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는 어떻게 떠올랐고, 어떻게 이용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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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가짜뉴스와 “진짜 뉴스”의 공통점과 차이점, 가짜뉴스가 부상한 배경을 다룬다. 2017년 4월 발표됐고 주로 미국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오늘날 한국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2016년] 미국 대선을 계기로 “가짜뉴스”(진짜 뉴스처럼 보이도록 만든 기사)에 대한 우려가 부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썼다. “가짜뉴스의 세례 … 음모론, 편견, 괴롭힘과 증오 선동이 인터넷 미디어에 넘쳐 난다. … 상당수는 힐러리 클린턴의 신뢰를 깎고 그녀의 경쟁자[도널드 트럼프]를 추켜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널리 알려진 한 가짜뉴스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덴버 가디언〉이라는 언론의 이름으로 쓰여진 것으로 클린턴을 조사하던 FBI 요원이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고 “보도”한다. 전임 대통령 오바마는 이를 두고 “난센스의 모래 폭풍”이라고 했다.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거나 클린턴이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에 무기를 팔았다 등의 가짜뉴스도 있다.
인터넷 뉴스 웹사이트인 〈버즈피드〉는 “극도로 당파적인” 페이스북 페이지 6곳의 게시글 2800개를 분석한 결과를 이렇게 밝혔다. “수백만 명이 극도로 당파적인 정치 페이지와 웹사이트들을 팔로우하고 그곳에서 가짜뉴스나 진실을 오도하는 뉴스를 얻는다.” [세계적 여론조사 업체] 퓨 리서치는 페이스북이 “미국인 절반 이상이 뉴스를 접하는 창구”가 됐을 것이라고 시사한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미심쩍은 승리를 거두자 (총득표에서 트럼프는 클린턴보다 뒤졌다) 어쩌면 가짜뉴스 같은 요인들이 결정적이었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페이스북 사장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문제라는 주장을 전면 부인하지만 수세에 몰리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의 수익 모델을 정밀 조사하자는 얘기가 나올까 봐 우려하는 듯하다”고 썼다. 유럽연합은 페이스북에게 “가짜뉴스”를 더 엄격하게 다루라고 촉구했고, 독일 정부는 가짜뉴스 전파에 막대한 과징금을 물리자고 제안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는 모럴 패닉[1] 양상마저 띤다. 애플 사장 팀 쿡은 가짜뉴스가 “사람들의 정신을 죽어가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가짜뉴스를 “질병”이자 “배변성애” 비슷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영국] 국회의원들은 조사위원회를 꾸렸고, OECD는 가짜뉴스에 대한 내용을 교육 과정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여기에 뛰어들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이면 아무데나 “가짜뉴스”라는 딱지를 붙여서(“CNN, 아주 가짜뉴스다. BBC도 만만찮다”) 논의를 진흙탕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서 이 난장판의 모든 측면을 다룰 순 없지만 가짜뉴스가 새롭지 않다는 점을 짚는 것은 중요하다. ‘낚시성’ 제목에다가 그것과 전혀 관련성 없는 “뉴스”들을 모아 놓은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더 의미심장한 사례로 2003년에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한 것을 생각해 보라. 언론들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거짓 주장을 대대적으로 반복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동상이 대중적 환호 속에서 끌어내려진 것처럼 보이는 영상과 사진이 보도됐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트럼프가 취임식에 오지도 않았던 대규모 환영 군중을 운운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쪽짜리” 진실들
이런 일들은 전혀 이례적이지 않다. 1946년 영국 노동당 법무장관은 “신문 소유주들이 … 사실을 왜곡하고 뉴스를 은폐한다”고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1년 보수당 총리 스탠리 볼드윈은 언론 재벌들인 비버브룩(〈데일리 익스프레스〉)과 로서미어(〈데일리메일〉)를 “프로파간다 기술자들”이라고 묘사했다. 볼드윈의 말은 마치 요즘에 한 말 같다. “노골적인 거짓말, 그릇된 설명, 반쪽짜리 진실들, 발언자의 취지를 왜곡하거나 짓누르는 게 그들의 방식이다.”
