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가 아니라 성평등 교육이다:
경찰 수사 중단하고 직위 해제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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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탄압에 항의하는 배이상헌 교사의 정당한 투쟁을 지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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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한 중학교 도덕교사가 성평등 수업에서 성인지 교육용 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보여 줬다가 어이없게도 ‘성 비위’ 혐의로 직위 해제되고, 경찰에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입건됐다(관련 본지 보도: ‘성평등 수업을 경찰 수사로 넘긴 광주시교육청 규탄한다 — 경찰은 배이상헌 교사 수사 중단하라’). 그후 배이상헌 교사는 9월 3일 첫 소환조사를 받았다.
광주시교육청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경찰은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이 ‘학생들에게 끼친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교육 목적으로 영화를 보여 줬더라도 ‘정서적 학대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한다. 영화를 본 뒤 일부 학생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거나 불쾌해 했다는 것이다.
배이상헌 교사가 수사관에게서 심문받은 내용은 시종일관 학생들이 수업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억압받는 다수〉뿐 아니라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드바르 뭉크의 유명한 그림 〈키스〉를 교사가 보여 준 것도 문제 삼았다고 한다! 학생들이 이 그림을 보며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말이다.
이 수사의 수구 보수적인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교육청과 경찰 같은 국가기구가 일부 학생들의 불만을 이용해 성에 관한 논의 자체를 더럽거나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며 교사의 업무를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을 성적으로 무지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려 이런 방치야말로 청소년들이 자신과 타인의 자연스런 욕구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관계 맺는 법을 배워 나가는 것을 방해한다.
배이상헌 교사의 성평등 수업을 범죄 취급해 경찰 손에 넘기고 ‘학생 보호’ 운운하는 교육청 성인식개선팀과 장휘국 교육감 등 광주시교육청 직원들과 관료들의 독단적인 행동이야말로 수치스럽다.
‘학생과 교사의 권력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며 광주시교육청과 경찰 수사를 옹호하는 일부 여성단체들의 주장은 군색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불쾌함을 느끼면 무조건 성범죄이고, 교사 책임인가? 50대 남자가 무슨 성교육이냐는 국지혜 같은 분리주의적 페미니스트의 노골적인 남성 배척이 어쩌면 더 솔직한 것일 수 있다. 페미니스트인 최현희 교사가 보수적인 일부 학부모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여성단체들의 일치단결된 대응과는 대조적이다. 그때는 ‘학생-교사의 권력 차이’를 내세워 경찰 수사를 지지하는 여성단체들이 없었다.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시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보수적인 가족 가치관과 성 관념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유포되며 청소년들의 성적 욕구나 관심이 금기시된다. 학생들은 금욕주의를 설교받으며 문제 풀이 기계로 살 것을 강요받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학생들은 혼란을 겪기 쉽고 숨막히는 학교에 대한 불만을 교사에게 표출하기도 쉽다. 학생들의 혼란이나 불만을 이유로, 경쟁적 교육을 지탱하는 권력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교사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성교육이 여성 교사, 그것도 일부 여성단체들이 승인하는 ‘젠더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진솔하고 개방적으로 성을 다루려는 시도는 모두 격려받아야 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실수나 오해가 있다 해도, 새로운 시도가 없다면 교육의 진보가 있을 수 없다. 성범죄와 성(평등) 교육을 혼동해선 안 된다.
