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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가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 2:
노동계급의 혁명적 구실

오늘날 국제 반자본주의 운동에 널리 공감하고 체제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아 아마 수억 명이 넘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하고 누가 그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지 않다. NGO들이나 단일쟁점 운동들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있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나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같은 진보적 정부들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또, 아직까지 극소수기는 하지만 모종의 무장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르크스 시대에도 급진주의자들의 견해는 다양했다. 마르크스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인 1840년대에는 프랑스 대혁명에서 유래한 두 가지 경향이 좌파에서 득세했다.

첫째는 자코뱅에서 영감을 얻은 경향이었다. 그들은 소수의 계몽된 개인들이 음모를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뒤 법률들을 제정함으로써 대중을 대신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회는 특권의 상속이 사라진 평등주의 공화국이겠지만, 그 사회에서도 사유 재산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둘째는 프랑스의 샤를 푸리에나 영국의 로버트 오우언 같은 사람들이 주창한 공상적 사회주의 경향이었다. 그들은 사회주의(집단적 소유)가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사회 질서라고 확신했고, 합리적 주장과 이상적 공동체 건설 사례를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했다.

사회주의

다시 말해, 혁명가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아니었고 사회주의자들은 혁명가들이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이 두 가지 경향을 모두 거부하고 ― 더 정확히 말하면 뛰어넘어 ― 혁명적 사회주의의 토대를 놓았다. 혁명적 사회주의의 핵심은 노동계급, 즉 프롤레타리아를 사회 변화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계급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가는 사람들, 자본가들에게 고용돼 착취당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새로운 계급은 특히 산업혁명 이후, 맨체스터·버밍엄·런던 같은 도시들과 그보다 규모가 더 작기는 했지만 유럽, 특히 유럽 북서부 지역에서 등장하고 있었다.

음모가들과 공상가들은 변화가 위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마르크스는 변화가 아래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노동자들 스스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고 썼다.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에 기반을 두고 자기 정치를 정초했던 것은 노동계급이 고통받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세력(힘) 때문이었다. 물론 노동계급이 겪는 고통과 착취는 끔찍했고, 그 때문에 노동자들이 체제에 도전할 동기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노예들과 농노들도 수천 년 동안 고통에 시달렸고 착취당했다. 그들과 노동계급의 차이는 1)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실제로 파괴할 수 있는 세력을 갖고 있고, 2) 노동계급이 새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고유한 산물이다. 자본주의가 성장할수록 노동계급도 성장한다. 자본주의는 이런저런 전투에서 노동계급을 패배시킬 수 있고, 파업과 노동조합 들을 분쇄할 수 있고, 노동자들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이윤을 생산할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노동자들은 다시 투쟁에 나서게 된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을 대규모 작업장에 집결시키고, 국민적·국제적 산업들을 통해 그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그들을 대도시에 집중시킨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엄청난 정치적 잠재력을 갖게 된다.

노동자들의 노동이 없으면, 기차·버스·트럭도 움직일 수 없고, 석탄·철·석유도 채굴될 수 없고, 신문도 인쇄될 수 없고, TV 방송도 방영될 수 없고, 은행이나 학교도 문을 열 수 없다. 심지어 군대도 노동자들인 사병들에게 의존한다.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을 만들어내면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피억압 계급을 만들어낸 것이다.

잠재력

노 동계급의 투쟁은 모름지기 집단적 투쟁이다. 노동자들은 19세기의 공장 소유주들에 맞서 싸우든 오늘날의 포드나 현대자동차에 맞서 싸우든 힘을 합쳐 함께 행동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포드나 현대자동차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공장을 자기들끼리 나눠가질 수 없다(농민들은 토지를 자기들끼리 나눠가졌다). 오히려 공장을 사회의 재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은 사회주의적 계급이다.

더욱이, 노동계급은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여전히 생산자 계급으로 남아 있을 것이고, 노동계급의 발 아래에서 노동계급에게 착취당하거나 노동계급을 부양하는 다른 계급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규모 산업과 경제·정치 권력의 중심지인 대도시들에 집중돼 있는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위에서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또, 노동계급은 생산뿐 아니라 통치도 할 수 있고, 따라서 진정으로 계급 없는 사회의 토대를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계급은 자신을 해방함으로써 인류를 해방한다.

노동계급의 이 혁명적 구실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다. 마르크스의 철학·역사학·경제학·정치학이 모두 여기서 시작한다. 마르크스주의 ‘동조자’의 상당수를 포함해서 학자들과 논평가들이 가장 강력하게 거부한 마르크스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계급이 변했다”는 것은 그들의 낯익은 구호다.

노동계급이 변했다는 것, 그들의 직종·의복·봉급·국적·문화가 변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근본적 존재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여전히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가고, 여전히 착취당하고 여전히 집단적으로 투쟁한다.

오히려 노동계급의 규모와 잠재적 능력은 엄청나게 성장했다. 마르크스 시대에 프롤레타리아는 대체로 서유럽에 국한돼 있었지만, 오늘날은 브라질에서 한국까지 전 세계에 존재하며 투쟁하고 있다. 바로 그들이 사회주의의 토대이며 인류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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