뉴스는 상품이고 명품을 베낀 “짝퉁” 같은 가짜 상품들도 “진품” 못지 않게 자본주의적 산물이다. 즉, 이런 것들도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되고 다른 생산자와의 경쟁 속에서 만들어진다. 가짜뉴스는 인터넷 광고로 수익을 낸다. 그러나 주류 언론과 마찬가지로 가짜뉴스도 이윤 때문에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뉴스”는 이윤 창출 이상의 구실을 한다.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같은 자들이 영향력을 얻기 위해 (〈타임〉처럼) 사업상의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언론은 더 광범한 이데올로기적 구실을 한다. 마르크스는 당시 언론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음에도 이 점을 포착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시대에서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뉴스”는 체제를 정당화하고 이윤과 경쟁, 거기에 수반되는 각종 제도와 기구들이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노엄 촘스키와 에드워드 허먼의 책 《만들어진 동의》[국역: 《여론조작 ― 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는 현대 언론의 구실을 이렇게 설명한다. “더 광범한 사회의 제도적 구조물과 일체감을 갖도록 만드는 가치관, 신념, 행동 양식들로 오락과 정보를 제공하고 이것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을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한다. 지금의 세계는 부가 집중돼 있고 계급적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하기 때문에 … 체계적인 프로파간다가 필요하다.”
그러나 “뉴스”는 언뜻 보기에 프로파간다처럼 보이지 않으며 “언론은 서로 경쟁하고 주기적으로 정부와 기업의 비리를 폭로·공격하면서 사상의 자유 대변인을 자임한다.” 이런 일이 “어찌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지 언론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객관적’으로 뉴스 거리를 선택하고 해석한다고 믿는다.”
가짜뉴스란 이런 언론계의 관습을 지키지 않는 프로파간다라고 보는 게 가장 정확할 것이다.
오늘날 가짜뉴스가 부상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요인은 신문 산업의 위기다. 영국에서는 2005~2015년 사이 신문 산업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전국적 신문 7곳이 지난해에만 발행부수를 10퍼센트 이상 줄였다. 광고 지출은 늘고 있지만 그 돈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으로 간다. 이들은 세계 온라인 광고 산업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2020년에 80퍼센트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요인은 주류 정치에 대한 불신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이라크 전쟁과 그 실패, 2008~2009년의 경제 위기(금융 추락, 은행 구제, 경기 후퇴, 지배 엘리트에게는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게 하는 긴축)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발된 각종 거짓말이 핵심이다. 여기에 더해 지배계급은 자본주의 현 상태와 처방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셋째 요인은 1990년대 중엽에 빌 클린턴 정부가 인터넷을 시장에 넘겨준 데 있다. 그 결과,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신생 IT 기술과 결합했다. SNS, 알고리듬, 자동화 시스템(매크로), 개인정보를 이용한 각종 온라인 광고 기법의 발달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으로 “심리전”을 전개할 수 있게 됐다. 한 사례를 들자면, 미국 대선 관련 트윗의 5분의 1은 경합주에 사는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겨냥한 매크로로 생성된 것들이었다.
억만장자들
넷째 요인은 미국에서 억만장자들과 기타 엘리트들이 화석연료 대부호인 코크 형제를 중심으로 세력을 결성한 것이다. 제인 메이어 기자는 책 《다크 머니》[국역:《다크 머니 ― 자본은 어떻게 정치를 장악하는가》]에서 “미국의 가장 으리으리한 갑부, 우익 언론 거물, 보수적 정치인, 작가, 광고 업자들”과 동맹을 맺은 헤지펀드, 주류·석유·석탄 억만장자 집단의 탄생과 활동을 구체적으로 폭로한다.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라는 공통점 외에도 연방정부의 구실을 축소하고, 월스트리트 규제에 반대하고, 미국 환경보호청을 약화시키고, 오바마케어를 없애야 한다는 신념으로 뭉쳐 있다. 트럼프가 당선한 해에 코크 형제는 이런 목표를 내걸고 8억 8900만 달러[1조 원]를 모았다고 메이어는 전한다. 이 집단의 구성원 중에는 헤지펀드와 프로그램 주식 투자로 억만장자가 된 루퍼트 머서가 있는데 그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인터넷 “언론” 〈브레이트바트〉에 돈을 댄다. 〈브레이트바트〉는 가짜뉴스 난장판의 심장부에 있는 매체다. 머서는 개인으로서 트럼프에게 가장 돈을 많이 댄 인물이기도 했다.
〈브레이트바트〉의 운영자 스티브 배넌은 전직 해군 장교이자 투자은행 출신으로, 머서를 〈브레이트바트〉에 기용했고 머서는 다시 배넌을 트럼프 선본으로 끌어들였다.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이 그를 “백인 우월주의자”라고 지목하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음에도, 배넌은 이제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내고 있다. [배넌은 2017년 8월 백악관을 떠났다.]