전교조 대대에서 확인된 압도적인 배이상헌 방어 정서
광주시교육청은 일부 여성단체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 사안이 스쿨미투 사안으로 보이게 만들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런 꼼수와 이간질에도 굴하지 않고 광주시교육청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8월 31일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참가자의 약 80퍼센트(약 300명 중 235명)가 배이상헌 교사를 방어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광주시교육청과 경찰 수사를 지지하는 일부 여성단체들이 ‘학생의 목소리를 지우지 말라’며 사태의 본질을 흐려 왔지만, 진보적 교사들 대부분은 이것이 국가기구의 교사 노동자 탄압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광주시교육청은 독단적 행정을 정당화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9월 2일 16개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수사 진행 중”이니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해당 교육청에서 어떠한 의견이나 담론이 형성되지 않도록 협조”할 것을 주문했다. 한마디로 각 교육청이 광주시교육청을 비판해선 안 되고 비판적 목소리를 차단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장휘국 교육감에 대한 진보적 지지자들의 실망과 불신이 늘어날 것이다. 광주시교육청은 잘못을 인정하고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직위 해제를 즉시 철회해야 한다. 또, 경찰은 배이상헌 교사 수사를 즉시 중단하라!
전교조가 배이상헌 교사 방어에 나서야 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전교조 지도부와 전교조 여성위가 배이상헌 교사 방어에 나서지 않는 것은 문제다. 조합원의 교육서비스 제공(수업)이 국가 탄압을 받고 있는데도 조합 집행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조합원들은 위축감을 느끼기 쉽다. 조합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다.
특히 전교조 여성위의 행동은 더 납득하기 어렵다. 전교조 여성위가 추천한 영상을 수업 교재로 사용한 동료 교사가 고초를 겪고 있는데도 그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전교조 여성위의 일부는 배이상헌 교사의 정당한 자기 방어 활동을 ‘2차가해’라고 비난하며 전교조 지도부가 배이상헌 교사 방어에 나서지 못하도록 애쓰고 있다.
배이상헌 교사와 그 지지자들이 학생들의 목소리를 죽이고 있다거나, 이 교재가 학생 발달 단계에 맞지 않으므로 성평등 수업이 아니라는 일부 여성단체들과 일부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은 이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주장이다.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곧 성범죄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진정한 성범죄가 아닌, 수업이나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은 경찰이 나서서 수사할 문제가 아니다. 교육자들 사이의 토론이나 교사-학생 간 대화 등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 사안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광주시교육청을 편들어 온 일부 여성단체들(광주전남여연 등)은 학교 성희롱·성폭력 사건 대응 매뉴얼 보완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사안의 성격을 따져 보지 않고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무조건 경찰 수사, 직위 해제로 이어질 근거를 제공하는 교육부의 매뉴얼은 수정돼야 한다.
그러나 광주시교육청의 부당한 조처 철회와 경찰 수사 중단을 요구하지 않고 매뉴얼 보완을 말하는 것은 당면한 핵심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유추로 주장하자면,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당사자를 방어하지 않고 국가보안법 개정만 말해서야 되겠는가? 이런 주장은 대중 자신의 저항의 섟을 죽이고 정치인들의 개혁 입법에 맡기자는 대리주의를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성 비위’ 심의위원회에 교사, 학생, 외부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골고루 반영될 수 있도록 보완하자(광주여성민우회 8월 16일자 성명)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애먼 교사 탄압을 사실상 지지해 많은 여성들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비판받고 있는 일부 여성단체 간부들이 책임은 회피한 채, 협상 자리에 들어가 결국 자신들의 입지 강화에 이용하려 들 수 있음을 나타낸다.
게다가 ‘젠더 전문가’가 ‘성 비위’ 심의위원회에 더 많이 들어간다고 해도 그 자체가 성평등의 진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런 심의위원회가 계속해서 일부 학생들의 불쾌함을 성범죄 성립 요건으로 삼으며 권위주의적·관료적 행정에 협조한다면, 배이상헌 교사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며 고초를 겪는 사람이 계속 생겨날 것이다.
전교조 지도부는 배이상헌 교사 방어에 나서야 한다. 국가기구(사용자)가 교사(노동자)의 정당한 수업 활동을 탄압하고 있는 일(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자 사용자 측의 계급투쟁)이라는 점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당면한 과제를 방치한 채 매뉴얼 타령만 해서도 안 된다. 억압적 교육에 반대하고 개방적인 교육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배이상헌 교사의 저항에 지지를 제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