
트럼프 정부는 국무부 공식 성명을 발표해 카스트 당선을 환영했다.
본보기
하지만 트럼프의 뜻이 온전히 관철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트럼프는 미국에 반기를 드는 라틴아메리카 정부는 죄다 교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을 군사적으로 압박해 본보기 삼으려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트럼프가 동원한 군사력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을 훼방놓고 경제를 옥죄는 데에 특화돼 있지, 트럼프의 으름장처럼 지상 공격 태세를 갖춘 것은 아니다. 평범한 베네수엘라인들이 국민방위전 준비에 동참하고 있기도 한데, 그들은 마두로 정부가 부패하고 억압적일지라도 친미 극우 코리나 마차도가 그 정부를 타도하고 집권하는 것이 훨씬 해롭다고 여길 것이다.
브라질에서는 트럼프의 지원을 받는 극우 정당들의 주도해 수감 중인 쿠데타 미수범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조기 사면을 가능케 할 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자 전국적 반(反)극우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대중 투쟁이 더 확대·심화돼야 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노동계급 사람들 모두가 저항해 트럼프와 그 동맹자들 모두에게 좌절을 안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