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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유럽 기성 정치의 위기 심화로 득을 보고 있는 극우
그러나 극우의 득세는 필연적이지는 않다

마크롱의 신자유주의·인종차별 정책은 국민연합을 더 강화시켰다. 국민연합의 지도자 마린 르펜 ⓒ출처 Marine Le Pen (페이스북)

영국의 극우 정당인 영국개혁당의 지도자 나이절 퍼라지의 역설은 그가 유럽 대륙을 싫어하면서도 영국 정치를 그곳의 정치처럼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누가 했던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지금 상황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현 보수당 정부의 위기를 이용해 퍼라지는 보수당을 접수하거나 대체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극우가 정치 무대의 한복판에 서게 되는 과정은 유럽 대륙에서 훨씬 더 진척됐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보라.

독일에서는 집권당인 독일 사회민주당(SDP)이 중도우파인 기민·기사연합(CDU/CSU)과 극우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밀려 3위에 머물렀고, 이탈리아에서는 총리 조르자 멜로니의 파시스트 정당인 이탈리아 형제당이 선두를 달렸다. 이것만으로도 뉴스거리는 충분하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은 실로 경악스럽다. 마린 르펜의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연합(RN)이 31퍼센트를 득표해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중도우파 연합은 14.6퍼센트를 득표하는 데 그쳤고, 마크롱은 이에 대응해 조기 총선을 발표했다.

마르크스가 남긴 가장 빼어난 저작의 하나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다. 신랄한 조소와 비판이 담긴이 이 책에서 마르크스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1848년 혁명의 패배를 이용해 황제(나폴레옹 3세)로 등극한 과정을 분석한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 “나는 ⋯ 프랑스의 계급 투쟁이 낳은 상황과 세력 균형 덕분에 어떻게 기괴하고 별 볼 일 없는 자가 영웅 노릇을 할 수 있게 됐는지를 보여 주려 했다.” 마르크스는 기업주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투쟁이 교착 상태에 빠진 덕분에 루이 보나파르트가 역사의 무대에서 영웅 행세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이런 우스꽝스런 ‘영웅’의 더 우스꽝스러운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분에 넘치는 칭송을 받아 온 이 기업 경영자는 전통적인 중도좌파 정당들과 중도우파 정당들을 약화시키고 르펜이 아니라는 이유로 두 번이나 가까스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마크롱을 수혜자로 만든 상황은 유럽 전반의 현상이기도 하다. 수십 년간의 신자유주의는 정당 체계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세계 금융 위기에 따른 긴축과 이후의 팬데믹, 물가 급등은 이 과정을 더 가속시켰다.

지난해 마크롱은 대중 파업 물결의 뜻을 거스르고 의회 다수의 승인을 건너뛴 채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을 강행해 이 과정을 더 심화시켰다. 국민연합의 전진에 대응해 마크롱은 정당 체계의 파편화를 더 심화시켜서 자신이 중재자를 자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는 듯하다.

그러나 마크롱의 도박은 실패하고 있는 듯하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연합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3분의 1을 득표할 것이다. 주요 중도우파 정당인 공화당은 당대표가 르펜과의 동맹을 추진하면서 벌어진 한바탕의 소극과 분열로 붕괴했다. 공화당에게 이는 굴욕적인 운명이 아닐 수 없다. 공화당은 [자신을 레지스탕스의 상징적 인물로 내세운] 드골 장군의 1958년 제5공화국 수립을 뒷받침하기 위해 결성된 신공화국연합(UNR)으로 시작된 정당이기 때문이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럽 자본주의 정치를 지탱해 온 나머지 기둥들도 비슷한 붕괴를 겪고 있다. 독일 사민당과 영국 보수당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등장한 최초의 근대적 대중 정당들이다. 두 당 모두 현재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탈리아의 멜로니는 1990년대에 이탈리아 “제1공화국”과 그것을 지탱하던 기독교민주당과 공산당이 붕괴하면서 득을 본 우익 정치인들 중 가장 최근(그리고 가장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그렇다고 극우의 전진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마크롱의 책략은 신민중전선의 결성으로 왼쪽으로부터 타격을 입었다. 비록 그 선거 연합은 깨지기 쉽고 첨예하게 분열돼 있지만 말이다.

물론 영국 노동당은 보수당 와해의 주된 수혜자가 될 것이다. 노동당은 여전히 노동조합과 지방 정부에 어느 정도 사회적 기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도 기반이 잠식되어 약화됐다. 최근에는 스타머가 당내 좌파를 쫓아내고 이스라엘을 지지함으로써 이 과정을 더 심화시켰다. 여전히 노동당은 여론 조사에서 보수당을 크게 앞서고 있지만, 두 당 모두 군소 정당들에게 지지를 빼앗기고 있다. 승자독식 선거 제도의 조화 덕에 스타머는 비교적 적은 표를 얻고도 큰 격차로 다수 의석을 차지할 수도 있다.

체제가 대체로 더 안정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라면 기성 자본주의 정치 세력의 약화는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구 온난화와 제국주의 경쟁의 격화는 위태로운 정당 구조들에 또 다른 타격을 가할 공산이 크다. 중요한 물음은 누가 거기서 정치적으로 득을 볼 것이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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