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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위 폭력 탄압하는 미국은 민주주의 운운할 자격 없다

미국 지배자들은 제국주의적 핵심 이익이 걸린 사안을 민주주의에 맡길 생각이 없다.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대에 최루액을 뿌리는 미국 경찰 ⓒ출처 Andrew Kerley/ VCU Capital News Service

바이든 정부가 팔레스타인 연대 캠퍼스 점거 운동을 강경하게 탄압하고 있다. 2주 만에 최소 108개 대학에서 2847명이 체포됐다(〈뉴욕 타임스〉, 4월 18일~5월 3일 추산).

대학가에 대(對)테러 부대가 투입돼 비무장 시위대에 고무탄을 ─ 최소 한 번은 실탄도 ─ 쏘고, 저격수가 배치되고, 장갑차와 불도저가 천막을 밀어 버렸다.

이는 다수 대중의 의견을 억누르는 것이다. 5월 11일 자 〈뉴욕 포스트〉에 보도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 86퍼센트가 시위를 지지한다. 학생 바깥으로 대상을 확대해 물어도 시위 지지(45퍼센트)가 반대(24퍼센트)의 곱절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은 현 상황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미국 정부가 대중의 항의를 경찰 폭력으로 탄압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60년대에 미국 민주당 정부는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 전쟁을 확대하고 이에 항의한 반전 시위대를 폭력 진압했다.

미국에서 경찰 등이 보유한 시위 진압 병력은 매년 최소 8만 회 투입된다(〈워싱턴 포스트〉).

2020년 미국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경찰은 5개월 동안 시위대 19명을 살해하고 1만 7000명 넘게 체포했다. 그 운동이 경찰의 흑인 살해에 항의해 벌어진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미국은 경찰이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쏘는 몇 안 되는 나라의 하나다.(발사형 최루탄은 1990년대 이래로 몇몇 국제 협약에 따라 전쟁터에서도 사용이 금지돼 있다.)

어느 나라에서든 경찰은 체제의 원활한 운영에 위협이 되는 모든 것을 탄압하려 하지만, 미국 경찰은 특별히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1980년대부터 경찰을 군용 무기로 무장시켰다. 미국이 중동 전쟁을 일으키고 나서 급증한 군용 무기가 경찰로 쏟아져 들어가, 경찰의 중화기 사용이 폭증했다.

이런 중무장은 대중의 불만과 항의를 억누르기 위한 것이다.

애초 경찰 중무장의 명분은 “마약과의 전쟁”이었지만 실제 목적은 흑인 평등권 운동 조직들을 공격하고 흑인 지역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경찰이 휘두르는 폭력은 대개 가난한 사람들과 무슬림, 유색인종들을 향한다. 이 집단의 체포·기소·수감률은 모두 불비례하게 높다.

가진 것 없고 권력 없는 사람들의 의사는 억눌리기 일쑤다.

미국 사회의 극심한 빈부 격차는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권리의 극심한 격차로도 나타난다.(사실 커다란 불평등 자체가 비민주적이다. 부의 압도적 부분이 사회 최상층부에 집중돼 있는 사회가 민주적일 수는 없다.)

불평등

미국은 선거에서조차 1인 1표와 다수결도 보장하지 않는다. 전체 유권자 중 소수만 득표했다 해도 국가가 지역별로 할당한 선거인단을 많이 확보하면 당선한다.(미국 상원 의석은 아예 인구 비례와 무관하게 배정돼 있다.)

그래서 역대 미국 대통령 46명 중 다섯 명이 경쟁 후보보다 더 적게 득표하고도 집권했다(트럼프도 그중 하나다).

게다가 투표 행위에 부여되는 각종 까다로운 조건들과 “게리맨더링(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구획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유색인종의 투표권을 체계적으로 제약하는 효과를 낸다.

이런 제도는 미국 독립 혁명 때 그 혁명을 주도한 부자들과 힘 있는 사람들이 국가를 세울 때부터 주도면밀하게 구축한 것이다. 혁명을 수행한 대중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인종차별은 미국 사회의 비민주성을 더한층 강화했다. 미국 역사가 고(故) 하워드 진은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고 자처할 때조차 고집스럽게 인종차별과 인종 분리를 고수했다”고 꼬집었다.

냉전기에 미국은 소련과의 제국주의 경쟁에서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며 자신의 행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거리낌없이 무시했다. 미국은 곳곳에서 독재자를 지원하고 우익 쿠데타와 내전을 사주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국에 맞서 동맹을 규합하는 데서 민주주의 기치를 내세우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같은 동맹자나 인도의 극우 총리 모디 같은 동맹자들의 비민주성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위기

그런데 최근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도 더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생계비 위기와 기후 재난 속에서 바이든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등 차별 강화 공격에 전혀 실질적으로 맞서지 않아 왔다.

그러면서도 전쟁과 제국주의 갈등 격화에는 매진해 왔다. 미국은 현재 진행 중인 두 전쟁(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모두의 최대 물주다.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가 깊이 고였다. ‘우리를 지켜 주지도 않고 우리 의사에 귀 기울이지도 않는 게 무슨 민주주의인가? 저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이 모양이라면 그런 민주주의는 대체 무슨 소용인가?’

이런 반발은 왼쪽에서도 불거졌지만(2011년 광장 점거 운동에서 나온 “1퍼센트에 맞선 99퍼센트” 구호가 이를 잘 드러냈다), 특히 오른쪽에서도 불거졌다. 특히 트럼프는 대중적 불만의 대변자를 참칭하며 대통령에 당선되고 재임 기간과 그 후에도 위험천만한 극우 운동을 강화했다.

그러나 현재 정치의 중심이 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바이든 정부와 이 정부가 운영하는 미국 국가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폭로하고 왼쪽에서 그 민주주의적 정당화에 문제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당선되면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대를 전원 국외 추방하겠다”고 떠들어 대는 트럼프 같은 자들이 도저히 참칭할 수 없는 항의다.

일각에서는 캠퍼스 점거 운동으로 양극화되는 정세 때문에 트럼프가 득을 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바이든에 대한 대중의 실망으로 이미 그전부터 부상하고 있었다. 오히려 팔레스타인 연대 캠퍼스 점거 운동이 전개되는 지금 트럼프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런 항의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잠재력이 있다. 권력층에 이롭고 인종 학살과 제국주의 쟁투를 밀어붙이는 이 체제를 전복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함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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