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먼 교사 생사람 잡으며 경찰에 넘긴 광주시교육청을 지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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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상헌 교사 수사의뢰·직위해제 철회하라
〈노동자 연대〉 구독
지난 7월, 광주시교육청이 성평등 교육을 한 중학교 도덕교사 배이상헌 씨를 성범죄자로 몰아 경찰에 수사의뢰하고 직위해제한 일이 일어났다.(관련 노동자연대 성명 ‘광주시교육청은 배이상헌 교사 수사의뢰·직위해제 철회하라’ 참고) 그 뒤 배이상헌 교사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 이하 지지모임)이 광주시교육청의 조처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는 항의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항의는 완전히 정당하다. 일각에서는 직위해제가 징계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용어의 형식적 성격 규정과 관계없이 이는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몰려 뭇 언론의 선정적 보도 대상이 되고 경찰 수사를 받게 된 사람(과 그 가족)에게 도무지 할 말이 못 된다.
광주시교육청은 “학생 보호” 운운하지만, 자신의 독단적 행정의 과오를 덮고자 경찰의 힘을 빌리려 한다.
애초에 일부 학생이나 학부모의 민원에 근거해 성평등 수업을 ‘성비위’로 낙인 찍은 것부터 문제였다. 그 민원은 배이상헌 교사가 성추행이나 그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게 아니라, 수업의 내용(교사가 틀어 준 영상과 몇몇 발언)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 수업은 은밀한 공간이 아니라 학교 교실에서 이뤄진 공식 수업이었다. 그러므로 교육청이 진실을 파악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조금도 어려울 게 없었다.
그러나 광주시교육청은 배이상헌 교사에게 수업 배제 조치를 취하면서 소명 기회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혐의 내용조차 알려 주지 않았고, 기본적 사실관계도 면밀히 조사하지 않았다.
이 수업이 성평등 교육이라는 점은 수업 내용과 교사 이력을 볼 때 명백하다. 논란이 된 영상 〈억압받는 다수〉는 프랑스의 엘레오노르 푸리아 감독이 여성 차별의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전교조 여성위원회를 포함해 많은 여성단체들이 교육 자료로 추천한 영상이다.
그리고 교육자 배이상헌 교사는 성평등 관련 집필과 교육 등을 오랫동안 해 온 전교조 교사다. 더구나 그는 여성단체의 오랜 회원이었고 지금도 후원회원이다.
이 영상을 보고 몇몇 학생들 사이에서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느꼈다는 반응이 나온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 성, 특히 폭력적인 성을 묘사하는 것은 종종 오해나 불쾌한 반응을 낳는다. 그래서 이 영상이 우리나라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에게 적합하거나 효과적인 교육 영상이냐 하는 문제제기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 돼야지, 교육청이나 경찰 같은 국가기구가 나서서 (성범죄로) 단죄할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성범죄와 무관한) 교육 내용까지 국가기관이 감시와 단죄의 대상으로 삼으면, (성에 관해)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을 가로막으며 권위주의(그리고 성적 보수주의)를 부추길 뿐이다.
교육청이 경찰에 배이상헌 교사를 수사의뢰한 근거는 전교생 대상 전수조사를 통해 얻은 일부 학생들의 진술이다. ‘수업에 사용된 영상에 수치심을 느꼈고 배이상헌 교사가 성희롱적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문제적 발언으로 지목된 것은 ‘너희는 나를 식민지처럼 따라야 한다’, ‘성관계를 하고 나면 기분이 야릇하고 좋다’, ‘위안부는 몸파는 여자, 위안부는 스스로 가서 그랬다’, ‘남자가 여자를 꼬실 때 안 되면 강간하면 된다’ 등이라고 한다.
배이상헌 교사는 이런 말들이 앞뒤 맥락이 다 잘린 채로 신고됐다며 자신의 발언이 곡해되거나 왜곡된 것에 대해 해명했다. 해당 교사의 평소 실천을 보더라도, 그에게 불리한 진술을 제공한 학생들은 그의 발언 의도를 오해하거나 곡해했음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몇몇 학생들의 불쾌함을 이유로 교사의 수업 내용의 일부인 발언(그 진위 여부도 엇갈리지만)을 성범죄로 취급해 경찰 수사로 넘기는 교육청의 ‘스쿨미투’ 대응책이 과연 온당한가?
