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와 팔레스타인’ 포럼:
팔레스타인 해방 전략을 토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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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시작된 지 꼭 6개월이 되는 4월 7일, ‘마르크스주의와 팔레스타인’ 포럼이 노동자연대 주최로 열렸다.
전쟁이 반년 동안이나 지속되면서 이스라엘의 야만성이 널리 드러나는 한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계속되는 학살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지, 팔레스타인 독립의 대안은 무엇인지를 두고 고민이 깊어진 듯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열린 이날 포럼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전망하면서 그것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주는 함의를 심도 있게 토론하는 자리였다. 발제자들은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발전시킨 제국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현재의 구체적 상황을 분석하고 해방 전략을 제시했다.
포럼이 열린 대형 강당을 가득 채운 참가자들은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서 활발하게 토론했다. 한국인뿐 아니라 이집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동참해 온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영어와 아랍어 통역이 제공돼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함께 토론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포럼의 첫 번째 주제는 ‘이스라엘 정치의 극우화와 인종학살 로드맵’이었다. 중동 전문지 《미들이스트 솔리대리티》의 박이랑 공동 편집자는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의 극우는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시온주의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만의 배타적 국가를 건설한다는 정치 운동이다.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인의 끊임없는 저항은 이스라엘에게 충돌을 계속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겨 줬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완전히 굴복시켜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극우는 이스라엘 정치에서 계속 강화돼 왔지만, 그들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박이랑 공동 편집자는 네타냐후에 반대하는 시위도 팔레스타인 점령과 억압 자체에 결코 도전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 사이의 갈등은 팔레스타인인을 어떻게 지배할 것이냐를 둘러싼 것일 뿐이다.
청중 토론에서도 한 아랍인 유학생이 “이스라엘에서는 시온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가 워낙 확고”하고, “식민주의자들에게서 식민주의의 대안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해 박수를 받았다.
두 번째 토론 주제는 ‘2000년대 이후 중동 질서의 변화’였다. 발제를 맡은 김영익 〈노동자 연대〉 기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배경에 2000년대 이후 중동에서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추세가 있다고 짚었다.
그런 속에서 미국은 중동 질서를 안정시키려고 이스라엘의 구실을 더 중시하는 한편, 아랍 동맹국들과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을 촉진하려 했다. 하마스의 지난해 10월 7일 공격은 이런 미국의 구상을 어그러뜨린 일이었다.
김영익 기자는 중동에서 서방 제국주의가 처한 모순과 위기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스라엘과 미국이 막강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청중 토론에서도 미국의 모순된 처지를 “상처 입은 야수”로 쉽고 명쾌하게 비유한 발언에 호응이 컸다. “상처 입은 야수”가 살아남으려고 더욱 악랄하고 극악무도해질 수 있음과 동시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약점이 있음도 함께 알아야 한다는 제기였다.
세 번째로 이원웅 〈노동자 연대〉 기자가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을 주제로 팔레스타인 해방의 대안과 전략에 대해 발제했다.
이원웅 기자는 ‘두 국가 방안’이 사기이며 이스라엘 국가를 해체하고 단일한 비종교적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이스라엘·미국과 협력하는 아랍 정권들에도 도전해야 하고, 따라서 팔레스타인 해방은 아랍의 노동자·빈민 대중의 저항과 긴밀히 얽혀 있다고 주장했다.
이원웅 기자는 아랍 국가들의 협력을 얻어 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전략을 추구하다가 실패한 파타의 전략을 비판적으로 살피고, 하마스가 10월 7일 공격을 계기로 큰 지지를 받고 있지만 파타의 노선을 계승하는 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각 주제마다 청중토론 시간에는 주장과 질문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건설하며 맞닥뜨린 여러 물음과 고민, 그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대안에 대한 중요한 쟁점도 제기됐다. 한 아랍인 유학생과 이집트인은 ‘두 국가 방안’이 일차적으로는 현실 가능한 대안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 안에는 팔레스타인 단일 국가에서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의 공존이 가능할지에 대한 물음도 포함돼 있었다.
또, 팔레스타인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중국이나 스페인, 유럽 연합에 기댈 수 있는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해체된 과정과 팔레스타인 해방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지 등 대안과 전략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해서 주변 아랍국에서의 혁명이 필수적이라는 맥락 속에서, 2011년 이집트 혁명의 경험을 돌아보는 토론도 이뤄졌다. 이집트 혁명이 열어 놓은 해방의 가능성, 이집트 혁명으로 집권한 무슬림형제단 무르시 정부의 개혁주의적 한계, 세속주의를 앞세운 군부의 반혁명에서 무르시 정부를 방어하지 않았던 이집트 좌파의 약점을 살펴보는 발언이 있었다.
이집트 혁명을 직접 경험하고 이후 군부의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온 이집트인 난민의 발언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가지지구 봉쇄는 시온주의 국가만이 아니라 이집트 정부에 의해서도 이뤄지고 있다”며, 최근 이집트 정부가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구호물품 트럭 한 대당 5000달러를 받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집트에서 다시 한번 혁명이 일어나 성공하길 바랍니다”는 말에 모두 공감하며 큰 박수를 보냈다.
쉬는 시간에도 내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이어 가거나, 복도에 마련된 부스에서 팔레스타인, 이슬람, 제국주의에 관련된 다양한 서적을 구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간 소책자 《팔레스타인: 저항, 혁명, 해방을 향한 투쟁》은 한국어와 영어판이 최근 발간돼 참가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날 포럼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건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무기를 제공하고 해방의 전략에 대한 고민을 더 심화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지속과 확대를 다짐하며 포럼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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