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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가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 15:
자본주의의 모순

변증법을 다룬 지난 번 칼럼에서 강조했듯이, 마르크스는 모든 변화가 모순을 통해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 점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자본주의는 서로 연결된 모순들의 덩어리다.

첫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있다. 자본주의는 과거의 경제 체제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생산력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 생산력이 소외된 노동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력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 생산력은 파괴력으로 변모한다. 그 파괴력은 엄청난 최첨단 무기일 수도 있고, 우리의 생존을 좌우하는 환경 파괴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발전시킬수록 사회적 소유나 민주적 계획 경제의 필요성도 절실해진다. 물론 이런 사회적 소유나 민주적 계획 경제는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것들이다.

둘째,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의 모순이 있다. 이 모순은 모든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착취에서 비롯한다. 이런 계급 모순은 자본주의가 처음 생겨날 때부터 존재했다. 수백 년 동안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경제적·이데올로기적·정치적 권력을 모두 이용해서 노동계급의 저항을 무마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고, 탄압했다. 그들은 노동계급에게 가혹한 패배를 거듭거듭 안겼고,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그들은 계급투쟁이 끝났다고 거듭거듭 선언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실, 자본주의는 노동계급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윤을 창출하려면 노동계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성장하고 확장할수록 그 철천지 원수의 규모와 잠재력도 점점 더 증대시키지 않을 수 없다. 부르주아지는 이런저런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전쟁을 끝낼 수는 없다. 계급투쟁은 부르주아지가 전복되고 자본주의가 폐지돼야만 끝날 수 있다.

셋째 모순은 자본가들 사이의 모순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서로 경쟁하는 자본들 간의 경쟁을 바탕으로 조직된다. 이런 경쟁은 길모퉁이 구멍가게에서 초대형 할인매장까지, 더럽고 지저분한 소규모 작업장에서 강력한 다국적기업까지 체제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자본의 도구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국가간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이런 국가간 경쟁이 제국주의와 군비 경쟁, 전쟁을 일으킨다.

자본주의의 경쟁은 노동 착취를 통한 자본 축적 경쟁이다. 경쟁에서 뒤쳐진 기업은 파산하거나 아니면 더 경쟁력 있는 다른 기업에 인수된다. 그러므로 모든 자본가는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이윤의 총액을 늘리기 위해 애를 써야 하고, 따라서 계급간 모순을 더 심화시킨다. 성공하지 못한 기업들이 성공한 기업들에 먹히면서, 자유시장 경쟁은 그 대립물인 독점으로 바뀐다. 그러나 경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독점체들 간의 경쟁이 새로 시작된다.

경쟁은 자본주의를 전진시키고 자본주의의 역사적 역동성을 설명해 주지만, 자본주의를 손상시키고 자본주의가 안정이나 균형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고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아넣기도 한다.

경쟁

경쟁 때문에 자본가들은 점점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특히, 체제가 호황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항상 자신들이 생산한 재화의 가치보다 더 적은 보수를 받기 때문에 과잉생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재화가 생산된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제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되고 그 기업의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된다. 이것이 이번에는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감소시키고 생산을 더욱 감축시킨다. 그래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실업자로 전락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경제 호황은 경기 침체나 불황으로 바뀐다.

과잉생산 경향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들이 있지만, 그런 수단은 체제의 다른 모순들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정부가 개입해서 공공지출 계획에 따라 다양한 국책 사업에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다. 그리 되면 노동자들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고 수요가 증대해서, 불황을 향한 하향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케인스주의(영국 경제학자 메이너드 케인스의 이름을 딴)로 알려진 이 방법은 돈을 풀어서 재화를 구매하게 만들기 때문에 물가인상을 유발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물가인상을 따라잡으려고 임금인상을 요구하게 되고, 이 때문에 노동쟁의가 격화한다.

과잉생산을 피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노동자들이 구매할 수 없는 잉여 생산물을 자본가 계급 자신이 사들이는 것이다. 자본가들 자신이 소비하는 사치품이나, 생산수단(공장 증설을 위한 신규 설비 등)의 형태로 사들이는 것이다. 한 나라의 자본가들이 소비를 선택한다면 그 나라 경제는 자본가들이 새로운 생산수단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나라들보다 더 느리게 성장하고 결국은 뒤쳐질 것이다. 그러나 투자를 선택하는 것은 체제의 또 다른 근본 모순 ― 이윤율 저하 경향 ― 을 심화시킨다.

이 경향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비롯한다. 모든 이윤의 원천은 노동자들, 즉 산 노동의 착취에 있다. 그러나 경쟁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은 산 노동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 기계나 기술 등 죽은 노동의 양을 훨씬 더 크게 늘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본가들의 [투자]지출만큼 이윤이 늘지 않는다. 투자 수익률이 감소하면 자본가들의 투자 의욕도 감소할 것이다. 이 때문에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

그리고 자본가들이 산 노동보다 기계 등에 투자를 집중한 결과, 이윤량과 이윤율 사이에, 그리고 개별 기업의 이해관계와 체제 전체의 이해관계 사이에 모순이 있게 된다. 자본주의의 개별 기업들은 경쟁의 압력 때문에 저마다 자신의 이윤량과 체제의 총 이윤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몫을 늘리려고 애쓴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기술에 투자해서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더 값싸게 판매해서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경쟁 기업들보다 앞서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신기술 사용이 일반화하고 나면, 일시적 우위는 사라지고 전반적 이윤율은 하락한다.

이윤율 저하 경향은 경향일 뿐이다. 착취율 증대, 제국주의, 군비 지출, 전쟁 등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거나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여럿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모두 저항을 부르고 체제의 다른 모순들을 심화시킨다.

이런 모순들 가운데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사회주의의 승리를 보증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이 모순들을 모두 합치더라도 사회주의의 승리를 보증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엄청난 힘에도 불구하고 이 모순들은 체제를 약화시킨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우리를 모두 파멸시키기 전에 노동계급이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 (북막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 (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책갈피)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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