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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 유예 추진

12월 7일 대법원은 고 김용균 씨 산재사망 책임 문제를 놓고 한국서부발전 전 대표 김병숙 등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2심 무죄 판결에 대한 유족의 상고를 기각한 것이다.

사용자에게 산업재해 책임을 묻는 것은 그만큼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대책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법원의 무죄 판결은 사용자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이 판결은 때마침 정부·여당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적용을 2년 더 미루려고 하는 시점에서 나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고 김용균 씨가 2018년 12월 사측의 안전 책임 방기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제정됐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 유예 추진과 대법원 판결은 맥을 같이한다. 이는 산업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법 적용을 5년이나 미룬다고?

중대재해처벌법은 대중의 공분 속에서 제정됐지만, 만들어질 때부터 사용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받았다. 사용자들을 지나치게 규제하고 비용 부담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당시 사용자들과 사용자 언론들의 아우성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약속한 민주당은 원안에서 처벌 수준과 범위를 대폭 완화했다. 게다가 사용자들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법의 시행을 1년 유예했다.

그도 모자라 국회는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시행 후 2년 유예]”고 추가로 단서를 달았다.

결국 정부의 전면 적용 연기 방침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을 5년이나 미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대 산업재해의 80.8퍼센트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고 김용균 씨 사망 관련 대법원 판결과 윤석열의 중대재해법 무력화 시도는 서로 연결돼 있다. 12월 9일 고 김용균 씨 5주기 추모제 ⓒ조승진

지난 10년간 산재 사망자만 1만 245명에 이른다. 법 시행을 3년이나 유예받은 기업들이 또다시 준비 부족과 비용 부담을 핑계로 대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

게다가 경찰·검찰·법원은 이미 수사 단계에서 많은 사용자들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상당히 ‘유예’해 주고 있다. “법 적용 대상 중대재해가 450건 이상이나 기소 30건 미만, 판결 10건 미만으로 법 집행 자체가 미미한 상황”이다(민주노총).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 유예는 주류 정치인들과 사용자들이 노동자의 건강과 목숨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를 드러낸 것이다.

기회주의

민주노총·한국노총 같은 노동조합뿐 아니라 정의당·진보당 등 원내 좌파 정당들도 개악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사실상 찬성으로 기울었다. 조건부 찬성(유예에 대한 정부의 사과, 유예 해당 기업들에 대한 정부 지원, 2년 뒤에는 반드시 시행하겠다는 사용자 단체의 약속)을 내세우지만, 이는 찬성을 위한 구실일 뿐이다.

여당이 조만간 당정 협의를 통해 50인 미만 사업장 안전 대책에 1조 원 이상을 투입하는 방안을 확정한다는 보도가 12월 25일 나왔다. 민주당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사용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놓고 “협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윤석열 정부의 내년 긴축 예산에도 합의해 줬다.

민주당 이재명 지도부는 당 안팎의 보수적(“통합”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는데, 이는 당의 지지율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총선 승리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본지 486호 “이낙연의 공세는 보수적 압박이다”를 보시오.)

지배자들은 국민의힘을 선호하지만, 제2선호 정당인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에도 대비해 그 당이 친사용자적이 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이다.

이재명 지도부는 개혁 염원층뿐 아니라 사용자들의 지지도 바라며 기회주의적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는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기업인들의 이익을 잘 대변해 지지를 얻고자 국민의힘과 경쟁하는 친자본주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대정부 투쟁

지난 11월 민주노총은 산재 사망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증가 추세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 등장 직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는데,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 산재 사고가 더 늘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법 자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산재 예방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이 중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 때 민주노총과 정의당 등의 개혁주의적 지도자들은 ‘내용이 좀 후퇴해도 법안 통과가 우선’이라는 근시안적이고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민주당의 원안 대폭 삭감을 받아들였다. 입법 자체를 중시하다가 불필요하게 타협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또한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 의욕적으로 대정부 연대 투쟁을 건설하지 않아 왔다.

지금 노동계 지도자들은 대부분 민주당의 조건부 찬성론을 비판하지만, 결국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보다는 국회에서 일단 민주당이 막아 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도 “민주당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법은 예정대로 시행된다. 국회 다수당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 것을 ... 촉구”하는 데 그치고 있다.

앞서 지적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대중 수준의 연대를 중시하고 투쟁을 전면화해 사용자 계급 전체를 압박하지 않으면, 조그만 개혁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