배이상헌 교사는 올해 5월 전교조광주지부 토론회에서 교육부와 광주시교육청의 스쿨미투 교육행정을 “관료적”이라며 비판했었다. 마치 이번 사태를 예고하는 듯한 구절도 들어 있다.
〈관료적 스쿨미투의 문제〉 염려와 우려는 스쿨미투가 아니라 스쿨미투에 대응하여 도마뱀 꼬리자르기식 일벌백계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교육행정이다. 교사의 선의가 분명해도 학생은 얼마든지 불쾌하고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학교이다. 나와 같은 도덕교사가 정규교육과정에서 가르치게 되어 있는 섹스-젠더-섹슈얼리티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도 듣는 학생에 따라선 앞뒤 맥락 없이 불쾌감과 혐오로 반응하고 기억하며 이를 설문으로 신고할 수 있는 곳이 학교이다. … 현재의 학교모습처럼 교사를 향한 징벌과 공포, 학생 개개인의 설문에 근거한 신고와 보호주의만으로 성 평등한 학교문화가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한편, 광주시교육청이 애초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을 학교 ‘성폭력’(성희롱) 사안으로 규정한 동기 자체가 의심스럽다. 광주시교육청이 배이상헌 교사의 성향과 이력을 잘 모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성평등이나 학생 인권 교육 등을 해 온 전교조 교사이다. 광주시교육청의 인권연수 기획과 강의에 여러 차례 참여했고, 광주시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도 지낸 바 있다.(그래서 배이상헌 교사는 민원에 대한 광주시교육감과 정책국장의 판단이 “고의적 방조의 성격이 짙다”고 의심한다.)
3선의 장휘국 교육감은 취임 8년을 지나면서 진보 교육감답지 않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장휘국 교육감의 세 번째 출마에 반대한 광주지역 교사들도 있었다.
특히, 그는 2017년 초등돌봄전담교사 134명을 무자비하게 집단해고한 적이 있다. 당시 교사들은 이에 반발해 교육청 옥상 농성에 돌입하는 등 절박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전원 고용승계를 끝내 거부했다. 결국 67명만을 (필기시험 없이 서류 전형과 면접을 통해) 채용하고 나머지 노동자들은 필기시험 등으로 공개채용 하도록 했다.(본지 관련 기사, ‘134명 해고하려다 67명 해고한 장휘국 ‘진보’ 교육감’을 보라.)
배이상헌 교사는 장휘국 교육감 비판에 앞장서 온 교사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가 장휘국 교육감한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결과 아니냐는 예리한 교사들의 관측이 나오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의 억압적 조처를 편드는 일부 여성단체들
광주시교육청의 억압적인 조처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전국도덕교사모임, 전교조광주지부, 광주지역의 주요 교육단체들이 규탄 성명을 냈다. 배이상헌 교사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꿋꿋하게 광주시교육청의 조처 철회를 요구하며 항의를 이어 가고 있다. 지지모임은 8월 13일 오후 3시 광주시교육청에서 배이상헌 교사의 공개수업을 열었다. 그가 수업시간에 했던 ‘성윤리·성평등의 실천’ 수업을 재연하겠다는 취지다. 8월 20일 저녁 7시에도 광주 YMCA에서 공개수업을 한 차례 더 할 예정이다.
배이상헌 교사의 공개수업이 예고되자 8월 13일 광주여성민우회는 이렇게 비판했다. “젠더권력에 대한 이해가 없는 ‘성평등 교육’ 공개수업은 결코 ‘성평등 교육’이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젠더, 나이, 위계(교사-학생) 등에 의한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날 인천페미액션, 인천여성의전화, 인천여성회가 광주여성민우회와 공명하는 성명서를 내어, 배이상헌 교사와 지지모임이 “스쿨미투 피해학생의 목소리를 지”우는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교사의 의도가 옳았다고 하더라도, 성평등 교육을 위한 공인된 자료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학교내 젠더권력에 대한 이해와 성인지감수성이 결여된 교사의 교육을 성평등 교육이라 인정할 수 없다.”
광주시교육청을 편든 이 성명서는 급진적(즉, 남vs여 식 사회관을 가진) 페미니즘 특유의 도덕주의와 반지성주의를 잘 드러낸다. 남성 전체가 여성을 억압하는 권력자이고 교사 전체가 학생에 대한 억압자라는 인식에 따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여)학생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가해자 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애먼 교사를 성범죄자로 몰아 사용자(교육청)와 국가(경찰)의 제물이 되게 만드는 것이 스쿨미투의 일부일 수는 없다. 이런 일은 성폭력과 성차별 없는 학교를 만들자는 스쿨미투의 취지를 오히려 퇴색시킬 뿐이다.
