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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
세상이 “엿같은” 청년들을 위한 마르크스

언제부터 ‘청년’과 ‘미래’가 이렇게 암담한 느낌의 단어가 됐을까?

밀레니얼(현재 20~30대 청년)의 곤궁한 삶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서구든 한국이든 많은 청년들이 임시직, 계약직 일을 전전하며 “내 집”은커녕 그냥 집같이 생긴 곳에서도 살기 힘든 처지다. 청년들은 바늘구멍 같은 안정적 일자리를 향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두운 터널을 걸어간다.

‘힐링’ 책, ‘동기 부여’ 글을 읽고 마음을 다잡아도 이 잔인한 세상은 청년을 거듭 좌절시킨다.

《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 헬렌 레이저 지음, 강은지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268쪽

이 책은 청년이 힘든 건 그들의 ‘노오력’ 부족 탓이라는 시각에 대해 “개소리”라고 일침을 날린다. “세상은 여러분을 실망시켰고, 우리가 사는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한 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삶이 엉망진창인 건 자본주의 때문이다.

저자 헬렌 레이저는 오스트레일리아 라디오 진행자 겸 저술가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다. 저자는 이 책을 “마르크스 맛보기”로 생각해 달라고 말한다. 부조리하고 엉망진창인 자본주의에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털북숭이 노인네”(마르크스)가 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겨우 여덟 명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절반이 가진 것보다 많은 부를 주무르는 세계, 10억 명이 굶주리는 세계, 기업에 세금을 낼 의무도, 유의미한 고용을 창출한 의무도 면제해 주는 세계, 이런 오늘의 세계를 사는 많은 이들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과 빈곤의 근원을 묻는 질문에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답을 해줄 수 있다.”

고통의 근원

저자는 마르크스의 핵심 주장들에 대해 걸걸한 입담과 재치 있는 말로 풀어 나간다. 어려울 것 같다는 걱정일랑 접어놔도 좋다.

계급의식은 ‘깊은 빡침으로 얻은 깨달음’이라고 비유하고, 지배자들이 자본주의가 주는 고통을 부정할 때는 “내 다리에 오줌을 싸고는 비가 내리는 거라고 우기지 말라”고 응수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겪는 온갖 문제들의 뿌리에는 자본주의라는 물질적 토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고 매우 강조한다.

물론 자본주의는 눈부신 생산력의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가 대중을 향해 칼날을 겨누고 많은 이들을 해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극소수는 자본주의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지만 대다수는 고통에 빠져 있다.

저자는 만연한 실업, 불안정 노동의 확대, 인종차별, 성차별, 인터넷에 중독된 ‘키보드 전사’, 경쟁심, 우울증까지 온갖 사례를 들어서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보여 준다.

“우리 중 아주 소수만이 자본주의의 과실을 누릴 수 있다면 풍요와 기술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자본주의는 치유할 수 없는 위기에 빠져 있다. 그 위기는 자본주의 그 자체의 “유전적 위험성”에서 기인한다. 주기적인 공황, 이윤율의 저하 등은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 결과로 벌어진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할 조건을 창출한다.”

저자는 이러한 자본주의에 도전하지 않은 채 개개인들의 의식만 바꾸려는 시도들이 왜 계속 실패해 왔는지도 지적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나쁜 환경이 나쁜 생각을 낳는다는 점은 잘 고려하지 않는다.”

그 하나의 사례로 저자는 어떻게 트럼프라는 “얼간이”가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나 하는 물음에 답한다. 그것은 미국 노동계급 대다수가 갑자기 인종차별주의자가 돼서가 아니었다.

지난 오바마 정부도 결국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수행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지만, 힐러리 클린턴과 그녀를 지지한 미셸 오바마는 “미국은 이미 위대하다”며 현실을 외면했다.

저자가 보기에 트럼프가 말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선거 슬로건은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엿같다고 말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트럼프를 지지한 대다수는 “자신들의 삶에 위대함이 결여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밀레니얼의 '깊은 빡침'에 "털북숭이 노인네"가 답을 줄 수 있다

한편, 차별 쟁점에서 물질적 토대를 간과하는 관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특히 여성 차별에 맞선 운동들이 자본주의를 반대하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여러 사례를 들어 비판한다. 더 많은 여성이 기업주, CEO 자리로 올라가고, 그들이 만든 상품을 많이 구매하는 게 과연 대다수 여성들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

“유리천장이 깨어진다 하더라도 최고를 향한 등반은 암묵적으로 남아 있다. 진정한 공산주의의 생산양식이 도래해 집단적으로 조직을 소유하고 관리할 때까지 소유자와 관리자의 자리는 언제나 소수의 것일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를 읽어라”

그렇다고 저자가 토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기계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상부구조(사상, 법, 제도 등)와 토대(자본주의 착취 관계)가 상호작용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런 사회를 바꾸기 위해 “문화적 차이에 관계 없이 99퍼센트 사람들의 계급적 연대가 사회 변화의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여기까지 흥미롭게 읽은 밀레니얼이라면, 저자가 소련 같은 소위 ‘현실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보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소련에 대해서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라 통제된 국가자본주의 체제”였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꼭 당부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젊은이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곤경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느라 좀처럼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마르크스를 읽어라. 이것이 나의 유일한 권고다.”

이 책의 몇몇 부분은 다소 엄밀하지 않고,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조금 거칠게 다뤄서 아쉬움도 남는다.(마르크스주의와 그 여성해방론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밀레니얼이라면 아래 필자가 추천하는 책들을 읽어도 좋겠다)

그럼에도 다 읽고 나면 우리가 갖고 있는 분노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조금 느낌이 올 것이다.

저자가 권유하는 것처럼 세상과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털북숭이 노인네”의 매력 속으로 함께 빠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