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을 파괴한 후에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하는 서방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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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에서 서방 지도자들이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여부를 놓고 다투는 동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거침없이 인종 학살을 강행했다.
이스라엘의 탱크가 가자시티 안으로 깊숙이 밀고 들어가 9월 25일 목요일 하루만에 43명을 학살했다. 그 전날 이스라엘은 적어도 64명을 죽였는데, 그중 아홉 명은 구호품을 받으려 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거듭된 폭격으로 폐허가 된 알시파 병원 근처로 이스라엘 탱크들이 집결했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현재 가자지구에 갇힌 처지인 이빗삼 씨는 본지에 이렇게 전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대피소도, 존엄도, 생존 수단도 없어요.”
이빗삼 씨는 이스라엘이 일으킨 “파괴”와 “대규모 피란”으로 애끊는 심경을 토로했다.
“저희 민족과 가족 친지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요. 그들을 도울 수도, 제 한 몸 건사할 수도 없어서 너무도 참담합니다.”
이스라엘의 테러가 계속되는 동안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뉴욕시에서 유엔 총회를 하고 있었다. 첫 날인 9월 22일 월요일 팔레스타인 문제가 회의의 핵심 쟁점이었다. 각국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에 맥빠진 비판을 늘어놓았고,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총회에서 이스라엘의 전쟁을 “즉각” 멈춰야 한다며 이렇게 연설했다.
“끝을 봐야 한다. 평화 협상을 해야 한다. 인질을 돌려받아야 한다. …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하마스의 몸값 요구에 굴복할 게 아니라 ‘인질 즉각 석방’이라는 하나의 메시지로 단결해야 한다.”
트럼프는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줄곧 말해 왔지만 만행을 멈추도록 이스라엘을 압박하지도 않고, 휴전을 방해하지 말라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하마스에 요구하기만 했다. 그런 수법으로 트럼프는 평화 중재자를 자처하면서도 미국 제국주의의 경비견이자 갈수록 더 많은 규탄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을 계속 지원할 수 있었다.
이번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인정하겠다고 밝힌 국가가 늘었다. 9월 셋째 주에 영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가 국가 지위 인정을 발표했고, 그에 앞서 프랑스·모나코·룩셈부르크·몰타·안도라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응해 트럼프는 이스라엘을 확고하게 지지하며,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 인정이 “테러에 상을 주는 것”이라는 이스라엘 정치인들과 똑같은 입장을 취했다.
“유엔의 일부는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려 한다. 만행을 저지른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에게 과분한 보상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인정이라는 상징적 조처는 이스라엘의 만행에 직면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지를 전혀 바꾸지 못할 것이다. 이빗삼 씨는 이렇게 지적했다. “다른 상황에서 그랬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뻤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마어마한 손실과 파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체가 남아나지 않게 된 마당에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인정하겠다는 거예요. 저희는 나라를 잃은 고통과 더불어 씁쓸함을 느낍니다.”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이 잇따라 발표되는 와중에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이집트·튀르키예·인도네시아·파키스탄 지도자들과 별도 회담을 했다.
트럼프는 이 국가들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나라들”이라며 그들과의 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그 회의에서 밝힌 계획의 세부는 불분명하다. 그간 트럼프는 하마스가 해체돼야 한다는 이스라엘과 같은 입장을 고수해 왔다.
서방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랍 지도자들도 말로는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규탄하지만 행동은 미적거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튀르키예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실천하다 미국과 갈등이 커질 위험이 있다고 본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과 나란히 공존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테러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기다. 게다가 무기 금수 같은 실질적 조처가 뒤따르지 않으면 이는 빈껍데기만도 못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이 낳은 참상과 굳건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서방 지도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은 결코 유엔 회의장에서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방 지도자들이 압박에 굴복하는 것은 운동의 압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빗삼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굳세지 못하면 저 자신뿐 아니라 저희의 대의에도 도움이 안 될 거예요. 별다른 도리 없이 굳건하고 꿋꿋해야 하는 겁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팔레스타인인일 수밖에 없어요. 제 존재가 저들에게 위협이 된다 해도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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