위 성명서들의 주장은 오만한 선언이다. 자신들의 페미니즘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 교육은 성평등 교육이 아니고,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는 성평등 교육은 경찰 수사까지 받아도 된다는 뜻이다.
‘50대 남자가 무슨 성평등 교육을 하냐’고 비아냥거리는 국지혜(인천여성의전화 회원, 분리적 페미니즘 출판사 열다북스 대표)의 페이스북 글은 노골적으로 남성을 적으로 삼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의 관점에 충실하다.
자기 인생이 온통 여성혐오와 남성 특권으로 점철되었을 텐데. 50대 한국 남자가 아무리 페미물을 먹었다한들 그게 새로운 세대 학생들의 인권 수준에 정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 문제의 본질은 ‘남페미’에 있다. 실컷 학교에 페미교사를!! 스쿨미투!! 하고 운동했는데 그 결과가 50대 남자에게 성평등 교육을 받는 거라고? 숨쉬듯 여혐하는 한국남자가 관련 교육 좀 받고 책 좀 읽었다한들, 아무리 어리고 학생이라도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온 사람들을 감히. 감히 가르치겠다고? 나는 현장을 안봤지만 안봐도 비디오다. 여자 학생들이 느낀 불쾌감에는 근거가 있고 광주 교육청의 빠른 결단에도 근거가 있다.
모순되게도, 광주교육청의 수장은 남자인데도 그 결정을 지지한다. 물론 광주교육청의 성인식개선팀 안에 페미니스트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인천여성의전화 등이 인천교육청 내 스쿨미투 전담팀 마련을 촉구해 그 기구가 만들어졌으므로, 광주교육청 방침을 두둔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해관계와도 관련 있을 것이다. 지난해 각 지역의 스쿨미투가 여성단체들의 지지를 받으며 전개됐고, 각 교육청 내 성인식개선팀 같은 형태로 스쿨미투 전담팀이 생겼고 여기로 페미니스트들이 진출했다.
국지혜의 급진성은 남성 개개인을 겨냥하고 있을 뿐, 자본주의 국가기구나 자본주의 정치인들을 겨냥하고 있지는 않다. 전현직 간부들이 민주당 정치인들과 긴밀한 인천여성의전화에서 그가 활동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위와 같이 막무가내로 광주시교육청 편을 드는 페미니스트들만 있지는 않다. 권김현영, 강남순 교수 등 몇몇 페미니스트들이 광주시교육청을 비판하며 배이상헌 교사를 방어했다. 특히,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강남순 교수는 광주시교육청과 교육청을 두둔한 일부 여성단체들을 비판하며 8월 15일 페이스북에 인상 깊은 글(“페미니즘은 ‘파괴적 무기’가 아닌 ‘변혁적 도구’가 되어야 한다”)을 올렸다.
강남순 교수는 광주시교육청을 이렇게 비판했다. “어떤 ‘피해’와 ‘가해’인가에 대한 포괄적이고 엄밀한 검증과정이 축소화된 채, 교사에게 ‘가해자’ 표지를 붙이고 기계적으로 매뉴얼 적용을 했다.” 그리고 “‘가해자’ 표지가 붙여진 ‘직위해제’라는 것은 한 개인의 생존권 박탈의 문제만이 아니다. 육체적 생존권만이 아니라, 교사는 물론 가족의 사회적 생존권까지 박탈시키는 엄중한 조치이다.”
강 교수는 페미니즘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며, “자신의 입장만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입장을 ‘정죄’하고,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종류의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그가 “불필요한 싸움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불필요한 적을 양산하는 오류를 극소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비판적 성찰을 주문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 “‘맹목적 페미니즘’이 아닌, 지속적인 학습과 개방성을 가지고 자신은 물론 타자를 ‘설득’하여 함께 연대할 수 있도록 ‘동지’를 확장하는 ‘비판적 페미니즘들’의 확산[이 필요하다.]”
