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윤석열 정부가 강은주 전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성명현 경남진보연합 정책위원장, 김은호 518민족통일학교 상임운영위원장 등 활동가 6명의 자택과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경남에 사는 활동가 4명, 제주 1명, 서울 1명 등 압수수색은 전국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국정원과 경찰은 이 활동가들에게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과 회합·통신 혐의를 씌웠다. 영장에는 ‘자통민중전위’라는 단체명이 나와 있었다고 한다. 사건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은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진보 활동가들에 대한 보안법 탄압을 규탄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에 따르면, 국정원은 적어도 5년 전부터 이들을 사찰한 것으로 보인다. 5년이 넘은 해외여행 경력을 근거로 북한 당국과 “회합·통신”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민변 국가보안법폐지TF 팀장인 장경욱 변호사는 사찰과 압수수색 모두 “초법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국정원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개인 패스워드를 도용해 외국 이메일 서비스 계정을 열어 봤다고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은 이번 사건을 윤석열 정부의 “정권 위기 탈출용 공안몰이”로 규정했다.
황철하 6.15남측위 경남본부 상임대표는 경남 활동가들이 ‘윤석열 심판 경남 대책위’를 만들어 활동한 것과 보안법 탄압이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압수수색을 당한 강은주 전 위원장은 말기 암 환자로 제대로 거동하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그런데 국정원과 경찰은 막무가내로 그의 집으로 밀고 들어가 무려 16시간 동안 압수수색을 강행했고, 이를 견디다 못한 강 전 위원장은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
경찰은 진보 활동가들을 압수수색하는 동시에 진보 연구자를 체포했다. 정대일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실장이 같은 날(9일) 오전 수원 자택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앞서 지난 7월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는 그의 자택과 통일시대연구원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김일성 회고록 제작·판매에 관여해 국가보안법상 7조를 위반했다는 혐의였다.
이처럼 보안 경찰은 김일성 회고록 출판 관련자들을 집요하게 수사하며 괴롭히고 있다. 출판 자체를 가로막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것이다.
지금 이태원 참사에 대한 대중의 슬픔과 분노가 크고, 그 참사의 최종 책임이 대통령 윤석열에게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로 이런 때에 윤석열 정부는 국가보안법 탄압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이태원 참사 전부터 이미 윤석열은 법질서를 앞세운 권위주의적 수단들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었다. 노동자 등 서민층의 삶을 공격하면서 말이다. ‘마약과의 전쟁’ 운운하며 경찰력을 강화하고, ‘불온한’ 책을 내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를 보안법으로 탄압하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직후 정보·보안 경찰이 유가족과 시민단체, 좌파 단체들을 사찰한 일도 폭로됐다.
지금의 보안법 탄압도 이런 맥락 속에 벌어지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와 연결해서 안보 문제를 부각해 이태원 참사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정부는 이번에도 북한 당국과의 ‘연계’를 문제 삼지만, 국가보안법의 칼날이 진정으로 겨누는 것은 국내의 정치적 반대자와 운동이다.
진보 활동가와 연구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를 규탄한다. 국가보안법 탄압 중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