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하마스 규탄 국회 결의안’ 환영,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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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12월 8일 국회의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 관련 민간인 보호와 사태의 평화적 해결 촉구 결의안’ 채택을 환영했다. 이 결의안은 하마스 규탄을 강조함으로써 현재의 비극이 사실상 하마스의 잔인한 공격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한다.(관련 기사: 본지 486호, ‘국회, 하마스 규탄 포함 초당적 결의’)
앞서 11월 24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을 대표한 참여연대와 함께 김상희(민주당)·배진교(정의당) 의원과 왈리드 시암 주일 팔레스타인 대사의 만남을 주선했다. 김상희 의원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보호와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즉각 휴전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었다.
애초 김상희 의원이 발의한 결의안도 분명한 이스라엘 규탄 입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조차 국회 논의를 거치며 더 후퇴했다. 국민의힘 의원 하태경의 발의안과 병합되며 하마스 규탄이 더 부각되고, 이스라엘과 미국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즉각 휴전’ 촉구가 빠지고 ‘인도적 휴전’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최종 결의안은 미국의 입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게 됐다. 하태경 의원은 ‘하마스 테러단체 지정법’을 발의할 정도로 이스라엘 편이다.
김상희 의원의 결의안 발의를 중시하던 참여연대도 국회 결의안 통과에는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대한민국 국회가 외교부와 달리 휴전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인 것을 환영한다”고 포장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국회가 결의한 것은 국제앰네스티와 한국지부가 요구해 온 “즉각 휴전”에서도 크게 후퇴한 것으로, 기껏해야 구호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교전을 중단하자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미국의 위선적 입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일시적 교전 중단 이후 이스라엘의 학살이 다시 시작되면 구호품으로 잠시 한숨 돌렸던 가자지구 사람들은 또 다시 고통과 죽음에 직면할 것이다. 이런 ‘인도적 휴전’ 촉구가 이스라엘의 학살 중단과 점령 종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평화주의의 양면성
국제앰네스티는 2022년 2월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로 옳게 규정하는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1948년 이스라엘이 유대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그 지도자들이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대량 추방하고 수백 개의 마을을 파괴했으며, 이는 인종 청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그 보고서는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의 체계적인 억압 정책, 법률, 관행 등을 1948년부터 현재까지 추적한다. 더 나아가 이것이 “우발적인 범죄의 반복이 아니라 제도화된 체제의 일부”라고 옳게 규정한다.
이는 팔레스타인 운동과 좌파에게 꽤 오래 전부터 명료한 것이었는데, 이스라엘의 만행이 계속되면서 국제앰네스티 등 주류 인권단체들도 최근 이 견해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반영하는 좋은 일이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도 이 보고서를 자신의 웹사이트에 요약 번역해 게시했고,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즉각 종식’ 온라인 서명을 벌였었다. 또, 지난 12월 6일 한국지부가 주최한 ‘긴급 웨비나(온라인 세미나)’의 제목은 “휴전을 넘어,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으로”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국제 사회,” 즉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행동에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
그래서 각국 국제앰네스티의 관련 주요 활동은 휴전을 지지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11월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교전 일시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국제앰네스티 아녜스 칼라마르 사무총장은 큰 의의를 부여하며 이렇게 말했다.
“유엔 안보리는 마침내 평화와 안보 유지, 국제 법치 보호라는 주어진 역할과 리더십을 행사했다. ... 찬성이 아니라 기권을 선택함으로써 미국이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에서 벗어날 준비가 돼 있다는 변화의 첫 번째 신호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미국은 이스라엘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 일시적 교전 중단이 며칠에 될지, 몇 주나 몇 달이 될지를 두고 빚어지는 양국간 의견 차이는 전혀 본질적이지 않다.
위선에 속을 우려
“국제 사회”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질서다.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국제법을 간단히 무시하고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유엔 같은 국제기구 개입은 팔레스타인에 무용하거나 심지어 해로웠다.
가령 최근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검사장 카림 칸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범죄를 조사한다며 이스라엘을 방문해 이스라엘 측 피해자를 만났다. 하지만 가자지구는 방문하지도, 독자적 조사를 진행하지도 않았다.
설사 ICC에서 이스라엘의 행위가 전쟁 범죄라는 판단이 나오더라도, 그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뿐더러 효과도 별로 없다.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서안지구에 이스라엘이 세운 분리장벽이 불법이라고 판단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ICJ는 국제법에 따라 국가간 분쟁만을 재판한다.)
국제앰네스티 활동가들이 이런 한계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아래와 같이 그들에게 달리 대안이 없는 듯하다.
“완전히 좌절스러운 상황입니다. ‘대관절 국제법이 있어도 범죄를 자행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국제법이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우리는 완전히 공감합니다. 그래서 국제형사재판소에 권한이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한국지부 주최 ‘긴급 웨비나’에서 발제자 중 하나인 부두르 하산 조사관)
“국제 사회”에 기대는 평화주의가 단지 무용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위기가 첨예할수록 제국주의적 강대국들의 위선에 포섭될 위험도 커진다. 이번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국회 결의안 환영이 그 사례다.
국제앰네스티와 그 한국지부는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옳게 규정하면서도, “민간인 보호”라는 기준에 따라, 이런 규정을 사장시켜 버린 채 (아래와 같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을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규탄한다.
“최근 분쟁의 근본 원인은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있다. 그러나 10월 7일 하마스와 다른 무장 단체가 자행한 전쟁 범죄와 인권 유린을 이것으로 절대 정당화할 수 없다.”(11월 29일, ‘공개된 권리: 인권과 무력충돌’ 국제앰네스티 보고서)
국제앰네스티 요구 중에는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모든 분쟁 당사자들의 즉각적인 휴전”과, 하마스와 다른 무장단체들에게 “민간인 인질들을 조건 없이 즉시 석방”할 것도 포함된다.
물론 민간인 공격이 미덕은 아니다. 하지만 앰네스티 입장은 민간인 희생과 인질 억류가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저항의 불가피한 결과임을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퍼붓고 인질이 최소한의 구호 물품과 팔레스타인인 수감자들을 교환하는 수단이 되는 상황에서(이런 상황은 이스라엘이 만든 것이다) 앰네스티 요구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말리는 것이 된다.
무엇보다 앰네스티 같은 입장은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이 팔레스타인인과 중동 피억압 대중에게 이스라엘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유례없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촉발한 정치적 의의를 무시한다.
“국제 사회”(사실상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주도한다)를 설득해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종식시키자는 입장이다 보니 하마스의 10월 7일 이스라엘 공격이 문제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국회 결의안을 환영한 것은 “국제 사회”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고 설득하려 드는 평화주의가 구체적 상황에서는 피억압자들에게 불리하게 미끄러질 수 있는 위험성을 보여 준다.
1월 15일에 논지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소제목 ‘평화주의의 양면성’ 앞의 두 문단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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