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되지 않은 ‘북한군 러시아 파병설’ 퍼트리는 한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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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크라이나 정부와 언론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설을 보도하자, 한국 언론을 비롯해 한·미·일 정부와 나토 등이 파병설을 기정사실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10월 3일 우크라이나의 언론들은 도네츠크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한 러시아군 20여 명 가운데 북한군 6명이 포함됐다고 보도한 데 이어, 러시아군이 북한 병력으로 구성된 3000명 규모의 특별대대를 편성 중이라거나 북한이 러시아에 이미 1만 명을 보냈다는 등 우크라이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잇따라 파병설을 보도했다.
한·미·일 정부, 나토 등은 파병 사실을 아직 확인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북한군 파병 가능성을 높게 보며 우려 입장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국방부 장관 김용현은 “러시아와 북한이 거의 군사동맹에 버금가는 상호 협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파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미국 백악관 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 존 커비도 이렇게 말했다. “보도에 대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보도들은 우리를 우려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러시아나 북한 측은 북한군 파병설을 “가짜뉴스”라고 일축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도 러시아군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극동지역에 북한 사람들이 들어온 사실은 확인됐지만, 대부대가 조직되고 있다는 징후는 자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국 언론 MBN도 단독 뉴스로 “입국한 북한 관련 명단을 확인해 본 결과 군인 신분은 없었다”며, “북한군이 투입되면 30명당 1명꼴로 러시아 통역관이 필요한데 100명에 달하는 통역관을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러시아 소식통의 말을 보도했다.
이처럼 한국과 서방 정부, 우크라이나 정부가 확인되지도 않은 ‘파병설’을 기정사실화 하는 까닭은 뭘까?
우크라이나 정부는 서방과 한국 정부의 지원을 더 받아 내고자 하고, 북·러의 관계 개선을 못마땅해 하는 한국 정부도 여기에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일본 정부가 제안한 ‘아시아판 나토’ 구상에 대해 한국 정부는 기본 취지에 찬성한다고 밝혔는데, 북한군 파병설은 ‘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러시아가 무기 공급을 위해 북한에 의존하는 것은 인도·태평양과 유럽·대서양간 안보가 얼마나 상호 연관돼 있는지를 보여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들을 보건대, 북한인의 러시아 유입은 파병보다는 노동자 파견일 가능성이 높은 듯하다.
지난 6월 19일 러시아와 북한이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을 체결했을 때,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은 예견된 일이었다. 북한의 외화 벌이에서 노동자 해외 송출은 매우 중요하고, 러시아 또한 건설업 등에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한국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이미 이렇게 예측했다.
“북한 노동자 파견은 러시아의 대북 경협에서 가장 핵심 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국제 통신사 대표들과의 대화에서 북한 노동자 파견을 제재와 무관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러시아는 노동력이 필요하다. 인구와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극동·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위해, 또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4개 지역의 전후 재건을 위해 북한 노동자를 활용해야 한다는 러시아 사회 내의 요구가 최근 들어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현승수, ‘푸틴의 평양 방문과 러·북 관계 전망’, 통일연구원)
또,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원은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북한은 노동자 송출 사업을 군이 관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군인의 파견이더라도 실체는 노동자 파견일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점들은 상황을 과장하려고 애쓴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발언에서도 암시적으로 드러났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의회 발언에서 북한 인력들을 군인으로 특정하지 않고 ‘러시아 공장 대체 인력과 군 인력’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사실들을 한국이나 미국 정부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북한군 파병설에 동조하며 동아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적 갈등에 적극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