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는 정치적 부패를 없앨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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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청와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 초대 처장에 내정한 판사 출신 김진욱의 인사청문 요청안을 국회에 보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김 후보자가 공수처 중립성을 지키고, 권력형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하고, 인권 친화적인 반부패 수사 기구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청문회에서 빨리 통과시켜 달라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험난하기 그지없던 공수처장 임명 과정이 빨리 마무리되길 바랄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야당의 비토권(사실상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반대하면 임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법 조문에 남긴 것)을 삭제하는 법 개정을 강행했다.
판사 출신이라지만 김진욱은 기업주 등 권력자들의 변호와 노조 파괴 공작 등으로 악명 높은 김앤장의 변호사 생활을 더 오래한 인물이다. 문재인은 주류 정치권이 무난하게 수용할 만한 인사를 추천한 듯하다.
김진욱은 1999년 대검찰청 등의 조폐공사 파업 파괴 공작 의혹을 수사하는 특별검사팀에 파견돼 수사에 참여했었다. 당시 조폐창 통폐합 계획에 반대해 조폐공사 노조가 파업을 벌이다가 탄압을 못 이기고 패배했다. 그런데 당시 대검 공안부장 진형구가 기자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노조의 패배가 자신들의 작품이라고 자랑했다가 그것이 보도돼 특검까지 갔었다. 그러나 이미 1998년부터 김앤장에서 근무를 시작한 김진욱이 파업 파괴자들을 단죄하는 일에 열성을 발휘했을 리 없다.
당시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에서는 진형구가 구속 기소됐었으나, 오히려 특검은 파업 파괴 공작을 조폐공사 사장의 단독 플레이로 결론을 내려 (연루 의혹을 받던) 대검찰청·대전지검·대전노동청 등에 모조리 면죄부를 줬다. 당시 검찰은 대검 공안부가 수사 대상인 이 특검의 검찰 몫 파견 검사로 공안통인 서울지검 부장검사 황교안을 보냈었다. 특검의 수사 방향은 처음부터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이끌려 갔다. 노동계와 엔지오 등의 추천으로 특검팀에 참가한 변호사들이 항의하다가 결국 특검팀을 사퇴했었다.
우파의 부패만이 문제인가
공수처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정치적 부패를 재벌과 전통적 집권당이었던 국민의힘, 국가 관료들, 조중동 같은 우파 언론들의 유착 구조에서만 찾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부패의 원조라고 부를 만한 세력인 것은 맞다.
그러나 국가 형태가 독재적 국가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로 변화해 온 지금도 정경 유착 부패가 끊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
첫째, 국가와 자본의 관계가 달라지면서 부패의 양상도 변했다. 가령 과거 일당국가 시절에는 정치권력자가 우위에 서서 기업들에 정치자금을 요구했다. 지금은 상호거래 성격이 훨씬 강하고, 기업들도 보험용으로 한 정당과만 거래하지 않는다. 정부는 여러 특혜가 될 수 있는 정책과 사업의 결정권을 쥐고 기업들을 윽박질렀다가 달래기도 했다가 한다. 다른 한편, 정계·관계·언론계에 ‘삼성 장학생’이라는 말이 유행하는가 하면, 모피아, 원전마피아 등 예전보다 다양한 정부 부처에 “관피아”라는 말이 생겼다. 정치인, 관료, 자본가들 간 연결망의 양상도 더 복합적이고 복잡해진 것이다.
둘째, 민주당은 1998년 집권하고부터, 특히 3번의 집권을 거치면서 지배계급의 차악 처지를 완전히 벗어났다. 자본주의 수호와 효율화를 위한 노력에서 민주당도 우파 못지않다. 민주당도 정치·경제 권력의 핵심부이자 부패로 연결된 네트워크의 강력한 한 축이 됐다.
가령 1월 12일 가습기 살균제 재판에서 피해가 입증되지 않는다며 애경산업과 SK케미칼에 부당한 무죄 판결이 났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민주당은 사회적참사조사위 활동기간을 연장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 진상 규명을 연장 대상에서 제외했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공교롭다.
한국에서는 부패에서 자유로운 대통령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퇴임 후 구속되지 않은 경우는 박정희처럼 비명횡사하거나 이승만처럼 바로 망명을 떠난 경우, 김영삼·김대중처럼 재임 중에 이미 친자식들과 측근들이 대신 구속된 경우, 퇴임 후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노무현의 경우가 있다.
정경 유착 유형의 권력형 부패가 독재적 국가자본주의의 유산으로만 말할 수 없음을 김영삼 이후 정권의 부패상에서 알 수 있었다. 노무현 이후 비밀스런 정치자금의 운용이 점점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퇴임 후에도 권력과 부를 유지할 목적의 뇌물 거래는 멈추지 않았다.
권력 교체기에는 연결망 내 세력균형에 재조정이 시작되거나 새로운 라인이 형성되면서 균열이 생기고, 흔히 과거의 관계에 대한 폭로가 벌어지게 된다. 이런 때면 전직 대통령뿐 아니라 재벌 회장들도 구속되곤 했다.
문재인 정부도 부패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편, 지난 1년여간 정부·여당이 검찰 또는 경찰이나 국가정보원을 다루는 과정을 볼 때, 국가(통치기구들의 총합) 내의 세력관계가 우파에 비해 열세인 것도 아니다. 민주당도 국군기무사 등이 연루된 촛불 무력 진압 계획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우파 야당이 최근 무능해서 더 그렇겠지만, 민주당을 대하는 재계의 태도도 예전과 다르다.
