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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군부의 민간인 학살:
국가와 군부에 맞서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권력 쟁탈전을 벌이는 군부 세력들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을 재앙으로 밀어넣고 있다 ⓒ출처 Africa Stream (트위터)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일어난 학살은, 군부 세력들 간 권력 쟁탈전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하르툼 남쪽 빈민가의 한 시장이 포격을 받아 최소 27명이 목숨을 잃고 106명이 다쳤다.

정규군이 장악한 알샤자라에서 군인들은 마요의 주택가로 6발의 탱크 포탄과 로켓을 쐈다. 마요 주민 대부분은 7주 전 수단군과 준군사조직인 신속지원군(RSF)의 교전이 일어난 후에도 형편이 어려워 하르툼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공식 집계된 민간인 사망자 수는 최소 900명에 이르지만 실제 사망자 수는 훨씬 많다. 예컨대 하르툼의 마이꾸마 고아원에서 최소 11명의 영유아들이 영양실조와 잦은 단전 탓에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지만, 이 아이들의 죽음은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비르 압둘라 박사는 교전 탓에 극소수의 인력으로 수많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이들에게 3시간마다 밥을 먹여야 하는데 그 일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영양 주사를 놓아 봤지만 대부분은 살릴 수 없었습니다.” 압둘라 박사는 현재 최소 50명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에서 강제로 쫓겨났고 40만 명이 나라를 떠났다. 유엔에 따르면 인구의 절반이 넘는 2500만 명이 식량·의약품·식수가 부족한 상황이다.

권력 쟁탈전을 벌이는 장성들, 군부의 수장 압델 파타 알부르한과 신속지원군의 우두머리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일명 ‘헤메티’로 더 잘 알려져 있다)에게 이 학살의 직접적 책임이 있다.

2021년에 쿠데타를 벌여 민주주의를 향한 움직임을 짓밟은 이 군벌 우두머리들은 자신들의 특권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피바다를 헤엄칠 태세가 돼 있다.

알부르한과 헤메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한패였다. 그러다 서로 다른 주변국 정부와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지원을 받으며 통치권이라는 전리품을 차지하려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항쟁에 닥친 난관

이번 유혈 사태는 2018년 12월 이래 수단을 변화시키려고 싸워 온 활동가들에게 커다란 난관이다. 2018년 12월에 수단인들은 30년간 이어진 오마르 알바시르의 독재에 맞서 들고 일어났다.

항쟁은 알바시르를 몰아냈다. 그러나 반정부 세력에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한 자유주의자들은 군부를 상대로 한 협상에 거듭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장군들은 민정 이양 약속을 몇 번이고 어겼다.

알부르한과 헤메티는 똑같이 나쁜 자들이다. 대안은 혁명 과정에서 형성된 저항 조직과 풀뿌리 네트워크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런 조직들은 절실히 필요한 복지·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국가 권력과 대결해야 한다.

저항위원회들은 앞으로의 진로를 두고 논쟁하고 있다.

한 예로 역사적인 노동자 저항의 고장인 아트바라시(市)를 들 수 있다. 이곳은 철도 노동자들이 영국의 식민 지배에 맞서 싸웠던 곳이자, 2018년 물가 인상에 대한 저항이 가장 먼저 시작된 지역 중 하나다.

아트바라 저항위원회는 “비공식적이지만 격렬한 토론”을 벌여 왔다. 한 참가자는 온라인 매체 〈미들 이스트 아이〉에 이렇게 말했다. “엘리트들 탓에 혁명과, 자유·평화·정의라는 혁명의 위대한 슬로건이 납치당했다.”

이 참가자는 저항위원회들이 알부르한과 헤메티 모두에 반대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저항위원회가 수단군 자체에 어느 정도 우호적이기도 하다고도 덧붙였다. 특히, 젊은 병사들과 하급 장교들에게 기대를 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대의 기존 구조 일체에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사병들의 반란이다. 그런 반란은 저항위원회가 계급투쟁의 형태로 장군들과 싸울 때에만 체계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저항위원회는 기본적 생활 수단을 제공하는 활동과 국가가 거느린 “무장한 자들로 이뤄진 기구”에 맞선 자기 방어 활동을 반군부 선동과, 지역 수준의 민주주의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는 노력과 결합시켜야 한다.

