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거세진 미얀마 군부의 공격 ─ 무장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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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버마) 군부 쿠데타와 그에 맞선 항쟁이 한 달을 넘긴 3월 둘째 주, 상황은 더한층 엄중해졌다.
3월 8일 새벽에 군부는 미얀마 주요 대도시 10여 곳에서 관공서·대형병원·전력국·기차역 등 기간 시설들을 기습 점거했다. 9일에는 미얀마 현지 저항 소식을 보도한 언론사 다섯 곳을 폐쇄했다. 청년들이 부상자 치료와 거리 시위 조직 거점으로 사용하는 대학 캠퍼스들을 폭력 침탈하기도 했다.
군부는 백주 대낮에 유혈낭자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현재까지 약 80여 명이 진압으로 사망했다.
인권 유린으로 악명 높은 군부대들이 공공연히 진압에 투입됐다. 그중에는 2017년 로힝야 무슬림 학살에 앞장선 33경보병사단, 2007년 반(反)독재 항쟁 때 시위대를 학살한 77경보병사단도 있다.
군부가 2월에 새로 조직한 시위 조직자 색출 전문 부대인 “보안대”는 영장도 없이 주택·건물들에 쳐들어가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군부는 쿠데타 직후 대중 저항에 부딪혀 정국을 온전히 장악하는 데에 실패해 왔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군부는 (선거 등) 사태 “정상화”의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을 바꾸려고 군부는 대응 수위를 높인 것이다.
이에 맞서는 미얀마 청년들의 투지는 놀랍다. 이들은 유혈 진압에도 매일 거리 시위를 벌이고, 몇몇 대도시에서는 지역 자경단을 조직해 폭력 침탈에 맞서고 있다.
이제 그런 투지를 조직적 정당방위에 쏟아야 한다.
한편, 3월 8일에 하루 총파업이 벌어졌다. 쿠데타 후 한 달 새 세 번째다.
이날도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상업 지구 대부분과 주요 기관들이 마비됐다. 양곤 지역 노동조합들의 연맹인 ‘양치오노동자협회’의 사무총장 모 수에는 이날 파업에 “공공부문 노동자 최소 55퍼센트가 참가했다” 하고 전했다.
양곤·만달레이 등 미얀마 대도시 네 곳에서는 “총파업위원회”가 이날 파업을 조직했다. 이 위원회는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 조직 운동인 ‘시민불복종행동’(CDM)과 지역 노동조합들이 주축이 된 것이다.
군경은 파업을 혹독하게 공격했다. 최루탄, 시위 진압용 고무탄, 섬광탄뿐 아니라 실탄도 발사해, 최소 2명이 사망했다. 불도저를 끌고 와 노동자들이 친 바리케이드를 밀어 버리기도 했다.
이런 공격에 맞서려면 노동자들도 파업을 엄호하기 위한 방어 조직에 나서야 한다. 그러면서 총파업을 무제한으로 계속하면 압력이 훨씬 더 커질 것이다.
힘
하지만 군부에 맞선 운동에 영향력이 큰 아웅산 수치와 민족민주동맹(NLD)은 대중 저항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생각이 없다.
3월 초 민족민주동맹은 지난해 총선에서 당선한 의원들을 규합해 일종의 임시 국회인 ‘연방의회대표자위원회’(CRPH)를 세웠다. 이 위원회의 주된 활동은 “국제 사회”, 즉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 정부들의 개입을 촉구하는 것이다.
민족민주동맹은 대중 저항을 자제시키려고 쿠데타 직후부터 줄곧 애써 왔다. 군부에 맞서 싸우는 것이 “국제 사회”의 개입에 도움이 안 되고 쿠데타 측에 “명분을 줄 우려”가 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미얀마 역사는 대중 운동 ‘자제’의 대가를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피로 치러 왔다는 점을 보여 준다.(관련 기사 본지 357호 ‘미얀마와 민주주의 투쟁’)
막상 민족민주동맹이 기대를 거는 “국제 사회”는 주판알 튕기기에 열심이다.
3월 5일에 미국 상무부는 미얀마 군부와 군부가 운영하는 대기업 미얀마경제공사(MEC)·미얀마경제지주회사(MEHL)를 제재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쿠데타를 저지른 이들에게 계속해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고압적 표현과는 달리 제재 수위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마저도, 전직 미국 상무부 수출 담당 차관이 밝혔듯 “교역량이 워낙 적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할 것”(〈로이터〉)이다.
미국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면 신속하게 무더기로 강력 제재를 퍼부어 온 이력에 비춰 보면, 온도차가 느껴지는 접근이다.
이는 미국이 지정학적 득실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미얀마 군부를 지나치게 압박하면 중국과 거리를 좁히게 될까 우려한다.
한편, 미얀마 군부가 중국과 한통속이라는 생각도 적잖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와 중국의 관계는 그보다 복잡하다. 이는 오늘날 미얀마 자본주의가 중국의 경제적·외교적 후원에 의존하던 시절보다 훨씬 덜 고립돼 있는 것과 연관 있다.(관련 기사 본지 355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첨예해진 미·중 갈등 속에서 바라본 미얀마 쿠데타’)
중국의 최우선 고려사항도 지정학적 이해관계다. 중국은 미얀마 군부뿐 아니라 아웅산 수치나 민족민주동맹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 왔다. 오히려 아웅산 수치가 중국과 지나치게 거리를 좁히려 하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이에 제동을 거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가디언〉)
이들 모두의 우선순위에 평범한 미얀마인들은 없다.
“국제 사회”가 미얀마인들에 민주주의를 선사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타이 사회주의자 자일스 자이 웅파콘의 지적처럼, 그런 기대에는 “아래로부터 대중 운동으로 독재자를 타도할 수 있다는 관점이 완전히 결여돼” 있다.(관련 기사 본지 355호 ‘미얀마: 군사 정권은 대중 운동으로 분쇄해야 한다’)
변화의 진정한 동력은 미얀마인들 자신의 단호한 대중 저항에 있다. 미얀마 저항 운동은 군부에 맞서 정당한 자기방어를 위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