〈브레이트바트〉가 순전히 가짜뉴스만 보도한다고 봐선 안 된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브레이트바트〉가 운영한 블로그 “큰 정부”는 민주당 의원 앤서니 위너(클린턴 측근의 남편)가 인터넷으로 자신의 성기 사진을 여성들에게 보낸 사실을 가장 먼저 폭로했다. 그러나 〈브레이트바트〉의 정치와 그들의 운영방식은 뚜렷하다.
2014년에 생긴 〈브레이트바트 런던〉은 극우 정당인 영국독립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라힘 카삼이 운영하고 있다. 1월에 독일 〈브레이트바트〉는 도르트문트에서 이주민 1000명이 아이시스와 알카에다 깃발을 흔들며 경찰을 공격하고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에 불을 질렀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새해 그믐날 불꽃놀이 중 [공사 중이던] 인근 교회의 비계에 작은 화재가 난 것이었다. 그 교회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소식은 SNS에서 광범하게 공유된 후 언론에 보도됐다.
SNS
가짜뉴스 시장에는 또 다른 플레이어들이 있다. 페이스북, 구글을 통한 광고, 우파적 편집증과 인종차별에 기대서 상업적 성공을 노리는 인터넷 “기업가들”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런 부류의 미국 기업 ‘리버티 얼라이언스’의 경영자 브랜든 발로라니를 취재했다. SNS상의 우익 청중을 겨냥해 가짜뉴스를 만들고 배포하는 발로라니는 처음에 “티파티[2] 티셔츠나 칼, ‘낙태 반대, 신을 믿어라, 총기 자유’ 같은 자동차 스티커를 판매하던 처지에서 지금은 페이스북 페이지 176개를 운영하고 500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인물로 변신했다.” 발로라니는 40명이 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고용하고 있고 “그의 회사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100여 곳의 접속자 중 60퍼센트”는 페이스북에서 유입된다.
〈워싱턴 포스트〉는 또 다른 “페이스북 가짜뉴스 제국의 기획자” 폴 호너를 취재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그냥 덮어놓고 계속 공유합니다. 아무도 팩트 체크를 하지 않아요.” 가짜뉴스 웹사이트 〈덴버 가디언〉의 배후 ‘디스인포미디어’를 운영하는 저스틴 콜러도 이런 부류다. 이들뿐 아니라 [남유럽 소국] 마케도니아의 벨레스 같은 소도시에는 미국 정치 웹사이트가 100개 이상 [서류상] 본부를 두고 있다.(〈파이낸셜 타임스〉)
다행히도 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 좀더 유용한 연구들도 있다. 미국의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2015년 4월 1일부터 2016년 11월 미국 대선일 사이에 공개된 기사 125만 개를 조사하고, 〈브레이트바트〉, 〈인포워즈〉[‘정보 전쟁’], 〈트루스피드〉[‘진실의 창구’], 〈엔딩더페드〉[‘연준 죽이기’] 같은 웹사이트들을 살펴본 뒤 그 기사들을 둘러싼 하이퍼링크와 SNS 패턴을 연구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우익 언론 네트워크는 〈브레이트바트〉를 중심으로 외부와 단절된 독자적인 언론 체제를 구축했고 SNS를 극도로 당파적인 관점을 퍼뜨리는 중추로 삼고 있다. 이들 친트럼프 미디어의 권역은 더 광범한 언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광범한 언론은 우파 미디어 권역이 선정한 쟁점, 즉 이주민 문제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반대 언론의 정합성과 전문성에 대한 공격도 중심적인 쟁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파 언론들은 트럼프의 경선 경쟁자들과 머독의 우익 TV 방송국 〈폭스뉴스〉를 공격했다. 〈브레이트바트〉의 다음 기사 제목 2개를 보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트럼프의 경선 경쟁자] 루비오와 결탁해서 불법 외국인들을 사면케한 폭스뉴스,’ ‘트럼프에 반대하고 히틀러를 따르는 무슬림 옹호자를 구글과 폭스TV가 다음번 공화당 TV 토론회에 부르기로 하다.’
