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와 부채 증대를 이유로 긴축재정 합리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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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국가 부채 증가가 미래 세대를 위협하고 있다며 긴축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실질임금을 삭감하고, 공공 요금은 인상하고, 공공임대주택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정부는 긴축 재정을 강제하려고 재정준칙을 법제화하려고 한다.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퍼센트, 국가 부채를 GDP 대비 60퍼센트 내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부채를 GDP 대비 60퍼센트 이하로 관리해야 한다는 어떤 경제적 근거나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유럽연합이 그런 기준을 제시했을 뿐이다. 유럽연합은 신자유주의적인 통합을 추진하며 1990년대에 이 기준을 마련했다.
그러나 지금은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 대다수도 국가부채가 이 기준을 훌쩍 넘는다.
일본의 정부 부채는 GDP 대비 264퍼센트로, 선진국에서 가장 크다. 그러나 어떤 경제학자도 일본이 곧 빚을 갚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위기에 빠져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우파들은 정부 부채를 적자가 계속 쌓이면 파산을 면치 못하는 가계 부채와 비슷한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사실 대출과 부채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항상 필수적인 부분이다.
기업들은 생산을 확장하기 위해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다. 그렇게 조직한 생산으로 노동자들에게서 잉여가치를 뽑아내 이윤이 창출된다. 이 이윤 중의 일부가 은행가들에게 이자로 분배된다. 이자도 노동자들이 만든 잉여가치의 일부이다.
자본가들이 도로나 철도처럼 돈이 많이 드는 사회기반시설을 원할 때, 정부는 시장에서 돈을 빌려 이런 시설들에 투자한다.
기업들의 수익성이 높다면 이 과정에서 진 정부 부채는 성장을 위한 중요한 종잣돈이 되고, 부채는 충분히 상환될 수 있다.
그래서 경제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 은행가들은 자신감을 갖고 더 많은 돈을 빌려 준다. 이는 단순히 대출과 차입에서 멈추지 않는다. 금융 산업은 부채를 재가공하고, 이를 다시 사고팔며 성장한다. 마르크스는 이런 종류의 투자를 “허구적 자본”이라고 불렀다.
이런 금융 투자 붐으로 이윤율이 한동안 높게 유지되기도 한다.
또 경제가 고도 성장하는 동안은 정부의 세금 수입도 증가해, 정부 부채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컨대, 제2차세계대전 직후 선진국들의 부채는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았지만 장기 호황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GDP 대비 부채의 비율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실물 경제의 이윤율이 떨어지면 이런 선순환은 지속될 수 없다.
기업 수익성이 나빠져 빚을 갚기 어려워지고, 더 많은 빚을 져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은행들도 거대한 부채를 떠안게 된다. 결국 이런 부채의 연쇄는 자본가들이 파산해 실질적이거나 허구적인 자본 모두를 파괴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으로 기업들이 커지고, 몇몇 기업들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지면 이런 기업의 붕괴는 체제를 붕괴시킬 정도로 타격을 줄 수 있다.
결국 “너무 커서 파산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기업과 은행들 대신 정부가 그들의 빚을 떠안는 일이 벌어진다.
세계 각국에서 정부 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바로 2008년 금융 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초기 심각했던 위기 상황에서 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썼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1997년 외환 위기 때 30대 재벌 그룹 중 절반이 파산하는 부채 구조조정을 겪었다. 당시의 고통은 엄청났다. 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중국의 경제 성장에서 득을 보며 성장률을 어느 정도 회복했고, 정부가 대체로 균형 재정을 유지해 국가 부채 비율이 다른 국가보다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한국도 성장률이 점차 둔화되자 정부가 기업 지원에 막대한 돈을 쓰며 국가 부채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초기에 대량 해고가 벌어지던 상황에서 정부는 노동자 직접 지원에는 인색하면서 기업 지원을 위해서는 수백조 원의 기금을 조성하고 지원한 바 있다.
따라서 국가 부채 증가가 문재인 정부 시절 서민 지원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우파들의 말은 거짓이다.
정부가 수익성이 떨어진 기업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정부 부채도 심화돼 왔고,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한 상태에서 자산 거품을 부양시키는 정책을 쓰다 보니 가계부채도 늘어 왔다.
탈출구
윤석열 정부는 시장 원리를 우선에 두며 해결책을 찾겠다고 연일 강조하지만, 시장의 이윤 논리가 만들어 온 부채 위기의 탈출구를 시장에 기대어 찾을 수는 없다.
지난 10여 년간 그리스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말한 식의 시장주의적 긴축 정책이 추진됐지만 부채 위기는 전혀 해결되지 못했다. 가혹한 긴축 정책으로 경제가 더 빨리 수축하며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늘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하에서도 막대한 기업 지원 정책으로 인해 재정 적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가 5년간 60조 원에 달하는 법인세 등 부자 감세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로 세수는 줄어드는데 기업 감세까지 겹쳐 올해 상반기 재정 적자는 무려 83조 원에 달한다.
정부는 감세를 통해 기업 경기가 회복되면 경제가 성장해 세입 증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정부가 말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지난 수십 년간 추진돼 왔지만 약속한 바는 이뤄지지 않고 부채와 불평등만 커져 왔다.
기업 지원 비용의 증가는 노동자와 서민들에 대한 긴축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미래 세대”를 위해 긴축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부의 긴축 운운은 노골적인 계급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공격인 것이다.
민주당은 정부의 노골적인 긴축 공격을 비판하며 서민 지원이 필요하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그들도 근본에서 시장의 이윤 논리를 우선해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지난해 말 국민의힘과 함께 대규모 기업 감세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전세 사기 문제에서도 피해자들의 전세금 지원 요구를 금세 외면하고 정부와 타협했다.
부채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노동자 등 서민들의 삶을 지키려면 이윤 논리를 거부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한 요구를 중시하며 투쟁을 전진시켜야 한다. 임금과 복지는 늘리고, 평범한 노동자들과 서민들이 지고 있는 막대한 부채는 탕감하라고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부채 위기가 악화해 심각한 금융 위기가 닥치면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크게 후퇴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 위기로 갑작스럽게 집이 줄어들거나 음식이나 의약품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주택 위기나 식량가격 상승, 의료 서비스 삭감을 낳는 것은 시장의 무정부성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경제를 운영하도록 싸우는 것을 통해 이 정신 나간 상황을 중단시킬 수 있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에 기반을 둔 체제의 빚을 지불하기 위한 그 어떤 삭감 조처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