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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을 무기로 사용하는 이스라엘, 가자지구 사람들을 모욕하는 미국

마이클 파크리 유엔 식량권 특별보고관은 3월 7일(이하 현지 시각)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기아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크리는 이스라엘군이 심지어 어민들의 바다 접근을 막고 배를 파괴했다고 말했다. 가자시티의 주요 항구에서 모든 배를 파괴하는 바람에 지난해 10월 7일 공격 이후 가자지구 어업 부문의 80퍼센트가 파괴됐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식량 시스템을 고의로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가자지구 거주자 4명 중 1명이 아사 직전이다. 기아와 탈수로 인한 영아와 유아와 아동 사망자 수는 최악이다.

이스라엘이 구호 차량을 공격하는 것도 굶주림을 전쟁 도구로 삼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은 2월 29일 가족을 먹여 살릴 밀가루를 구호 트럭에서 어떻게든 구하려던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했다. 117명이 죽었고 750명이 부상당했다.

이스라엘은 압사 사고였다고 거짓말했다.

미국은 또다시 이스라엘을 곤경에서 구해 줬다. 학살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한 결의안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제출되자 미국은 반대했다.

2월 29일 대학살은 최악의 살상 행위였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굶주린 사람들을 학살하는 것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통제하는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스라엘군은 살아남기 위해 식료품 등을 절박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

2월 29일 학살 사흘 뒤인 3월 3일 가자지구 남부 데이르 엘발라에서 이스라엘군은 구호품 배급 트럭을 또 공격해 적어도 9명이 죽었다.

이스라엘 때문에 가자 아이들이 굶주리는데, 미국은 공중 투하 ‘쇼’만 벌일 뿐이다 ⓒ출처 UNICEF

이에 대한 세계적 공분이 확산되자 미국은 3월 2일과 5일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공중 투하했다.

팔레스타인 NGO 활동가들은 공중 투하가 사진 찍기에는 좋지만 구호품을 전달하는 데서는 형편없는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공중 투하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나 극단적 조건에서 사용하는 최후의 구호 수단이다.

가자지구는 그런 곳이 아니다. 미국이 육로와 해상을 개방하도록 이스라엘을 압박하면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국경 봉쇄로 팔레스타인인들이 기근에 시달리는데도 미국은 비행기에서 통조림을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구호품의 양도 가자지구 주민들의 필요에 비춰 턱없이 부족하다. 수백 또는 수천 명이 구호품을 받으려고 기다리지만 보통 10~20명만이 구호품을 손에 넣는다는 보도가 나온다.

미국의 구호품 공중 투하는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하찮은 조처다.

‘워싱턴 아랍 센터’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프로그램 책임자 유세프 무나이어는 바이든의 구호품 공중 투하를 이렇게 비판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방화범에게 기름을 주면서 물 한 컵 들고 5단계 화재 경보 현장에 나타난 것과 비슷하다.”(〈뉴욕 타임스〉 3월 8일 자)


한국 정부, 이스라엘의 새 정착촌 계획 철회 촉구

윤석열 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3월 9일 외교부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정착촌 확대 계획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철회”를 촉구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정착촌 확대는 두 국가 해법의 근간을 훼손할 뿐 아니라 라마단을 앞두고 역내 긴장 완화를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을 저해[한다.]”

앞서 3월 6일 이스라엘 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는 서안지구 정착촌 3곳에 주택 3400채를 추가로 건설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점령한 곳이다. 현재 서안지구에는 이스라엘인 약 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번 논평을 발표한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0월 27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즉시 휴전” 결의안에 기권했다. “하마스 규탄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한 미국의 예멘 공습도 지지했다. 예멘 폭격이 “정당방위”라는 미국 등 서방 정부들의 공동 성명에 참여했다.

“이 와중에 ‘정착촌 또 짓겠다’ … ‘일촉즉발’ 중동의 화약고”라는 SBS 뉴스(3월 7일 자) 제목이 윤석열 정부의 “깊은 우려”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전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팔레스타인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상황에서 서안지구로까지 전선이 확대되면 아랍 대중의 분노가 폭발하는 등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이 증폭될 수 있다.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이스라엘과 공모하는 미국과 아랍 정권들(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이스라엘의 계획을 즉시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이들과 코드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은 중동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중동이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매우 높다. 한국은 특히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높다(80퍼센트).

중동의 불안정이 증대하면 한국은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놓일 수 있다.

미국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은 “새 정착촌이 … 국제법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블링컨의 “국제법” 운운은 헛소리다.

1월 26일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인 인종 학살 중단을 명령한 뒤, 유엔 안보리가 이 조처를 결의안으로 채택하려 하자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해 10월 7일 이래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들에 대해 미국은 다섯 차례나 반대했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증설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줄곧 반대해 왔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새 정착촌 계획이 중동의 불안정을 키우고, 그 틈을 타 러시아·중국·이란 등 미국의 경쟁국들이 영향력을 키우게 될까 봐 이스라엘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미국의 보수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이 이를 잘 표현했다.

“미국의 중동 정책은 본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란, 러시아, 중국과 같은 야심 찬 패권국들이 이 지역을 지배할 힘을 얻거나 주요 경제에 대한 에너지 흐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1월 30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