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몰리뉴의 실천가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 35:
민주집중제는 반反민주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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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중앙집중제
레닌과 볼셰비키 시대 이래로 대다수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은 민주집중제를 바탕으로 활동했다. 아니, 활동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주장했다”고 말한 이유는 이른바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의 압도 다수가 사실은 옛 소련에 충성하는 스탈린주의 정당이었고, 그런 당에서는 중앙집중제가 압도적이어서 모든 당원이 모스크바에서 결정한 노선에 복종해야 한 반면 민주주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경험으로 말미암아 민주집중제는 악명을 얻게 됐다.
그런데 스탈린주의가 마르크스주의 개념이나 실천을 오용하고 왜곡해서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유로 우리가 마르크스주의 개념이나 실천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통째로 거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집중제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스탈린주의적 ‘민주집중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많은 좌파들 ─ 좌파 개혁주의자들, 자유지상주의자들, 자율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 등 ─ 이 이 문제와 관련해서 트로츠키주의 정당들을 비판하고 스탈린주의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다른 정당들도 싸잡아 비판한다.
예컨대, 영국에서 ‘리스펙트’ 국회의원인 조지 갤러웨이는 사회주의노동자당
그럼에도 나는
민주집중제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 민주주의와 중앙집중제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레닌이나 다른 마르크스주의자가 생각해 낸 모종의 자의적 조직 원칙이 아니라, 노동계급 투쟁의 본질 자체에 맹아적 형태로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노동계급 투쟁은 아래로부터의 투쟁, “압도 다수의 이익을 위한 압도 다수의 투쟁”이다. 노동계급 투쟁의 초기
민주주의
그러나 노동자 투쟁에는 중앙집중제의 요소도 내재해 있다. 자본의 권력은 본질적으로 매우 중앙집중적이다. 자본주의 기업에서 내려진 결정은 위에서 아래로, 기업 소유주나 이사회에서 말단 사원에게로 전달되고 거의 군사적 규율에 따라 집행된다. 자본주의가 나이를 먹고 자본의 소유가 더 집중될수록 이 중앙집중화 경향도 점차 확대되고 강렬해진다. 삼성이나 포드나 엑슨이 가격, 공장 폐쇄, 노동쟁의 대처 방안 등에 대해 전략적 결정을 내리면 그들은 전 세계
계급투쟁의 가장 기본적 형태인 파업을 생각해 보라. 특정 작업장, 회사, 산업의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민주적으로
혁명정당의 민주집중제는 파업의 민주집중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도 있다. 파업에서 민주집중제는 주로 경제적 투쟁에 적용되고 경제 투쟁으로 제한된다. 당에서 민주집중제는 정치적 수준에도,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이데올로기 수준에도 적용된다. 이것은 혁명정당이 노동자 운동 전체 안에서 자발적인 소수의 조직이고, 혁명정당의 목표는 정치 권력, 즉 국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노동계급을 지도하는 것이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노동계급 사이에서 득세하는 부르주아 사상에 맞서 그리고 노동자 투쟁의 발목을 잡고 노동자 투쟁을 부르주아지에게 팔아 넘긴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입증된 다른 정치 경향들
이 정치적인 민주집중제의 필요성은 파업의 사례를 혁명적 상황의 사례로 바꿔보면 알 수 있다. 즉, 대중이 행동에 나서고, 기존 국가 기구가 붕괴하고, 아마도 이중 권력의 요소들 ─ 노동자 평의회, 작업장 점거 물결 등 ─ 이 존재하고, 무장 봉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운명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말이다. 가장 격렬한 계급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국민투표 따위는 불가능할 것이고, 의회 청문회 방식의 공개 논쟁을 벌일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계급의 적에게 조심하라고 미리 알려주고 반
결정
이런 주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혁명적 상황도 아니고 사악한 지도자들이 민주집중제를 너무 쉽게 조작했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고 비판가들은 주장한다. 반민주적 조작이 당의 형식적 규약과 무관하게 항상 가능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집중제는 그런 조작을 더 어렵게 만들지 더 쉽게 만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민주집중제는 당의 기층 당원들뿐 아니라 지도자들도 규율하기 때문이다.
민주적 토론과 논쟁의 수준은 높지만 중앙집중제는 거의 없는 당을 떠올려 보라. 토니 블레어가 장악하기 전의 영국 노동당이 그런 정당이었다. 당시 노동당의 연례 당대회에서는 열정적 논쟁,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 민주적으로 제안되고 표결에 부쳐지는 결의안이 넘쳐났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중앙집중제가 없었기 때문에 당 지도부는 당대회 결정 사항들을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특히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을 때는 더 그랬다. 중앙집중제가 없었으므로 민주주의도 없었다. 왜냐하면 당의 노동계급 다수가 자신들의 견해를 행동 지침으로 만들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민주집중제 문제는 계급 문제다. 노동계급은 민주주의와 중앙집중제가 모두 필요하다. 왜냐하면 노동계급 운동은 함께 행동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