하르툼의 한 저항위원회의 일원인 하미드 무르타다는 이렇게 주장했다. “지역 저항위원회들 사이에는 상호 협력을 위한 조율 체계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민간인을 지원하는 사회 보호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어요.

“이 조율 체계는 전쟁을 즉시 끝낼 제안을 뒷받침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할 것입니다. 그 이후 일어날 일은 미래의 이야기죠.”

하지만 미래를 우연에 맡길 수는 없다. 군부는 일단은 저항위원회가 기본적인 사회적 필요를 유지하도록 허용한 다음, 나중에 활동가들을 학살할 수 있다.

저항위원회는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민주적 권력을 위해 투쟁하고 모든 장군과 부자들에 맞선 대안을 제시할 준비 작업에 긴급히 착수해야 한다.

수단 혁명 연표

2018년 12월: 빵과 기타 생필품 가격이 3배로 오르면서 시위가 분출하다. 시위는 삽시간에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에 대한 정치적 항쟁으로 발전한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알바시르는 거의 30년 동안 수단을 통치했다. 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이후 3개월 동안 계속된다.

2019년 4월: 수도 하르툼에서 행진을 마친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고 국방부 청사 주변을 점거한 채 무기한 농성을 시작하다. 시위대는 침탈 시도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고자 바리케이드를 치고, 식량·물·치안을 직접 조직하고, 문화 활동을 벌이고, 끊임없이 토론한다. 이런 사례가 다른 도시로도 확산된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단지 개인이 아니라 작업장에서 조직된 집단으로서 저항하기 시작한다(관련 기사).

2019년 4월 11일: 시위가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군부가 알바시르 제거를 발표하다(관련 기사). 그러나 군부는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시위와 점거가 계속되고 5월 28~29일 노동자들이 강력한 총파업을 벌인다(관련 기사).

2019년 6월 3일: 악명 높은 준군사 조직인 신속지원군이 이끄는 군부의 병력이 하르툼 점거 농성장을 침탈해 최소 110명이 목숨을 잃는다(관련 기사). 그럼에도 시위와 파업은 계속된다(관련 기사).

2019년 8월: 항쟁 지도부가 군부를 완전히 타도할 시위를 건설하지 않고, 배신적인 “권력 분점” 합의를 군부와 체결하다(관련 기사).

2019년 10월: 더딘 개혁과 경제적 어려움에 분노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다.

2020년 7월: “혁명의 진로를 바로잡기 위해”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행진을 벌이다.

2021년 10월: 합의에 따라 권력을 이양해야 했던 군부가 권력을 부지하려고 쿠데타를 일으키다. 거리 시위가 즉각 벌어져 이에 맞서다(관련 기사).

2021년 11월 6일: 수단 전역에서 100만 명이 군부 반대 시위를 벌이다. 시위대는 도로를 막고 군부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보여 준다(관련 기사).

2021년 11월 21일: 군부에 의해 축출된 민간인 총리 압달라 함독이 쿠데타를 주도한 압델 파타 알부르한과 거래를 해, 민정 이양의 모양새를 취하는 기술 관료 정부를 이끌기로 하다. 쿠데타 반대 진영은 대부분 이 거래가 사실상 군부가 권력을 부지하는 것에 분칠을 해 주는 사기극이라고 규탄한다(관련 기사).

2022년 1월 2일: 대규모 거리 시위가 계속돼 함독이 사임하다. 유엔과 서방 열강은 거리 시위대와 군 장성들 사이에서 타협을 계속 모색한다.

2023년 4월 15일: 민정 이양을 돕겠다는 약속을 더 내놓았음에도, 알부르한와 헤메티가 통치권을 두고 전쟁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