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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추방돼야 한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인종학살자 이스라엘과 협력 늘려 온 한국 정부와 기업들”을 읽으시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인종 학살을 지속하면서, 이스라엘의 만행에 대한 국제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추방 요구는 팔레스타인 저항에 연대하는 활동의 일환이다. 이스라엘 대사관 추방 운동의 필요성을 이스라엘 국가의 성격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자.

대다수 언론은 이번 전쟁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도한다. 하지만 이는 피상적인 시각일 뿐이다. 이 전쟁의 시작은 75년 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스라엘 국가의 본질적 성격과 만행을 폭로하고, 그 존립 정당성에 도전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조승진

이스라엘의 건국은 그 국가가 지향하는 목적과 성격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념은 시온주의다. 시온주의의 목표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단일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 점 때문에 이스라엘을 예외적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주인 없는 땅에 건설된 국가가 아니라, 선주민인 팔레스타인인들을 정착민들이 인종 청소하고 건설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외적 성격은 75년이 지나도록 바뀌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 국제앰네스티 같은 인권단체들도 각각 2021년과 2022년에, 이스라엘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치 체제를 취하고 있다는 오랜 비판에 공식적으로 합류했다.

이는 이스라엘 국가의 경제적 토대와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막강한 지원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이스라엘은 존재할 수도, 지속할 수도 없을 것이다. 초창기엔 영국이, 이후엔 미국이 자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중동에서 관철시키는 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삼았다. 이스라엘은 그 “경비견” 구실(이스라엘 신문 〈하아레츠〉의 표현)을 대가로 막대한 후원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경제의 주요 산업인 첨단 산업과 군수 산업 등은 특히 미국의 후원이 없다면 유지될 수 없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가 자국 노동계급의 충성심을 유지하기 위해 제공하는 주택, 의료, 교육 등 각종 공공 서비스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근원부터 현재까지를 돌아보면, 이스라엘이 식민 정착민 국가로서 예외적 구조를 띠고 있다고 봐야 한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 청소와 식민 점령은 일부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과도함 탓이기보다는 이스라엘 국가의 예외적 성격에서 기원한다고 봐야 한다.

이런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지극히 정당하다. 그리고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는 국제적으로 전례 없는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연대 행동이 한 달 넘게 벌어지고 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추방도 이런 운동의 일환이다. 보통, 대사관은 자국의 입장을 주재국에서 대표하는 외교 활동의 거점이자, 친이스라엘 입장을 주재국에서 키우기 위해 로비하는 곳이며, 군부가 보낸 국방무관이나 정보기관 스파이가 활동하는 곳이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에도 국방무관이 상주해, 한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협력에 관여한다.

지금 이스라엘 대사관은 자국의 가자 침공과 인종 학살을 옹호하는 프로파간다를 적극 퍼뜨리고 있다.

실제로 10월 11일 한국에서 첫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가 열리자, 이스라엘 대사관은 성명을 내어 집회 참가자들이 “반유대주의와 인종혐오를 넘어 IS(이슬람국가)와 같은 반인륜 범죄”에 동조했다는 얼토당토 않은 비방을 했다.

이스라엘 국가와 시온주의에 대한 비판을 ‘유대인 배척’이라는 거짓된 프레임을 씌워 재갈을 물리는 것은 이스라엘과 서구 우익의 상투적 수법이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국내 진보정당들이 대사관 인근에 게시한 현수막도 문제 삼으며 철거를 요구했다. 현수막에 적힌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는 구호가 인종 학살을 의미한다는 곡해를 했다.

그러나 이 구호는,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에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 무종교인 등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단일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이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대사관 추방은 국제적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인 BDS(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의 일부기도 하다. 국제적으로도 이런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집권 정당인 아프리카국민회의(ANC)는 이스라엘 대사관 폐쇄와 모든 외교 관계 단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일랜드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이스라엘 대사 추방을 요구하고 있고, 튀르키예 정부를 비롯한 여러 정부들은 자국 대사를 이스라엘에서 소환했다. 볼리비아와 벨리즈는 아예 이스라엘과 국교를 단절했다.

대부분의 석유와 에너지 자원을 걸프 지역의 아랍 국가들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 때문에 한국은 친서방 국가임에도 여전히 서방 국가들보다는 이스라엘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렇지만 한국 지배계급은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하마스의 “테러”를 비난한 반면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 아키바 토르는 한국 정부의 이스라엘 지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랍 국가들, 특히 걸프 왕정들이 최근 이스라엘과 수교를 하며 공식적으로 가까워진 것도 한국 지배자들의 이스라엘과의 교류 확대에 대한 부담도 덜어 줬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최근 10여 년 새 이스라엘과의 교역을 늘려 왔다. 아직 미국과 서방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무기 수출도 지난 10년 동안 3배로 늘었고 한·이 자유무역협정(FTA)도 체결했다. 이런 교역 증가는 이스라엘이 정상적인 교류를 해도 괜찮은 국가이고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스라엘 프로파간다의 확산을 돕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가의 본질적 성격과 그들이 벌이는 반인륜적 만행을 폭로하고, 이스라엘의 존립 정당성에 도전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이 맥락에서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추방 운동은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에 분노하고 팔레스타인에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하나의 초점이 될 수 있다.

BDS의 일부이기도 한 이스라엘 대사관 추방 요구는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를 고립시키고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궁극 목적에 기여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대학가에서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왜 추방돼야 할까’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매번 수십여 명이 참석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비록 아직 중동은 물론 많은 서구 나라들에 비해 매우 소규모이지만,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더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