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법부, 결코 조희대만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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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한국 사법부도 군사독재 정권의 삼권분립 침해로 피해를 입은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군사독재 하에서 사법부는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저항 세력에 대한 폭력과 살인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했다. 정권에 맞서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조작해 판결을 내리고, 그 후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인혁당 사건은 두드러진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사법부,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돌베개, 2016)의 저자 한홍구 교수는 군사독재 시절에조차 사법부가 단지 중앙정보부, 안기부 같은 외부의 압력 때문에 편파적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4년부터 3년간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관련 역사를 방대하게 조사한 바 있다.
“차라리 중정-안기부가 법관들을 잡아다 협박하고 고문해서 사법부가 저 지경이 되었다면 덜 슬펐을 것이다. … 사법부와 시민의 관계에서 사법부는 분명 가해자였다.”
그는 군사독재 이전과 이후에도 사법부가 정의와는 거리가 먼 기구였음을 들춰낸다.
1945년 10월 11일 미군정에 의해 초대 대법원장에 임명된 김용무는 1946년 광주지방법원에서 한 훈시에서 법원의 중립성, 판결의 객관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법원의 중립성이나 객관성을 언급하는 자는 사법부 관리로서의 자격이 없다. 미군정 정책에 반대하는 자나 신탁통치와 좌파 이데올로기에 찬성하는 자는 그들의 범법행위를 증명할 만한 증거가 없더라도 엄중 처벌해야 한다.”
2대 대법원장인 조용순은 진보당 사건 1심 판결에서 조봉암이 간첩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인 1958년 7월 29일 이렇게 말했다. “법관이라 하여 국가 목적 달성에 관한 숭고한 정신을 망각하고 편협되고 주관적인 견해만을 고집하여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복리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결국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조봉암의 간첩 혐의를 인정해 사형을 선고했고 이승만은 1959년 7월 31일 그를 사형시켜 버렸다.
1987년의 ‘민주화’ 이후에도 사법부는 우파의 보루 같은 곳이었다. 1998년 1월 5일 열린 대법관들의 간담회는 학생운동 전력자들의 법관 임용을 허락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이렇게 정당화했다. “우리 사회의 최후 보루인 법원에 급진적인 사상이 어울리지 않으며,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 공정한 재판을 해칠 우려가 있다.”
발탁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기구가 기성 질서에 충실한 인물들을 길러내는 시스템을 잘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1988년 노태우는 전두환이 임명한 김용철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했다. 이에 반대하는 판사들의 서명 운동에 대부분의 평판사들이 동참했지만, 딱 한 곳은 예외였다. 5공 시절 시국사건의 대부분을 처리했던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이었다.
한홍구 교수는 이렇게 썼다. “한 언론은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은 ‘스크린’을 거쳐 임명되고 법원의 분위기에 따라 서서히 ‘새끼정치판사’로 단련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희대가 당시 서울형사지법에 있었다. 민주당 대표 시절 이재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수원지법 판사들을 올해 2월 조희대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들로 불러들인 것도 이런 발탁 시스템의 일부다. 윤석열이 콕 찍어 자신에 대한 영장은 서울중앙지법에 신청해야 한다고 우긴 건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특검이 신청한 영장들을 대거 기각하며(가령 한덕수·박성재·김용대 구속영장) 내란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한홍구 교수는 이어서 들춰낸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늘 지적돼 온 것처럼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사법부로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가속화됐다. 사실 민주화가 돼 덕을 가장 많이 본 것은 사법부와 검찰이다.”
“대다수 법관들의 특권적 지위나 계급적 입장에 따른 계급사법이 큰 문제로 대두한 지 오래됐[다].” 그래서 노동 관련 사건, 과거사 관련 사건, 정치적 사건 등 크게 세 분야에서 보수적 판결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하에서 촛불 집회 관련 재판들에 압력을 행사한 대법관 신영철이나, 주요 시국 사건들에서 정권의 손을 들어주며 일종의 거래를 한 대법원장 양승태 등의 사례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백승아 민주당 의원이 한국장학재단과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25년 1학기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체 로스쿨 재학생의 69.7퍼센트가 고소득층 배경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로스쿨의 경우 그 비율은 76.3퍼센트로 더 높았다. 판사로 임용되는 사람들에서 이 비율은 더 높을 것이다.
‘사법부 독립’: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적 통제로부터의 독립
우리는 계급으로 나뉜 사회에서 산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한편에는 부를 갖고 있지만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자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지만 거의 모든 것을 생산하는 자들이 있다. 자본주의 국가와 그 일부인 사법부는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계급으로 나뉜 사회의 지배 계급은 폭력과 동의를 모두 사용해 지배한다. 노골적인 폭력으로만 지배를 유지할 수 있는 취약한 지배자들은 군사독재 등 권위주의적 지배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물론 그들에게조차 동의 얻어 내기는 필요하다.)
하지만 좀 더 자신감이 있는 지배자들은 민주주의적 외양을 보여 주려 애쓴다. 일상적 시기에는 그 편이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지배자들의 이익과 권력 추구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골적 폭력을 선호하는 군사독재 정권도 형식적으로나마 삼권분립을 표방하고 사법부의 승인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으려 한다.
그러나 계급 지배를 민주주의로 포장하는 법과 제도는 모순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체제의 피억압자들이 그런 모순을 활용해 지배에 맞서고 권력에 도전하는 것은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 도전이 (부분적이고 일시적이나마) 성과를 거두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법은 언제나 사회를 지배하는 계급을 보호하고 사법부는 무심한 얼굴로 그것을 해석하고 집행한다.
흔한 오해와 달리 사법부는 법을 단지 ‘해석’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대법원의 판례는 법률에 담기 힘든 매우 구체적인 상황들에 관한 준입법 기능을 한다. 법원은 압수·체포·구속을 결정하고 재산을 압류하는 집행을 명령한다.(그런데도 법관은 선출되지도 않고 소환할 수도 없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무슨 덧칠을 하든 자본주의하에서 사법부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구실을 할 수 없다. 그렇기는커녕 민주주의와 가장 거리가 먼 기구의 하나일 뿐이다.
12·3 군사 쿠데타 세력 일소를 바라는 사람들은 사법 개혁에 환상을 갖지 말고 투쟁적인 기층의 힘을 키우는 데 전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