“이런 소식을 가짜뉴스라고 기각해선 안 된다. 이들의 힘은 익숙하게 반복되는 거짓말, 편집증적인 논리, 일관된 정치적 방향과 검증 가능한 사실들을 결합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것들은 역(逆)정보[3]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
스탠퍼드 경제정책 연구소의 경제학자 메튜 겐츠커우와 뉴욕대의 헌트 앨컷은 소셜미디어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선거에서 작은 구실”만을 했고 가짜뉴스의 구실은 더 작았다고 말한다. 이들은 SNS를 통한 뉴스 웹사이트 방문과 SNS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가짜뉴스를 연구했다. 선거 후 유권자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했다. 이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뉴스”를 보여 줬는데 일부는 진짜 뉴스, 일부는 선거 기간 동안 유포된 가짜뉴스, 또 일부는 설문을 위해 만든 유포된 적 없는 가짜뉴스였다. 15퍼센트만이 자신이 본 가짜뉴스를 기억해 냈고, 7.9퍼센트만이 그것을 보고 믿었다고 했다. 유포된 적이 없는 가짜뉴스의 경우에도 기억이 난다는 응답자는 14퍼센트였고 그것을 믿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8.3퍼센트였다.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가장 널리 퍼진 가짜뉴스들도 미국인들 가운데 아주 작은 일부만이 봤고 그들 가운데 절반만이 이를 믿었다.”
역정보
영국 설문조사 단체 유고브는 영국 공영방송국 〈채널4〉의 의뢰로 “사실을 전달한다고 주장하는 역정보”의 영향력을 조사했다. 성인 1684명을 상대로 기사 6개를 보여 줬는데 그중 셋은 가짜였다. 가짜뉴스의 헤드라인은 ‘경제 성장 위해 이주민들에게 8500파운드[1300만 원] 지원’, ‘트럼프, 출국 희망자에게 아프리카나·멕시코 편도 티켓 제공하기로’ 같은 것들이었다. 가짜뉴스를 모두 찾아낸 이들은 4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가짜뉴스를 우려했고, 3분의 2는 SNS가 가짜뉴스 문제에 충분히 대처하지 않고 있다고 봤다. 또, 46퍼센트(18~24세 연령대에서는 더 높은 69퍼센트)는 사실 검증 웹사이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답했다.
가짜뉴스는 트럼프가 올라탄 포퓰리즘 물결과 잘 어울리고, 어느 정도 그런 물결의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짜뉴스는 현대 자본주의 위기의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가짜뉴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가짜뉴스를 둘러싼 위선과 근시안적 태도를 지적하고, 가짜뉴스가 지배계급에게 안기는 문제(비록 일부 엘리트들은 나름의 목적을 위해 가짜뉴스를 이용하지만)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가짜뉴스 문제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가짜뉴스는 독성이 있다. 증오를 퍼뜨리려 하는 자들이 애용하는 수단이고 체제에 도전하는 이들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모든 “뉴스”가 프로파간다라고 말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히틀러의 선전부 장관 괴벨스와 영국의 자유주의 신문 〈가디언〉 사이에는 만리장성만큼의 차이가 있다.
언론의 모순적 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은 자본주의적 가치를 고스란히 반영할 수 없다. 그들은 착취와 차별에 기초한 이 체제의 실상과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때때로 이 세계가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폭로가 나오기도 한다. 루퍼트 머독의 신문[〈뉴스오브더월드〉]이 불법 도청을 하고 경찰과 공모한 일이 폭로된 것이나, 조세 회피처를 폭로한 파나마페이퍼, 국회의원들의 세비 스캔들 폭로 등이 그런 사례다. 이런 폭로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70년대 초에는 미국 대통령 닉슨을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있었고, 1968년 베트남 미라이 학살에 대한 폭로는 반전 운동을 부채질했다. 이런 사례들은 주류 언론의 한계 안에서도 끈질긴 저널리즘이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트럼프가 “가짜뉴스,” “부정직한 언론”을 공격하는 것은 그의 사업과 정권에 대한 조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언론의 검증 능력은 트럼프 몰락에서 일정한 기여를 할 것이다. 트럼프가 더 커다란 반대에 부딪힐수록 내부 폭로와 양심선언이 더 많이 나올 것이고, 탐사보도 저널리즘이 활동할 여지도 더 커질 것이며 그만큼 트럼프의 몰락도 앞당겨질 것이다.
[1] 특정한 행동이나 소수의 사람들 탓에 사회 전체가 위험에 처했다고 과장되게 선동하며 공포심을 광범하게 부추기는 것.
[2] 공화당 내 강경 우파 조류로 인종차별과 이주민 반대, 오바마케어 반대, 재정적자 축소를 요구한다. 일부 대자본의 후원 하에 2009년 부상했다.
[3] 독자를 오도하려는 목적에서 살포되는 거짓이나 부정확한 정보. 고의성이 있다는 점에서 ‘오보’와는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