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북한을 공평무사하게 비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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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열 정부의 북한 전투병 러시아 파병설 띄우기가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원의 북한 전투병 파병설을 근거로 미국 등 나토 측의 기정사실화를 얻어 내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지원 검토, ‘군 참관단’ 파견을 추진하며 서방 제국주의를 더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이런 친서방 대외 정책에 비판적인 좌파에 대한 탄압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파와 정권 지지 세력을 결집시켜 정권의 위기를 넘기는 데에도 이용하려는 듯하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격화시킬 뿐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진보당, 정의당과 참여연대 등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시도를 중단하라는 옳은 입장을 발표했다.(민주노총이나 노동당은 아직 입장을 내지 않았다.)
참여연대는 “윤석열 정부가 북한 파병을 핑계로 미국과 나토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오던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검토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의당은 러시아와의 외교적 노력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노력을 꾀하지 않고 살상무기 지원을 입에 올리는 것은 전쟁의 불씨를 한반도로 옮겨오는 아주 위험한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참여연대나 정의당은 러시아 규탄에 집중했었다. 비록 나토의 확장도 문제였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누가 먼저 총을 쐈느냐에 초점을 맞추며 러시아 규탄에 주력했던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2022년 초) 문재인 정부가 서방 제국주의를 지지하고 그에 협력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전쟁의 진정한 성격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그들은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반대하는 태도를 정했다.
그런데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침략 전쟁이라고만 규정하고, 나토가 중요한 참전 세력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단체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회진보연대가 이런 입장이다. 사회진보연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도 지지해 왔다.
이번에도 사회진보연대는 ‘북한은 러시아의 침략전쟁 동조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해, 서방 지원에 나서려는 윤석열 정부를 사실상 편드는 입장을 내놨다.
이 성명에서도 사회진보연대는 북·러와 이를 지원하는 중국만을 침략 전쟁을 감행하며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이라고 볼 뿐, 서방 제국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지금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인들이 계속 죽어 나가더라도 이 기회를 이용해 러시아의 힘을 소모시키겠다는 것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현재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정부는 러시아와의 굴욕적인 협상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무기 지원과 나토의 직접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전쟁의 장기화와 확전 추세에 일조해 전술 핵무기 사용 대두 같은 심각한 사태를 촉발할 수 있는 일이다.
침략에 반대한다며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을 지지하는 것은 전쟁 위험을 키울 뿐이다.
중도 양비론
의식의 변화는 확실히 불균등하다. 참여연대나 정의당은 비록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검토를 비판하는 입장을 냈지만, 이에 못지않게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도 반대한다.
정의당은 앞서 언급한 성명에서 이렇게 북한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북한의 파병이 사실이라면 한반도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참여연대는 ‘북한군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견에 반대한다’는 별도의 성명을 내 이렇게 말했다. “북한군의 참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이 전쟁을 더욱 국제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정의당이나 참여연대는 윤석열 정부가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고, 한미일 관계를 군사동맹 수준으로 강화하면서 북·러가 밀착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북한도 “세계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세력이라고 지적함으로써, 북한과 윤석열 정부 모두를 공평하게 비판하는 중도 양비론을 취한다.
그러나 이런 중도 양비론은 윤석열 정부의 노선과 방침이 한반도 불안정과 우크라이나 전쟁 격화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을 흐리는 효과를 낸다.
이런 입장은 또한 서방 제국주의와 윤석열 정부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하기 어렵게 하고 혼란을 유발시킨다. 한국과 같은 친서방 국가하에서 사는 활동가들은 러시아(와 북한)에 반대하는 것보다 먼저 서방 제국주의와 윤석열 정부에 우선적으로 반대해야 하는데 말이다.
결국 정의당이나 참여연대의 제안은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과 군사력 위주의 대북 정책을 전면 수정해, 평화 중재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식으로 입장을 변경하리라 기대하지는 않을 테니 민주당과의 협력으로 평화를 중재해야 한다고 볼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도 최근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 시도를 ‘신북풍’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비판하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 진보당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관계를 넘어 미국과 유럽, 세계 국제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전쟁”이라고 지적하면서, 전쟁 초기부터 대러 제재 참여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반대해 왔다.
또, ”‘북한군 러시아 파병설’을 입증하기에 증거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진보당은 ‘국익’을 운운하며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과의 협력에 나설 공산이 크다.
그러나 역대 민주당 정부도 모두 한미동맹을 중시하며, 한반도에서 위기를 키우는 주체였다. 한미동맹이 제국주의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 국가의 위상을 올려 주는 데에 꼭 필요하다고 보고 중시해 왔다. 물론 친미·친서방 일변도로 너무 나아가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를 해치는 것은 우려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했고, 우크라이나 군수품 지원에 나서며, 한반도와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적 갈등을 고조시키는 데 사실상 일조했다.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그 정부가 러시아를 설득하고 나토를 자제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