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성 부정하는:
플랫폼종사자법 연내 강행하려는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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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이하 플랫폼종사자법)을 연내 통과시키려 한다.
11월 3일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우아한 형제들, 대리주부, 카카오모빌리티 등 주요 플랫폼 기업들과 만나서 플랫폼종사자법 처리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간 플랫폼 노동자들과 민주노총은 이 법 추진을 반대해 왔다. 플랫폼종사자법(민주당 장철민 대표발의)은 대다수 플랫폼 노동자들이 기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하고, 플랫폼 기업들의 사용자 책임을 면제해 주는 법이기 때문이다.
플랫폼종사자법이 ‘보호’ 조처라고 명시하고 있는 조항도 미미하다. 서면 계약서 제공, 부당한 손해 전가 금지, 차별적 처우 금지 등 조항이 있지만 이를 어겨도 벌금은 500만 원 수준이다.
게다가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조건과 임금을 통제하는 알고리즘 공개도 거부할 수 있다. 기업이 플랫폼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부당하게 계약을 변경할 때도 10~15일 전에 서면으로 알리면 그만이라고 인정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반발이 크자 장철민 의원은 지난달 보도자료를 냈다. 플랫폼종사자법이 통과되더라도 노동 관계 법령에 따른 노동자에 해당하면 그 법령을 우선 적용(‘유리의 원칙’)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별적인 법원 판결을 통해 노동자로 인정받은 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법원에서 노동자로 인정받기란 정말 쉽지 않다. 수년간 지난한 법적 다툼과 투쟁을 해야 한다. 노조 설립 필증을 얻어 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노조를 설립해도 사용자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행정소송 등으로 시간을 끄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플랫폼종사자법 수정안도 마찬가지
한편, 장철민 의원의 플랫폼종사자법안에 대한 반발이 크자, 노동부와 민주당에서도 수정안 논의 움직임이 있다.
노동부는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법 적용 대상인지 자문하는 기구를 둔다는 조항을 법안에 추가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이 플랫폼 노동자 중 일부만 추려내고, 나머지는 노동법 적용에서 제외시키는 애초 법안의 골자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자문 기구가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법적 구속력도 없어서 결국 재판까지 가야 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법 적용을 주장할 경우 이를 거부하려는 사용자에게 입증 책임을 부여하는 조항을 법안에 넣자는 제안도 나온다.
그간 노동운동 일각에서 플랫폼 노동자를 일단 모두 노동자로 간주한 후,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할 경우 그 입증 책임이 사용자에게 있다는 방식으로 법률이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민주당 일부의 주장은 이런 제기를 수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자가 먼저 노동법 적용을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노동위원회에든 법원에든 노동자성 판단을 신청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당연히 사용자 측도 입증에 나설 수밖에 없다.
즉, 플랫폼 노동자를 일단 노동자로 간주하는 것도 아니고, 플랫폼 노동자가 법적 제기를 해야 하는 현실을 개선해 주는 것도 아니다.
플랫폼 노동자도 고용된 노동자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지휘와 통제를 받고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 생계를 꾸려나간다는 점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별도의 법이 아니라 모두 노동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 법안을 비판하면서도 일단 열악한 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조건부 찬성을 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문제가 많은 법이 일단 제정되고 나면 이를 개선하기는 더 어렵다. 법안이 일단 통과된다면,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사용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공산이 크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만든 ‘비정규직 보호법’을 봐도 그렇다. 이 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살아남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년마다 해고되는 상황을 정당화해 주고 있다.
플랫폼종사자법안을 폐기하고,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예외 없이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