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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 독립!”(From the River to the Sea)
분노의 외침이자 진정한 해방 요구를 기꺼이 공유하자

이스라엘 국가를 폐지하고,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등이 공존하는 세속 민주 국가를 세워야 한다. 10월 13일 미국 오하이오주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 ⓒ출처 Becker1999 (플리커)

“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이여 독립하라)!”

반세기 넘게 국제적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널리 외쳐 온 이 구호가 최근 서구 정부들의 탄압 대상이 돼 있다.

11월 6일 미국 하원은 이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 영상을 ‘X’(옛 트위터)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계 여성 하원의원 라시다 틀라입에 대한 징계를 가결했다. 이 구호가 “유대인 배척”이라는 것이 징계 사유였다.

프랑스에서는 이 구호를 외쳐 “이스라엘 국가를 모독”하면 최대 7만 5000유로(약 1억 원)의 벌금형 혹은 2년 이하의 금고형에 처할 수 있는 법안이 상원에 발의됐다.

영국 보수당 정부의 전 내무장관 수엘라 브래버먼은 이 구호가 “유대인 배척 담론의 상징”이라고 규정하고는, “혐오 시위대”의 이 구호를 금지하겠다고 협박했다.(브래버먼은 경찰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무르게 대처했다고 불평한 후 11월 13일 장관직에서 해임됐다.)

그러나 이 구호가 유대인 배척이라는 주장은 억지다.

유대인 배척은 유대인에 관한 (허구적) 편견에 기초해 유대인 집단 전체를 공격하는 극우 이데올로기로, 이스라엘 비판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결코 유대인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이 구호를 외치며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동참하는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배척하는 것이라는 말인가?

이스라엘 비판을 유대인 배척과 등치시키는 비방의 진정한 목적은 이스라엘 비판의 정당성을 떨어뜨리고 팔레스타인 연대에 나서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다.(관련 기사 본지 478호 ‘이스라엘 비판이 유대인 혐오인가?’)

이 구호에는 팔레스타인 해방의 전망이 포함돼 있다.

이 구호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동지중해 해안까지(“강에서 바다까지”)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 전체에 단일한 세속 민주 국가를 수립하자는 요구다. 그런 국가하에서는 유대인이든, 무슬림이든, 그리스도교인이든, 신앙이 없는 사람이든 모두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평화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시온주의 국가 이스라엘은 사라져야 한다. 이스라엘은 폭력을 동원해 원주민을 쫓아내고 수립된 정착민 식민 국가다.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살하거나 모두 추방할 때까지 끝없는 전쟁을 벌이는 것은 유대인만의 배타적 민족 국가를 표방하는 이스라엘의 존재 조건이다.

이것이 바로 75년 전인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때 일어났던 일(‘나크바’, 즉 대재앙)이며, 지금 또다시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벌이려 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국가를 폐지하고 단일한 세속 민주 국가를 수립하는 것, 쫓겨난 모두가 돌아와 평화 공존할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는 것은 해방의 전제 조건이다.

서구 정치인들이 립서비스처럼 들먹이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은 전혀 해법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독립 국가를 진정으로 용인하리라는 생각은 공상에 불과하다.

서구 정치인들은 1993년 오슬로 협정 덕에 동(東)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른바 이 “평화 프로세스”야말로 “두 국가 해법”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이스라엘은 협정 체결 이후 30년 동안에도 줄곧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더 빼앗아 왔다. 미국의 지지·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이런 행동을 ‘국제 사회’는 전혀 저지하지 못했다(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으로 수립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이용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감시·통제해 왔다.

따라서 애초에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이 제시했던 전망, 즉 이스라엘 국가를 해체하고 단일한 세속 민주 국가를 수립한다는 전망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제국주의자들의 사기극에 불과한 ‘두 국가 공존’ 협상에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 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저항에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을 방해하는 일이다.

더 원대한 전망

시온주의를 분쇄하려면 혁명이 필요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지금 영웅적으로 저항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스라엘을 맹견 경비견으로 둔 미국 제국주의의 세력에 맞서 이길 수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해방되려면 이 지역 아랍 정권들에 맞서, 특히 역내 최대 산업국이자 친미 동맹인 이집트에서 봉기가 분출해야 한다(관련 기사 본지 51호 ‘팔레스타인 해방의 길은 카이로로 통한다’).

이 아랍 정권들은 말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팔레스타인 해방의 걸림돌이다. 이들은 기껏해야 팔레스타인 문제를 오불관언 하고, 심지어 이스라엘과 돈독히 지내려 하며 제국주의에 협조하기도 한다.

이들 모두에 맞선 봉기야말로 이스라엘과 미국 제국주의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1987년부터 5년에 걸친 ‘인티파다’ 대중 저항, 2011년부터 2년여 동안 아랍 세계를 뒤흔든 혁명 물결 ‘아랍의 봄’은 제국주의자들이 아랍 지역에서 구축한 ‘질서’가 어떻게 뒤흔들릴 수 있는지 흘낏 보여 줬다.

아랍 지역에 살지 않는 우리에게도 과제가 있다.

현재 국면의 가장 중요한 요소 하나는 바로 세계적으로 분출한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다. 이 운동은 팔레스타인과 중동 민중을 고무하고 있으며, 양적·질적으로 더 성장하면 제국주의 강대국들을 정치적으로 더 압박할 수 있다.

이 운동이 이스라엘을 패퇴시킬 때까지 계속 전진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이스라엘과 이를 후원하는 서방 제국주의가 패배하면, 우리 모두를 지옥으로 몰아 넣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선 다른 전투들의 전진도 고무할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전투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체제에 맞선 다른 전투들과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구호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대의와 진정한 해법을 집약한 구호이자, 운동을 정치적으로 분열·마비시키려 드는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항의의 외침이다. 이 구호가 세계 곳곳에서 그렇듯 한국에서도 계속 울려 퍼져야 하는 이유다.

이 기사는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크 워커〉의 사설 ‘The right don’t get to say what our Palestine slogans mean’을 많이 참고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