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혐의’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 구속영장 청구:
노동조합 활동가 4인에 대한 보안법 탄압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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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활동가 네 명이 국가보안법 탄압을 받고 있다. 석권호 민주노총 조직국장, 김영수 보건의료노조 전 조직실장, 양기창 금속노조 전 부위원장, 신동훈 제주평화쉼터 대표.
3월 23일 검찰은 ‘간첩 혐의’로 이 4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4명은 20대 때부터 우리 사회의 노동운동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사람들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애써 온 사람들입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마자 우파 언론들은 이 4명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했다”고 대서특필했다. 국정원과 경찰이 이 4명에 대한 압수 수색을 하는 과정에서 한미일 군사 동맹 해체와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의 북한 지령문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일 군사 동맹 해체 요구와 반정부 선동은 훨씬 보편적인 현상이다. 특별히 북한과 관계될 이유가 없다.
한미일 군사 동맹은 대중국 군사 압박을 강화해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키울 동맹이므로 많은 국민이 반대하고 있다.
또, 윤석열 정부가 반노동·친기업, 서방 제국주의 편들기, 민주적 권리 훼손 같은 정책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으므로, 반정부 정서도 매우 광범하다.
무엇보다, 이 4명은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평화적 방식으로 실천했다. 윤석열 정부는 가장 기본적인 사상·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우파 언론들이 “북한 지령” 운운하는 사안들이라는 게 실은 윤석열 정부를 위기에 빠뜨린 문제들이다.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던 한일 강제동원 합의는 대중적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여기에 윤석열의 다른 악행들(가령, 노동시간 연장 시도)에 대한 반감이 더해져 윤석열의 지지율은 또 떨어졌다. 부정 평가가 지지율의 곱절이다.
대중의 이런 분노는 북한과 연계돼 있는 소수 음모가들의 활동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경험(역사적·일상적·투쟁적)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우파 언론의 이런 비방과 왜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또 다른 ‘간첩단’(‘자주통일 민중전위’) 사건에서도 그 단체의 조직원 4명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을 주도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6~7월 대우조선 하청 파업은 생계비 위기 악화 상황과 맞물려 정치적 주목을 끈 덕분에 연대가 광범하게 이뤄졌다. 이 파업으로 당시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
우파 언론들은 어떤 증거도 없이 북한 지령 정보를 “입수”해 보도한다. 마치 ‘간첩’ 혐의자는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이런 자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북한의 인권 탄압”을 들먹이는 것은 역겨운 이중 잣대다.
그런데 남한에서 북한 간첩 딱지가 붙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공격이다.
석권호 조직국장의 부친 석달윤 씨도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였다. 1980년 전두환의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는 ‘진도 간첩단 사건’을 조작했다. 석달윤 씨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재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8년의 옥살이를 하고 1998년에 가석방됐다. 2009년 재심에서야 마침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여론 조작용
우파 언론의 이런 행태는 국가보안법 탄압의 본질을 보여 준다.
윤석열 정부는 여론 조작을 위해 보안법을 휘두른다. 재판 전에 피고인을 공개 비난해 대중의 불만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다.
보안법 처벌의 목적은 교정이 아니고 급진적 반대파에 대한 보복과 통치 정당화 선전이다.
윤석열 정부는 보안법을 특히 대중 운동과 북한 국가를 엮는 일에 이용하고 있다. ‘간첩 수사’의 목표는 대중 운동과 북한을 한통속으로 치부하게 함으로써 정치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인기 없는 정부다. 다양한 전선에서 반윤석열 정서가 표출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간첩 수사’를 통해 현실에 불만을 품고 투쟁을 나서려는 사람들을 분열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렇듯 보안법 탄압은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친서방 어젠다 관철 노력과, 이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저항이 빚어낸 긴장을 반영한다.
따라서 ‘간첩 수사’는 친북적인 일부 급진적 반대파에 국한된 정치적 공격이 아니다.
얼마 전에 국민의힘 원내대표 주호영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노총이 ‘간첩 노조’라는 점을 더불어민주당도 좀 알아야 한다.”
또한 최근에 윤석열은 참모들에게 “나라에 간첩이 이렇게나 많나” 하고 말했다고 한다(〈중앙일보〉 3월 23일 자).
정부·여당은 ‘간첩’을 반윤석열 투쟁의 코드명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악명 높은 보안사
그런 말을 한 뒤 22일에 윤석열은 국군방첩사령부(옛 보안사, 기무사)를 방문했다. 대통령이 방첩사령부를 방문한 것은 노태우 이후 31년 만이다.
방첩사령부는 사병뿐 아니라 민간인 사찰이 임무인 부대다. 1990년 방첩사의 전신인 보안사령부가 민간인(야당 정치인과 재야 인사 등)을 광범하게 사찰했다는 사실이 폭로돼 수만 명이 규탄 시위를 벌였다.
그 뒤 이미지 세탁을 위해 국군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다가 박근혜 퇴진 운동 때 친위 쿠데타를 검토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2018년에 안보지원사로 이름을 다시 바꿨다. 윤석열은 이 부대 이름을 방첩사령부로 바꾸고 인원과 조직을 보강했다.
윤석열의 방첩사 방문은 (국정원을 포함해) 정보·보안기관들을 중요한 통치 수단으로 삼아 저항을 억누르겠다는 정치 퍼포먼스다. 물론 실질적인 격려의 의미도 있다.
윤석열의 구상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정치 탄압 대상자가 ‘간첩’ 혐의를 받을지라도 노동운동이 방어를 회피하지 않고 연대를 효과적으로 구축함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경제적 불만을 파업 투쟁으로 조직한다면 윤석열 정부를 결정적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