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존치 법 개정안 입법예고:
문재인 정부, 낙태죄 폐지 염원을 끝내 배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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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문재인 정부 집권 초인 2017년부터 이미 정부가 낙태죄 폐지에 미온적 태도를 취하며 낙태죄를 유지하려 드는 것을 비판해 왔다(〈노동자 연대〉 229호 기사 ‘낙태죄 없애고 낙태 권리 보장하라’를 참고하시오). 집권 3년이 지난 문재인 정부는 결국 낙태죄 존치를 추진하며 낙태죄 폐지 염원을 배신하고 있다.
오늘(10월 7일) 문재인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남겨 두고 낙태 허용 범위만 일부 확대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낙태를 기간과 사유에 따라 허용한다. 임신 14주까지 낙태는 조건 없이 허용되지만, 임신 15~24주 이내에는 성범죄에 따른 임신이나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이때 국가 지정 기관에서 상담을 받은 뒤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거쳐야 한다. 임신 24주 이후 낙태는 지금처럼 금지된다. 형법상 낙태죄가 유지되므로 불법 낙태를 한 여성과 의사는 처벌 대상이 된다.
‘성평등 정부’가 되겠다고 했던 문재인 정부는 대중의 낙태죄 폐지 염원을 끝내 배신했다. “도로 낙태죄” 개정안에 여성 대중의 실망과 공분이 커지고 있다.
낙태를 여전히 “범죄”로 규정한 채 기간과 사유에 따라 처벌을 면제하는 정부안은 기만적이다. 낙태죄가 유지되면 낙태에 대한 낙인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법 개정 뒤 낙태 단속이 강화되면 처벌받는 여성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기간과 사유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것도 자의적이다. 여성이 14주 이내에 임신을 자각하고 낙태를 준비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임신 과정을 잘 모르는 청소년이나 생리가 불규칙한 여성 등은 임신을 뒤늦게 자각할 수 있다.
물론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경우 여성들은 가급적 빨리 낙태를 하려고 한다. 낙태의 95퍼센트는 임신 12주 이내에 이뤄진다. 그러나 여러 조건과 나름의 사정 때문에 얼마든지 낙태가 지연될 수 있다.
낙태 처벌 유지와 규제는 낙태를 줄이기는커녕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 뿐이다. 여성들은 안전하지 못한 불법 낙태 시술로 인해 위험에 처하고 비싼 비용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낙태의 위험성을 내세우며 ‘임신 14주 이내’ 허용 방안을 옹호한다. 지난해 헌법재판소 판결 당시 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이 “임신 14주 이내” 허용 방안의 근거로 임신 14주 이후 낙태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낙태가 여성에게 크게 위험해지는 것은 안전하지 못한 방식으로 낙태할 때이다. 낙태를 규제하고 처벌하면 오히려 음성적이고 안전하지 못한 낙태가 늘어나 여성들을 위험으로 내몬다.
위험한 낙태가 우려된다면, 여성이 되도록 빨리 낙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지 낙태 처벌을 유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낙태가 위험해서 금지한다면, ‘모성 사망’ 주요 요인인 출산도 금지해야 하는가?
사회‧경제적 사유 기준도 모호하고 자의적이다. 국가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낙태 규제를 강화하면 사회‧경제적 사유 범위가 더 좁아질 수도 있다.
상담‧숙려기간 의무화도 불필요하다. 독일에서는 상담할 때 ‘태아가 생명에 대한 독자적 권리를 가진다”며 출산을 권유한다. 상담‧숙려기간 의무 제도는 이미 낙태를 결심한 여성에게 죄책감만 심어 주고 낙태를 지연시킬 뿐이다.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다. 여성의 삶을 옥죄는 낙태죄를 당장 폐지하고, 여성이 원하면 낙태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조화?
문재인 정부는 낙태죄를 존치하는 형법 개정안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조화”시키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낙태죄 유지에 대한 어쭙잖은 정당화다. 태아의 생명권 논리는 낙태 금지론자들의 핵심적인 주장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터무니없게도 정부안이 “낙태 전면 합법화 방안”이라고 반발하며 ‘태아 생명권’이라는 궤변을 내세우며 정부안조차 더 후퇴시키려고 압박하고 있다.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헌재 결정에도 “태아는 모체와 별개의 독립된 인격체”라며 태아 생명권 논리를 지지한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태아는 모체에서 독립한 인격체가 결코 아니다. 태아는 모체의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모체에 완전히 종속돼 있는 태아에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취급하는 것이다.
태아 ‘독자 생존’ 논리도 설득력이 없다. 헌재는 태아 ‘독자 생존’ 기간을 “임신 22주 이후”,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 24주 이후”로 삼고 있다.
임신 후기로 갈수록 태아가 인간의 모습과 유사해지지만, ‘독자 생존’이 가능한 ‘인격체’는 아니다. 그때조차 특별한 의료 지원이 없으면 태아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임신 34주 이내 태아는 자가호흡도 불가능하다.
‘태아 생명권’ 논리는 낙태 금지와 규제를 합리화하고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태아 생명권 논리에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라
낙태 처벌과 규제는 노동계급과 서민층 여성, 청소년에게 특히 해악적이다. 낙태 규제는 계급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부유층 여성들은 낙태 규제 조처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낙태를 선택할 수 있지만, 노동계급과 서민층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낙태죄 폐지는 물론,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합법화가 필요하다. 기간과 사유 제한 폐지와 더불어, 평범한 여성들이 쉽고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도록 하는 합법화 조처가 중요하다. 여성이 원하면 언제든지 국가가 낙태약(미프진)과 낙태 시술을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낙태 유급 휴가도 보장돼야 한다.
정부는 낙태죄 관련 법률 개정안을 40일 후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낙태 관련 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은 더 커질 것이다. 낙태 반대 진영은 낙태 허용 범위를 최대한 좁히기 위해 감정적 선동과 거짓 주장을 뒤섞으며 정부를 압박할 것이다.
여성의 평등과 해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낱낱이 반박하고, 낙태 처벌과 규제를 유지하려는 문재인 정부에도 맞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일관되게 옹호하며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