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문제는 단지 조희대 문제가 아니라 체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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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대법원장 조희대는 “법관을 증언대에 세우면 재판이 위축된다”며 증언대에 서기를 거부했다. 이어진 국회의원들의 질의에도 ‘입꾹닫’으로 90분을 버텼다.
지귀연은 진작에 불출석 의견서를 내고 나오지도 않았다. 법원행정처장 천대엽을 비롯해 다른 사법부 관계자들도 모조리 조희대를 엄호했다.
천대엽은 대법원의 이재명 상고심 파기환송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하는 변명을 갖다 붙였다. 1~2심이 너무 오래 걸려 신속히 판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대법관 모두에게 있었다는 얘기다.
그럼 지금 지귀연이 하고 있는 재판 지연 작태는 뭔가?
백 보 양보해, 천대엽의 말대로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날이 아니라 항소심이 끝난 날부터 사건을 들여다봤다고 해도, 고작 30여 일 만에 항소심 판결을 180도 뒤집는 결정을 내려놓고 ‘절차대로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뻔뻔한 법꾸라지 같은 소리일 뿐이다.
MBC 보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대법원에 접수된 후 판결까지 35일 미만이 걸린 형사 사건은 모두 1,822건인데, 그 가운데 파기환송된 사건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건뿐이었다. 참고로, 최근 10년 동안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사건 180건의 평균 심리 기간은 994일이었다.
사법부는 사실상 대선 개입을 한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이 그토록 신속하게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려 한 이유는 피고인이 이재명이라는 이유 단 하나였을 것이다. 당시 이재명이 쿠데타 세력 숙정을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대변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공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판사 개개인의 인격이나 사상을 떠나,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 기구 중 하나인 사법부는 사법 시스템의 안정(예측 가능성)이라는 미명 아래 정치 체제를 불안케 할 수 있는 불안정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을 그 임무로 삼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은 비상계엄 직후 심야에 계엄사령부에 협조하려고 긴급 회의를 열었다. 그 회의는 심지어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윤석열이 임명한 조희대 등은 그 자신들이 내란 수사를 방해해야 할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법부 수장으로서 조희대는 쿠데타에 대한 대중적 공분이 이재명 당선을 통해 국가 운영에 반영돼 국가 기관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쿠데타에 동원된 국가의 핵심 기구들과 그 주요 인물들을 시늉으로라도 발본색원하는 과정은 국가기구들 전체를 불안정에 빠뜨릴 수 있다. 더구나 지금 같은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는 위기가 증폭될 수 있다.
파기환송 결정 직후 제기된 여러 판사들의 비판이 잠잠해지고 오히려 법원 내 이견이 봉합되는 듯한 현상도 사법부 본연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쿠데타 세력을 뿌리 뽑으려는 시도가 낳을 불안정보다는, 처벌을 최소화하고 중요 인물과 기구들이 ‘하던 대로’ 기능하도록 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민중의 세계사》의 지은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1942~2009)은 사법부가 처음으로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미국 헌법 제정의 동기를 다음과 같이 적나라하게 들춰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낸 직후, 빈민들의 봉기 물결이 매사추세츠주를 휩쓸었다. 새 헌법을 기초한 이들은 연방 정부가 대중 정서에 의해 좌우되는 일을 막기로 결심했다. 그들이 마련한 ‘삼권분립’은 상원의원들이 하원의원들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고 대법원이 모든 선출직 대표들의 결정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목표는 거대 재산가들에게 안전과 안정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민주적 통제의 겉모습을 결합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수많은 국가들에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독재 정부가 있었고, 수많은 쿠데타가 벌어졌지만, 사법부가 민중의 편에서 그에 저항한 적은 없었다.
한국의 사법부는 1970년대 박정희의 긴급조치를 사법적으로 뒷받침해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무려 40여 년이 지난 2013년에야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들을 위헌으로 결정했고, 다시 그로부터도 10년이 지난 2022년에야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 관련 수사·재판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윤석열의 쿠데타에 부역하려던 조희대 대법원은 정권이 바뀌니 이제 와서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참칭하고 있다.
요컨대 역사적 사건들에서 사법부가 하는 구실은 주로 모순된 헌법 조항들 사이를 오가며 따분한 법리 공방으로 시간을 끌고 대중의 강렬한 기억과 감정이 무뎌지고 잊히게 만드는 것이다.
이 자들이 말하는 사법부 독립이란 대중으로부터의 독립, 민주적 통제로부터의 독립을 뜻할 뿐이다.
아마도 지금의 상황을 보며 조희대는 자신들의 파기환송 결정이 효과적이었다고 여기고 있을 듯하다. 이재명 재판을 재개할 수 있다는 압박 카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국가 정상화를 최고의 과제로 내세우며 우파 인사를 중용하고, 내란 청산의 속도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그만큼 조희대의 자신감과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자긍심도 높아졌을 듯하다. 이토록 뻔뻔하게 나오는 이유다.
그러니 민주당이 ‘법대로’ 대법원장에게 망신을 주려 아무리 애를 쓴다 한들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사법부라는 강력한 우군을 얻은 국힘은 재극우화와 ‘안정’ 속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트럼프라는 가장 막강한 우군이 이재명 정부에 계속 견제구를 날리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내란’ 청산과 정의 구현, 극우 부상 저지, 사회 개혁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통해 모두 하나로 연결된 과제다. 그래서 이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만 가능할 것이다.