비판적 성찰
지난해 스쿨미투 운동은 학교 내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과 항의를 잘 보여 줬다. 이 운동의 취지는 정당하지만, 이 운동을 이끄는 남vs여 식 급진적 페미니즘 개념이 어떤 부수적 역효과를 낳았는가는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특히, 스쿨미투가 국가기관으로 흡수된 것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
학생들의 피해 호소들 중에는 정당한 것들이 많지만, 학교 자체가 워낙 권위주의적인 곳이므로 숨막히는 학교 생활에 대한 불만이 교사들로 향하기도 쉽다. 학생들의 진술을 당연히 경청해야 하지만, 그 진의가 무엇인지를 학생들의 ‘불쾌함’을 근거로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이면의 심정과 여러 맥락을 고려해 신중하게 따져 봐야 한다.
그러나 미투운동을 주도하는 개념과 실천인 ‘피해자 중심주의’는 객관적 실재와 무관하게 개인의 주관적 느낌만으로도 ‘성폭력’(대부분은 ‘성희롱’)으로 규정할 수 있게 한다. 학생들의 피해 호소의 다수가 수업 중 교사 발언을 두고 일어난 경우에 ‘피해자 중심주의’의 이런 난점은 더욱 증폭되기가 쉽다.
교육청이 사안의 진정한 성격이나 맥락을 따져 보지도 않고 교사의 발언을 성희롱으로 규정하며 징계 절차를 밟으면서 고초를 겪는 교사들이 생기고 있다.
앞서 지적한 배이상헌 교사의 올해 5월 발표문에 따르면, 스쿨미투 전수조사설문으로 여러 교사가 직위해제된 인천 모 학교의 여교사는 “여자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수업 중 발언이 여성 혐오 발언으로 고발됐다고 한다. 광주 D여고에서 직위해제 된 수학교사는 ‘통계’를 가르치며 ‘한국사회의 합계 출산율이 2.1이 되기 위해 여러분들이 2명의 아이를 낳고 몇 명은 3명을 낳아야 한다’라고 예를 들었는데, 이것도 혐오발언으로 고발됐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교사의 성적 비행이나 성차별이 관여되지 않았는데도 교육청에 신고되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교육청에 신고되면 모두 경찰에 수사의뢰하고 직위해제를 하는 교육 당국의 방침이다. 배이상헌 교사에 따르면, 위의 관련 교사들은 결국 경찰에서 무혐의 처리되었지만 교육청은 이들을 다시 공무원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성비위로 징계 절차를 밟았다고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이런 방침은 “학생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진정성은 흔히 의심스럽다. 문재인 정부는 입시 위주의 교육 정책을 유지하고 자사고 유지 등 불평등 해소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성평등을 위한 실질적 대책도 별로 없다. 그래서 반발이 생기기도 쉽다. 배이상헌 교사는 이렇게 지적했다. “잘못된 스쿨미투 행정은 오히려 교사-학생간 인격적 관계맺음과 소통을 포기할뿐더러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스쿨미투에 대한 백래시(backlash)를 유발시킬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점점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국가기구로 진출하고 있다. 페미니즘과 대중적 여성운동의 등장이 낳은 효과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기구가 페미니즘의 모순들을 이용해 자신의 정당성 전시에 이용하고 있음도 봐야 한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페미니스트의 국가기구 진출은 소수 중간계급 여성들에겐 출세의 길을 열어 주지만 노동계급과 서민층에 속하는 여성 대다수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리어 페미니스트들의 국가기구 진입 전략은 여성운동 내에서 엘리트주의와 온건화를 더욱 부추겨 여성운동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면도 있었다.
자본주의 위기의 시기에 자본주의 국가기구는 노동계급의 조건을 공격한다. 그때, 대중의 불만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자 종종 성범죄를 활용해 국가의 억압적 권한을 강화하고 정당화한다. 남성 전체나 개개인을 문제 삼는 급진적 페미니즘이 자본주의 국가기구로 흡수될 경우, 빈곤과 불평등을 양산하고 성차별적 구조와 관행을 지탱하는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계급적 본질을 은폐하고 그 정당성을 포장하는 데 이용되기 쉽다.
여성운동은 자본주의 국가기구에서 독립적이어야 하고, 작위적인 남 대 여의 이분법적인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 평범한 여성과 노동계급 남성이 차별에 맞서 연대해 투쟁하며 성평등 의식을 확산시켜 나아가야 한다. 국가기관의 강압이 아니라 이런 투쟁이 성장할 때 학교도 바뀌고 학생들의 자신감도 고양될 수 있다. 성폭력과 성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불평등이 구조화된 자본주의 사회와 이를 지탱하는 진정한 권력자들에 맞서는 운동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