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몰리뉴의 실천가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 20:
러시아 혁명은 왜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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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 혁명은 세계 최초로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러시아 혁명은 노동계급이 비록 사회에서 소수파일지라도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러시아 혁명은 또, 정치 조직 형태인 노동자 평의회, 즉 소비에트를 전 세계에 선보이기도 했다. 이 소비에트를 통해 노동계급이 실제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음도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20년 뒤인 1937년의 러시아는 사유재산이 아니라 국가가 지배한다는 점말고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개념이나 1917년 혁명의 목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회가 돼 있었다.
1937년의 러시아는 무소불위의 독재자 스탈린이 보안경찰 등 막강한 국가 기구를 이용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 사회에서는 자유·논쟁·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았고, 아무리 하찮은 이견이라도 징역이나 사형으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노동계급은 혹독한 빈곤 속에 살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됐고, 노동자들을 방어할 진정한 노동조합도 존재하지 않았다. 많은 농민들은 최근에야 기근과 기아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러시아 혁명으로 크게 감소했던 불평등이 이제 급증하고 있었다. 새로운 지배자들·관리자들·관료들은 축재에 여념이 없었고,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반(反)국가 범죄로 처벌받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됐을까? 분명히, 이 질문의 대답에 아주 많은 것이 걸려 있다. 특히, 지금 21세기에 사회주의 혁명을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이 대답에 달려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전에, 지금까지 나온 다른 대답들을 먼저 살펴보자.
스탈린
두 주요 집단 ― 서방 지배계급들(과 그 이데올로그들)과 스탈린주의자들 ― 은 [러시아 혁명이]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서방 부르주아의 견해는 노동 대중이 본래 사회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 권력, 자유, 평등에 대한 얘기는 모두 백일몽일 뿐이고, 독재와 폭정은 사회주의 사회 건설 노력의 의식적 목표이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그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의 견해는 1930년대의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의 구현체이자 마르크스·레닌 사상의 구현체이고, 폭정이나 경찰국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부르주아지의 선전일 뿐이라는 것이다.
부르주아지의 견해는 첫째, 노동계급에 대한 편견과 둘째,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대한 무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문제를 여기서 길게 다루지는 않겠다. 이 연재 칼럼이 모두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이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의 견해는 사실에 대한 무지나 부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스탈린주의의 견해는 진정한 혁명가들의 증언(예컨대 빅토르 세르주의 《어느 혁명가의 회고》를 보시오)을 비롯해 산더미 같은 증언과 목격자 진술에 의해, 무엇보다 역사에 의해 논박당했다. 소련이나 동유럽의 이른바 사회주의 나라들이 정말로 노동 대중을 위한 약속의 땅이었다면, 1989~91년에 이들 나라의 노동계급이 자국 정권을 지키기 위해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아 그 정권들이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옛 소련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주로 러시아 정치 지도자들 ― 스탈린·레닌·볼셰비키당 ― 의 성격과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춘다. 1956년에 흐루시초프는 소련공산당 20차 당대회의 ‘비밀 연설'에서 스탈린 시대의 범죄들을 비난했다. 그는 스탈린 주위에서 발전한 ‘우상 숭배'와 스탈린의 가학적 성격을 비난했다. 우상 숭배와 가학성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이렇게 설명하는 것에도 분명히 약점이 있다. 왜 우상 숭배가 발전했고, 왜 공산당은 가학적 괴물을 지도자로 세우고 계속 떠받들었는가?
서구 학자들이 선호하는 주된 설명은 레닌주의와 볼셰비즘의 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인즉 전체주의적인 볼셰비키당으로 구현된 레닌 개인과 레닌주의 이데올로기의 전체주의적 성격이 스탈린주의의 만행을 낳은 것은 어느 정도 필연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러시아 혁명 전과 혁명 기간, 혁명 직후 볼셰비키당이 매우 민주적이었다는 사실과 스탈린이 자신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고참 볼셰비크들을 거의 모두 물리적으로 제거해야 했다는 사실 같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모르거나 애써 무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들은 모두 더 심각한 결함이 있다. 이런 설명들은 모두 이른바 부르주아적 ‘위인' 사관의 변형들이다. 이런 ‘위인' 사관은 무엇보다 극소수 위인들(흔히 왕이나 장군 들이지만, 옛 소련의 경우에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과 활동가들)의 사상과 행동이 역사를 좌우한다고 본다.
그러나 역사를 좌우하는 것은 무엇보다 계급들 간의 투쟁이고 이 계급투쟁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여느 세계사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혁명의 운명에도 이런 역사유물론적 관점을 적용해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문제는 1917년 10월에 권력을 장악한 노동계급이 어떻게 그 권력을 잃게 됐는가 하는 것이다. 일단 이것을 핵심 문제로 제기하고 나면 그 해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첫째, 러시아의 경제 발전이 유럽이나 북아메리카보다 후진적이었고, 따라서 러시아의 도시 노동계급도 상대적으로 소규모였다. 이 자체가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지만(그랬다면 1917년 10월 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의 위치가 처음에 취약했던 것은 사실이다.
역사유물론
둘째, 혁명 뒤 서방 제국주의 열강이 러시아에 개입해서 벌어진 1918~21년의 내전 기간에 러시아 경제가 철저하게 파괴됐다. 이 파괴의 규모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대규모 공업 생산은 1913년 수준의 21퍼센트로 하락했고,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교통이 마비됐고, 콜레라와 결핵 같은 전염병이 창궐했고, 기근이 만연했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경제적 토대가 파괴됐다. 게다가 내전 기간에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이 대부분 학살당했다. 1917년에 권력을 장악한 계급이 1921년쯤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더는 자신의 집단적 의지를 사회에 관철할 수 없었다.
노동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또 다른 사회 세력이 지배권을 장악해야 했다. 보통은 귀족이나 부르주아지가 그렇게 했을 테지만, 그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쫓겨난 뒤였다. 따라서 점점 더 대중의 통제를 벗어나 운신의 폭을 넓히던 국가·당 관료 집단이 권력을 장악했다.
셋째이자 마지막으로, 러시아 혁명은 국제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고립됐다. 국제 혁명은 특히 독일에서 거의 성공할 뻔했지만 실패했고, 그 결과 혁명 이후 경제 재건과 노동계급의 부흥과 재충전에 필요한 원조를 받을 수 없게 됐고, 그래서 러시아는 서방 자본주의의 엄청난 경제적·군사적 압력을 받게 됐다.
인간 본성 또는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의 결함이 아니라 이 실제의 물질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이 러시아 혁명의 운명을 결정하고 스탈린주의를 낳은 것이다. 스탈린주의의 정확한 성격은 다음 칼럼에서 다룰 것이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