그래서 권한 남용, 지위를 이용한 치부(뇌물, 불법 투자 등), 부패 혐의의 조직적 은폐 등에서 민주당도 구 여권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현재 문재인 정부 내각 출신 중 전 환경부(김은경)·법무부(조국) 장관 등이 권력형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전 국무총리(이자 현 집권당 대표) 등의 뇌물수수 의혹이 드러났다. 청와대 출신으로는 조국(당시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민정수석실 소속 비서관이었던 백원우·최강욱 등이 모두 비리 무마 의혹과 특혜 비리 혐의로 재판 중이다. 민정수석실 소속 행정관 1명은 뇌물 혐의로 구속돼 있고, 이진아 씨는 옵티머스 펀드 사기 관련 핵심 의혹 대상이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건에선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기소는 피했지만) 수사 대상이다. 조국, 백원우 등이 기소돼 있는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건에서 전 국정상황실장인 윤건영과 행정관인 천경득은 (용케 기소는 피했지만) 감찰 무마 청탁을 한 청와대 인사들이다(김경수 경남지사도 청탁을 함). 지난해 총선 결과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윤건영은 정치자금 관련 회계부정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윤미향 의혹도 만만찮았다. 그런데 문재인과 청와대는 이들 모두를 옹호했다.
한때 개혁의 기수처럼 여겨졌던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같은 언론들과 참여연대 등 유력 엔지오들도 대부분의 의혹들에서 민주당 관련자들을 감싸는 태도를 취했다. 조중동만 문제라는 식의 담론이 젊은 세대한테 이제는 잘 먹히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경험 많은 사람들은 공수처가 정권 초에 인기를 끈 적폐 청산 수사 같은 강력한 반부패 수사를 하기보다는 현 정부에 불리한 수사들을 이첩시켜 묵히는 구실을 할 것으로 본다. 현 정부가 성역 없이 권력층을 수사할 인물들을 공수처 검사로 선발할지도 의심의 대상이다. 행정부(군부와 국정원 등 포함), 입법부, 사법부의 고위 공직자 7000여 명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공수처를 출범시키면서 유독 여권이 그중 3분의 1도 안 되는 ‘검찰 개혁’에서 명분을 찾은 것도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자본주의는 부패를 고무한다
부패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자본주의 자체가 부패를 고무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자본들이 서로 이윤 경쟁과 자본 축적에 몰두하는 체제다. 경쟁에서 패배하면 자본으로서 실패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은 자본들 간의 다툼을 갈수록 치열하게 만든다. 투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이를 위해 분식 회계나 주가 조작을 저지르고, 정부 투자를 받으려 하거나 또는 벌어진 사고나 부패 혐의를 덮으려고 고위 관료나 정치인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다.
자본주의 사회에 결과지상주의나 실용주의적 태도와 생각이 갈수록 만연한 것은 자본주의적 경쟁이 사회를 그렇게 구조화해 사람들을 몰아간 결과다. 정경 유착 부패가 단순히 국가자본주의나 정실 자본주의의 유산이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의 유산인 탓이다. 부패는 경쟁적 축적의 이면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신화와 달리 자본은 여전히 국가에 의존하고, 자본들은 국영기업의 민영화나 인수·합병 과정에서 큰 이익을 얻는다. 재벌 개혁론자들이 칭송하는 이른바 ‘주주 중심 경영’은 단기 실적 압박이 더 커서, 오히려 구조조정이나, 주가 조작 등 부패를 부추긴다. 또한 국가 정책들은 임금 억제처럼 노동계급을 전체적으로 쥐어짜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특정 자본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기 때문에 정경 유착 시도는 더 조장된다.
따라서 아무리 강력한 반부패 수사기관을 만들어도 자본주의 질서를 그대로 둔 채 부패를 척결할 수는 없다. 할 수 없는 것을 하겠다는 것은 사기(또한 위선) 아니면 공상이다.
가끔 언급되는 이탈리아의 마니 풀리테 수사를 봐도 알 수 있다. 1992년 2월 밀라노 검찰청 검사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가 사회당 간부를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하면서 시작된 마니 풀리테 수사는 2년 동안 정·재계 인사 4500여 명을 기소해 1200명이 유죄 판결을 받게 했다. 당시 국회의원의 절반이 수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 수사로 기민당·사회당 연립 정부가 몰락하는 등 충격을 겪었지만, 결국 더 부패한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등장하는 것을 막지도 못했고 수사는 중단됐다. 이탈리아는 지금도 정·재계와 심지어 마피아 조직까지 연루된 범죄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다.
서구 선진국이라고 다를까? 독일에서 재통일의 후광 등으로 19년이나 총리를 지낸 헬무트 콜은 부패 정치자금 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그 의혹은 확대돼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에까지 미쳤다. 우파인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도 뇌물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핼리버튼 스캔들은 자본주의 권력자들의 부패가 얼마나 야만적일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오바마 정부도 힐러리 이메일 스캔들 은폐 의혹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수처를 검찰 개혁이라며 밀어붙인 동기와 실질적 결과를 보건대, 문재인의 공수처는 명백한 사기극이다. 따라서 진보·좌파의 일각이 그저 부패는 나쁘다는 개념만을 근거로 공수처는 지지할 만한 개혁인 것처럼 다루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자본주의에서 부패만 떼어내어 제거할 수도 없거니와, 심지어 좌파 정부도 자본주의를 개혁·진보화할 수 없다는 것이 앞서 집권했던 사회민주주의 정부들(프랑스, 브라질 등)의 경험에서도 드러난다. 부패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고 싶다면 자본주의 자체를 정조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